어떤 손님이 빼꼼히 문을 열고 들어오시더니 이런 질문을 하신다.
“여기 뭐 안 사고 책만 읽고 가도 되나요?”
사실은 여러 가지 정리되지 않은 말들이 머릿속을 맴돌지만, 나는 결론만 간단하게 이야기하는 편이다.
“네, 읽고 가셔도 돼요”
“아, 여기 이용권 결제해서 이용하는 건가요?”
“아니요, 결제 안 하셔도 돼요~”
“그럼 여기는 상업 공간이 아니라 오픈 공간인 건가요?”
“아… 책을 판매하는 서점이기는 한데요, 그냥 보고 가셔도 돼요. 책이나 음료 이용하시면 좋고요.”
“네에…. 여기 사장님이세요?”
“네, 맞아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손님은 다시 문을 열고 나갔다.
이런 일이 일주일에 한두 번씩 꼭 있다. 처음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서점이 아니라 ‘책방’이라는 단어를 써서 그런가, 간판이 서점처럼 생기지 않았나, 책이 부족한가 하는 쓸데없는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곧 다른 책방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질문은 책방을 운영한 사장님들도 많이 받는 질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보통 책방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나에게로 직행하여 질문부터 하는 이들은 책을 보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비치용 책이 가득 꽂혀있다고 안내하고, 그 책들을 시간과 관계없이 무료로 얼마든지 볼 수 있다고 해도 그들이 머물다 간 적은 없었다. ‘또 올게요’ 하는 공허한 말만 남긴채 다시 오는 일은 없었다. 나는 여전히 이들을 대할 때 서점의 주인으로서 어떻게 응대를 하면 좋은 건지, 더 정확히 말하면 ‘정체불명의 공간’에 대한 궁금증만 해결하고 가시는 분들을 붙잡아 어떻게 책에 관심을 갖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묻는 말에만 성실하게 대답할 뿐, 그게 최선이었다.
그분이 말했던 ‘오픈 공간’이라는 것의 정의는 무엇일까. ‘판매하는 물건’이 아예 없는 공원이나 도서관 같은 곳을 생각하였을까? 사실 나는 자영업 종사자로서 상업 시설도 오픈 공간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상업시설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고,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서점뿐만 아니라 각종 물건들을 파는 다양한 소매 가게에서는 결제를 하지 않고 우선은 둘러볼 권한이 있다.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물건이 없거나 필요한 물건이 없다면 아무것도 사지 않겠다고 결정하고 다시 가게 문을 나갈 수 있다. 다만 사지 않을 물건의 상품성을 훼손하는 것은 제한된다. 옷 가게나 신발가게에서나 입어보고 신어 보고 결정할 수 있듯이 전시된 책을 들춰보고 어떤 내용이 있는지 대략 살펴보는 것이 허용된다. 반면에 흰옷이나 속옷 같은 상품은 착용이 제한되듯이 만화책이나 사진집 등 특정 상품에 한해서는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열람하지 못하는 성격의 책이 있다.
일정 시간 이용료를 결제하는 식의 만화책방과는 다르게, 그리고 1인 1잔을 주문해야 하는 카페와는 다르게 돈을 내지 않고도 얼마든지 열람할 수 있는 ‘열람용 책’이 있고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은 물론 우리 책방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른 책방에서도 이러한 정책으로 운영하는 곳이 있긴 하겠지만 모든 독립서점이 그렇진 않다. 그러면 사람들이 도서관처럼 생각하는 거 아닐까, 나 대신 걱정해 주시는 분들이 간혹 있었지만 우려와는 다르게 그런 일은 지금까지 없었다. 또한 나는 그런 일을 우려하지 않는다. 책방을 도서관처럼 생각하고 책을 읽고 가도 된다. 다만 여기 있는 모든 판매용 책을 자기 책 들추듯이 편하게 보라는 것이 아니라 ‘열람용 책’을 혹은 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책을 마음껏 보시라고 제한해 두었다. 책을 도둑맞는다거나 훼손당하는 일은 조금 우려하지만, 어차피 나가고 있는 전기세를 이용하여 누군가가 책을 읽는 것이 내게 큰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말해도 우리 책방에는 아직 그토록 조용히 시간을 보내러 찾아오는 손님은 몇 번 없었다.
어떤 분은 나의 이런 ‘안일한’ 운영방식을 두고 ‘봉사하듯이’하는 것이냐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나는 정말로 돈벌이에는 맞지 않는 방식으로 살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돈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이들의 틀에서 벗어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그들의 눈에는 너무나 의문스러워서 그렇게 보는 것일 수도 있겠다.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이토록 안일한 운영방식도 영리를 추구하는 일일 수 있다는 거다. 책방에 비하면 매우 거창한 예시이기는 해도, 이를테면 애플에서 ‘애플스토어’를 운영하는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제품을 마음껏 써볼 수 있도록 전시함으로써 그 제품의 매력을 느끼게끔 만들기 위해 운영하는 것이지 않나. 그게 내가 생각하는 책방의 존재이유와도 같다. 서점이 책과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책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책을 살 마음이 없었더라도 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언젠가 ‘이런 책도 있었네?’ 흥미를 갖게 되는 날이 올 수 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책을 한 권 한 권 읽게 되는 사람이 되는 경우도 있다. 오히려 책방이 뭔가 돈을 쓰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면 애초부터 진입장벽을 높이게 되어 악효과가 더 클 것이다. 실제로 책방이 아무리 ‘열린 공간’이라고 광고하더라도 웬만한 카페보다 사람이 적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해나갈 뿐인데 봉사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나야 나쁠 것도 없는데, 엄연한 자영업자에게 ‘봉사’라니 그 말이 참 이상하다. 온갖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 점점 설 곳을 잃어가는 위태로운 책 문화를 지키고자 하는 문화의 수호자처럼 여겨져서일까? 그렇다 할지라도 ‘무형문화재’를 지키는 장인들을 두고는 막상 봉사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봉사’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씀’(네이버 검색: 표준국어대사전) 이라는데 그 정의에는 맞지 않는다. 내가 책방을 하는 것은 남을 위한 것도 아니고 자신을 돌보지 않는 행위도 아니다. 나름대로 힘을 바쳐 애쓰고는 있지만 이는 나를 위한 것이고, 이곳에서 책을 만나며 책을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믿을 뿐이다. 그러한 이들이 소수이지만 존재하고. 나는 그런 이들을 이곳에서 만나는 일이 좋다. 또한 나같은 이들은 생각보다 많다면 많다. 전국에 새로운 독립서점들이 생기는 추세를 보면 서점이 사양산업이라고 볼 수 없다. 어떤 이가 오해했듯이 이 일이 봉사가 아니기 때문에 간혹 선을 넘어오는 사람들을 쳐내야 하는 의무도 나에게 있다. 책방에서 선을 넘는 사람들에 관한 글은 다음에 이어서 써봐야겠다.
미리 예고하자면, 종교를 전도하거나 물건을 팔려고 하는 이들과 나에게 무언가 ‘책방과 상관없는’ 일을 시키려는 이들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