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산 버섯의 맛

by 오호라

많은 사람들이 맛집과 미식에 관심을 가질 때, 나는 무감했다. 여행 가서도 먹을거리를 탐하기보다는 볼거리를 탐하며 굶주린 채 돌아다니는 편이었다. 그래서 아무 음식이나 먹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나에게도 나름의 기준이 생기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육고기 생산이 환경에 얼마나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인간이 수많은 동물들을 착취하는 방식에 대해 여러 미디어를 통해 알게 되면서 경악했다.


그 결과, 지금 나는 꽤 느슨한 채식을 하고 있다. 채식주의자의 여러 단계 중에 내 경우를 굳이 짚어보자면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 유연한(flexible)과 베지테리언(vegetarian)의 합성어로, 식물성 음식을 주로 섭취하지만 때에 따라 고기류를 먹기도 하는 낮은 단계의 채식주의자)에 속한다. 그러니까,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의 주인공처럼 가족들과 갈등을 겪는 수준까지는 가지 않는다. 고기를 먹는 기분이 썩 좋지 않지만 가족들이 고기를 먹으라고 하면 그냥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나지’, ’이런 날에는 고기를 먹어야지 ‘라고 말하는 가족들에게 나의 채식주의를 완전히 이해받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나는 대신 고기를 한 점 먹을 때 채소 반찬을 서너 번씩 더 먹는 식으로 은밀하게 채식 아닌 채식을 한다.


세계 3대 진미인지 4대 진미인지, 미식가들이 찬양하는 몇 가지 음식이 있다. 트러플(송로버섯), 푸아그라(거위 간), 캐비아(철갑상어 알)까지가 주로 3대 진미라고 불리고, 문화권에 따라 고베 비프(일본 와규)나 제비집 또는 샥스핀(상어 지느러미)을 포함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 중에서 그나마 환경이나 윤리적 문제에서 자유로운 음식은 아마 송로버섯뿐일 듯하다. 모든 버섯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트러플 향이 좋다는 건 인정하지만, 나에게 정말 진미는 따로 있다. 서양에 트러플이 있다면, 우리나라 산에는 송이버섯과 능이버섯이 있다. 나는 그 버섯들을 처음 맛보았을 때 사랑하게 되었다.


매년 추석이 되면 부모님 댁에 방문하는데, 부모님은 그즈음 산에 다니며 야생버섯을 채취해오시곤 했다. 어렸을 때에는 나도 몇 번 따라간 적이 있다. 산에서 발견한 송이버섯을 때로는 아빠가 그 자리에서 다용도 칼로 슥슥 다듬어 한 조각씩 주시기도 했는데, 처음 느껴보는 환상적인 맛이었다. 요즘은 야생버섯 채취에 대한 규제가 많아지기도 했고 기후변화로 인해, 버섯이 풍년이던 시절은 추억이 되었다. 더구나 얼마 전, 전국 곳곳에 있었던 대형 산불로 인해 어딘가에서 가을을 기다리던 버섯종자들은 안타깝게도 수없이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그래도 귀한 버섯의 맛을 즐기고 싶은 나는 그맘때쯤 산 아래 버섯시장에 부모님과 함께 방문하여 송이버섯이나 능이버섯을 산다. 일 년 중에 아주 짧은 기간, 약 이 삼주일 동안, 아는 사람만 아는 산속의 은밀한 곳에서 조용히 피었다가 사라지는 버섯들이기에 송이버섯이나 능이버섯 1kg은 한우 1kg보다 비싸다. 누군가는 그 가격에 왜 굳이 버섯을 먹느냐고 할테지만 나에게 송이버섯을 한 번도 맛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가을은 가을이 아니다. 그때가 꼭, 친정 가족들과 만나는 추석 즈음이므로 내가 아주 가끔 엄마에게 먹고 싶다고 말하는 몇 안 되는 음식이다. (또 다른 것으로는 쑥, 달래, 두릅 등 제철 봄나물들이 있다.) 내가 ‘뭔가를 먹고 싶다’고 말할 때가 잘 없으므로, 그리고 일 년에 단 한 번뿐이기 때문에 버섯이 몇십만 원이더라도, 사 먹는다. 이것이 사치라면, 음식에 있어서 내가 유일하게 부리는 사치가 바로 버섯사치다. 내가 고기를 안 먹겠다고 하면, 잔소리를 하시지만 그 비싼 버섯을 먹겠다고 할 때는 또 기꺼이 사주시는 부모님을 둔 덕에 나는 소고기보다 비싼 버섯을 양껏 먹는다. 물론 나에게는 소고기 보다 버섯이 훨씬 맛있었기에 버섯은 충분히 제값을 했다고 본다.


송이버섯과 능이버섯을 흔히 고기와 함께 먹거나 백숙으로 끓여 먹곤 하지만 나는 최대한 버섯 본연의 맛 그대로 즐기는 것이 좋다. 송이버섯은 겉흙만 발라내고 생으로, 능이버섯은 씻어서 살짝 데친 상태로 무엇도 안 찍어 먹는 게 좋다. 엄마는 송이버섯에는 참기름과 소금을 넣은 기름장을 찍어먹으라고, 능이버섯에는 초고추장을 찍어먹으라고 주셨지만 나는 그렇게 먹으면 버섯의 향을 덜 느끼게 되는 게 아쉬웠다. 그 버섯들이 비싼 만큼 내 입 안에서도 제대로 귀한 대접을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지도 모른다. 송이버섯에서는 솔의 향이 묻어 있는 듯하고, 능이버섯에는 묵직한 나무 향이 나는 듯하다. 나무 향과 흙냄새, 그 버섯 특유의 향을 함께 간직한 몰캉하기도 하고 쫄깃하기도 한 육질과 부드러운 결.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그 산의 맛이 사랑스럽다. 귀한 버섯이었던 만큼, 능이버섯이나 송이버섯을 데친 물도 차처럼 마시는데 나는 그 버섯의 ’ 정수‘도 참 좋다. 야생 버섯을 삼킬 때면, 나는 산을 상상하게 된다. 솔잎과 흙을 은신처 삼아 조용히 자라났을 그것을 감히 발견한 누군가의 벅차오르는 기쁨을 떠올린다. 그 만남이 어찌나 귀한지 알기 때문에 더욱 달콤한 기분이 든다.


그 비싼 버섯들이 아니더라도 사실, 나는 온갖 버섯들을 좋아한다. 새송이버섯, 팽이버섯, 목이버섯, 양송이버섯, 송화버섯, 표고버섯 … 버섯은 양식으로도 많이 재배되지만, 환경을 해치지 않는다. 스마트팜의 ‘버섯 아파트’에서 자란다고 해도, 고통받는 생명은 없고, 비명을 지르는 존재도 없다. 그래서 좋다. 누가 음식을 먹을 때 굳이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묻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고 마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나는 어찌할 수가 없다. 그것까지가 모두 나에게 미각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진미라 일컬어질 때에는 그 식재료가 생산되는 방식까지 감안해야만 할 것이다.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고통이 포함되지 않은 음식이면서 풍미가 뛰어난 음식. 전에 비해 식재료가 풍부해졌고, 더 많은 존재와 공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이 세상은 이미 그런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3대 진미에 버섯이 이미 한 종류 포함되어 있는 건 꽤 희망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진미의 기준은 이제 달라져야 하고, 분명 곧 달라질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자궁이야기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