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호라 Jun 12. 2024

서머타임은 없더라도,

  3월에 미국에 갔을 때, 서머타임(summer time)이 적용되었다. 딱 4주간 미국에 있었는데 서머타임 적용 전과 후를 2주씩 살아보게 된 것이다. 하루에 한 시간을 덜 자거나 일찍 자면 매일의 환한 낮이 한 시간씩 늘어난다니 좋았다. 6시만 되어도 어둑어둑 해졌었는데, 다음 날에는 7시가 되어도 환했다. 볕이 좋을 동안 빌려 썼던 낮은 11월 첫 번째 일요일에 서머타임이 종료되며 다시 갚게 된다. 서머타임은 본래 나의 현재 일상과는 관련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그 변화를 한 번 체감하고 나니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밤거리가 어두운 곳에서는 더욱 그럴 것 같았다.


  서머타임은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에서 처음 시행되었고, 현재는 유럽의 일부국가와 미국에서 적용 중이라고 한다. 등화를 절약하고, 햇빛을 장시간 쬐며 건강을 증진한다는 취지에서 생긴 것이라 하니 납득이 간다. 한국에서도 1954년부터 1961년까지 실시한 바가 있다. 그리고 서울올림픽 때에 1987년부터 1988년까지 실시되었다가 1989년에 폐지되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나는 한국에서 서머타임이 적용되던 때에 세상에 없었다. 만약 내가 직장인일 때 서머타임이 적용되었더라면 꽤 신났을 것 같다. 여름에 퇴근 후의 한 시간을 보너스로 받은 기분이었을 듯해서. 하지 무렵에는 오후 9시까지도 밝다며 열심히 놀러 다녔을 것이다. 해가 이르게 떠올라서 늦게 지면 사람도 그렇게 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자연의 만물들도 신록을 빛내며 햇살을 받아 부지런히 생장을 해내는 것을 보면 나 또한 그 햇살을 낭비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요즘의 날씨를 보면 하루 하루의 쾌청한 날씨가 아쉽다. 많은 사람들이 농사일을 할 때에는 자연히, 식물의 주기에 따라 사람들도 살아야 했기 때문에 해가 길어지면 농번기가 되어 ‘별을 보고 나가서 별을 보며 들어온다’고 했다. 대신 윈터타임도 있어서, 동지 무렵에 밤이 길어지면 한 시간씩 더 자게 해 주면 좋겠다.


  본래 시간은 인위적인 것이다. 태양의 위치에 숫자를 붙여 만든 것이 시간이고 그 시간을 세밀하게 쪼개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시계다. 하루하루를 헤아릴 수 있도록 달력도 만들었다. 우리는 달력과 시계에 따라 모든 일을 계획하고,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시간의 근원은 사실 태양인데, 우리는 이제 그 근원인 태양보다도 시계를 더 믿게 되었다. 시계가 없는 곳은 없다. 마찬가지로 하늘이 없는 곳도 없지만, 하늘과 사람 사이에 건물의 천장이 있을 때가 많다. 시계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자주 보는데 하늘은 그보다 훨씬 적게 본다. 조선시대 때까지만 하더라도 시간은 24시간이 아니라 12 시진으로 나뉘어있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모든 사람에게 시계가 있는 건 아니라서 태양의 위치를 보고, 혹은 햇빛이 만드는 그림자를 통해 시간을 가늠했다. 몇 시진 즈음에 어디서 만나자 하면, 지금 기준으로 2시간 내외를 기다리는 건 예삿일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약속을 할 때 보통 30분 단위로 쪼개어 약속을 하니 그보다 네 배는 더 바쁘게, 48시간을 사는 듯하다. 하지만 해를 쬐는 시간은 12 시진을 살던 때보다 훨씬 적어졌을 것이다.


  해를 못 쬐었던 시간이 참 아쉽다. 나는 본래 햇살과 친한 사람이 아니긴 하다. 새벽에 자고, 해가 중천에 뜰 때쯤 일어나는 저녁형 인간이다. 아마도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일하러 나가도 해는 못 보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의 낮 시간 동안 사무실에서 일하는 현대인들은 만성적인 비타민 D부족에 시달린다. 나 역시 부족한 비타민 D를 햇살을 통해서가 아닌, 영양제를 통해 보충했다. 얼마 전까지 일을 했던 공간도 해가 거의 들지 않는 지하 1층이었다. 처음 그곳에 가게를 할 때는 서점을 할 거니까 해가 없으면 책이 빛바래지 않아서 더 괜찮지 않을까 했는데 책은 괜찮아도 괜찮지 않은 건 나였다. 햇빛을 통해 몸에서 합성되는 영양소가 있으니 이 말은 과언이 아니다. 햇빛은 사람의 호르몬에도 영향을 준다. 그 호르몬은 기분에 영향을 준다. 기분은 건강과도 직결된다. 지하에서 2년 동안 일을 해보니 햇빛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그동안 쬐지 못했던 햇빛이 지금이라도 온몸 구석구석 스며들도록 부지런히 일광욕을 하고 싶어진다. 햇빛은 정말, 그냥 흘려보내기에 아깝다. 해가 길어지는 계절, 서머타임은 없더라도 나 스스로 길어진 해만큼 긴 낮을 살아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경이로운 육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