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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호라 Sep 23. 2022

'누칼협'과 '힘들지?'의 사이에서

'누칼협' 이라는 말을 얼마 전에 SNS를 보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다. "누가 칼 들고 ~하라고 협박함?"의 줄임말이다. 풀어서 말하자면 누가 등 떠밀어서, 억지로 시킨 일이 아니고 네가 좋아서, 직접 선택해서 한 일이니까 불평불만하지 말라, 간단히 말해 '싫으면 관둬', '입 닫으라'는 말의 변형이다. 누가 나에게 직접 한 말은 아니지만 그 말이 무척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느끼게 된 건 아마도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 내가 직접 차린, 돈을 벌지 못할 게 뻔히 보이는 일이지만 그걸 감수하고 시작한 일, 바로 서점을 운영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단어를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좋아하는 일을 '선택해서 하고 있는 나'는 '힘들다'라고 말할 권리를 박탈당한 듯했다.


서점을 연지 이제 막 세 달이 되었다. 간혹 가다가 '책만 팔아가지고는 장사가 안 될 텐데, 카페도 같이 해야죠.'라고 말하는 손님들을 몇 번 만났다. 빈 손으로 나가는 손님들만 맞이하는 날이면 나는 여지없이 흔들렸다. 처음부터 책과 모임에 집중해서 운영하기 위해 카페를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고, 적어도 스쳐 지나가듯 말하는 그 손님들이 서점의 생계에 대해서 서점 운영 당사자인 나보다 더 오랜 시간 더 깊이 고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점에서 카페를 함께 운영하는 발상이 이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며, 카페를 운영하는 서점은 그 나름의 고충이 있다. 내가 흔들린 까닭은 아무리 내가 나름대로 고심해서 내린 결정이었더라도 그런 내 결정이 최선이었는지에 대한 확신이 나날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수익적인 측면에서만 보자면 아마도 그들의 말이 더 타당긴 할테다. 그러나 나는 내 서점의 정체성을 '카페 같은 서점'에 두기보다는 커뮤니티로서의 서점, 새로운 책을 만날 수 있는 서점으로 만들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음료를 함께 팔지 않는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렇게 가게를 오픈했다고 고민이 끝난 건 아니다.


절망적인 매출 상황을 볼 때면, 월세를 내야 할 때면, 절충해서 핸드드립 커피만이라도 팔아볼까? 자동 커피머신이라도 들여놓아볼까? 품이 덜 드는 병 음료만이라도 입고해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언젠가 어떤 이유에선가 지금과는 다른 판단을 내리게 된다면 다른 무언가를 하게 될지 모른다. 어쨌든 지금은 음료를 팔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을 따름이다.


'누칼협'이라는 말을 최근에 알게 되었지만, 그 말을 알기 전에도 나는 나 자신에게 칼을 들이밀고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아무도 하라고 하지 않았지만, 내가 결정한 일이니까. 그래, 내가 잘해나가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해. 잘할 수 있어. 시작하자마자 잘 되지 않는 건 당연하지만, 최선을 다해야 해. 늘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까지 해 온 서점의 모든 일이 힘들지 않다고 생각했다. 처음 하는 일이라서 모르는 게 많아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해도, 찾아봐도 잘 모르겠는 것들이 많아도 설레고 재밌는 일들도 많았다. '힘들다'는 건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에만 해당되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힘들다'라고 말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스스로의 입을 막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힘들다고 말하겠어.' 라며. 실제로 뭐가 힘든지도 몰랐다.


하지만 '힘들다'는 건 매우 주관적인 느낌이어서 누군가가 보기에 별로 힘들지 않아 보여도, 어떤 일을 겪은 당사자는 언제든 그 이유가 뭐가 됐든 힘들 수 있었다. 똑같은 일을 겪은 누군가는 힘들지 않았을지라도 어떤 이는 힘들 수 있었다. 나에게 '힘듦'은 시나브로 누적되어왔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하루 종일 문을 열어놓아도 아무도 내 서점에서 책을 사가지 않을 때, 그럼에도 꼬박꼬박 하루하루가 지나 월세를 내야 하고 관리비를 내야 할 때, 그럼에도 새로운 책을 열심히 소개해야 할 때, 손님은 없는데 입고 메일에 답변은 해야 할 때, 비가 오지 않아서 손님이 없나 보다. 날이 맑아서 다들 놀러 가서 손님이 없나 보다, 애써 이유를 붙여보지만 어쩔 수 없이 힘이 빠질 때. 그래서 내게 힘듦은 힘에 부쳐서 힘든 게 아니라 힘이 계속 빠지고 빠져서 힘든 거였다.


서점이 예쁘다고 칭찬해주는 사람, 후기를 남겨주는 사람, 다시 또 방문해서 책을 골라 사가는 사람, 방명록에 힘이 나는 말을 써주는 사람, 인터넷 서점에서 사면 더 싸고 금방 배송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내 서점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굳이 여기서 주문해주는 사람, 글쓰기 모임에 꾸준히 나와주는 사람,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고 그 책을 사가는 사람 그런 이들에게서 힘을 얻을 수 있었지만 힘을 얻는 날보다 힘이 빠지는 날이, 그런 시간이 더 길고 길어서 힘을 내야만 했다. 홀로 온전히 낼 수 있는 힘의 바닥이 어디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내 서점을 더 좋아할까, 어떻게 하면 더 다르게, 특색 있게, 매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공간을 더 잘 채울 수 있을까. 뭘 해야 할까. 그렇게, 손님이 없을수록 더 머리 아프도록 고민한 날이면 힘들다고 말은 안 했지만, 안색이 영 좋지 않아 보였던가. 자려고 누웠는데 남편이 옆에서 '힘들지?' 하고 말을 걸어왔다. 나도 모르게 감은 눈 사이로 눈물이 차서 흘러내렸다. 남편은 그 전에도 자주 '요새 뭐 힘든 일은 없어?', '괜찮아?' 하고 묻곤 했지만, 나는 그때마다 '글쎄', '괜찮아', '그냥 그렇지 뭐' 같은 대답을 했었다. 그런데 그날은 아니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열린 물음보다는 닫힌 물음에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내 감정을 찾아서 대신 말해주길 바랬었나 보다. 그제야 나는 내가 힘들었다는 걸 알았다. 힘들어도 된다는 걸, 나도 힘들다고 말할 자격이 있다는 걸 사려 깊은 당신의 말에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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