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호라 May 24. 2024

해우소

뉴스에서 흘러나온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말

내게도 엄습해 오는 말


문 틈으로 들어오는 빛을 혐오하게 된 건

버닝썬이고 N 번 방까지 갈 것도 없다


화장실이 뉴스에 나오기 시작했을 때

다니던 대학의 화장실에서 ‘몰카범’이 잡혔을 때

그 새끼가 2년 만에 복학했을 때


까맣고 큰 눈동자가 문 틈 사이로 나를 쳐다본다

마주치지 않아야 하는데 마주친다

꿈인데도 숨이 막힌다


나는 바지를 내리고 있다

팬티도 내리고 오줌을 싸고 있다


핸드폰을 쥔 손이 불쑥 나온다

헉, 하고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소리를 질러야 하는데 지르지 못한다


깨면 꿈보다 더러운 현실에서

오줌 싸는 게 두려운 건지

오줌을 싸는 것이 보여지는 게 두려운 건지

오줌 싸는 걸 보려는 놈들이 두려운 건지

헷갈리지만 ‘좆같다’는 말보다 적확한 표현이 있나?


화장실 문에는 이런 것이 있다

“불법촬영하는 당신, 지켜보고 있습니다”

옆에는 괜히 실감 나게 그려 넣은 카메라 렌즈

렌즈가 향하는 곳은 칸막이 안의 나


이런 포스터도 있다

“불법촬영 이렇게 대처하세요!”

찰칵 소리가 들리면 ‘찍지 마세요!’ 하고 소리치란다

꿈에서조차 소리 하나 내지 못하는데


소리 지를 일이 생기기 전에 휴지 한 칸을 뜯는다

양 끝을 비틀어 길고 얇게 만든다

코피가 흘러나오는 콧구멍을 틀어막을 때처럼

불결한 눈에서 새어 나오는 빛을 틀어막는다

피가 멎기를 바라듯 모든 것이 멈춰지길


정체 모를 수십 개의 구멍들이 두려워

오줌이 마려운 것도 참을 수 없어

위, 아래, 양 옆을 샅샅이 경계하며

졸졸졸


영락없는 피식자의 모습으로 배변활동을 하는 동안

고도로 발달한 야만 속에 포위된다

발정 난 새끼들은 좆같은 허상의 포식자인데


화장실은 어떤 곳인가

화장실은 어떤 곳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어디에나 있는, 그러나 어디에는 없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