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여행지에서 아기 양말 하나를 샀다. 홋카이도에서 관광상품으로 흔한 새 ‘시마에나가’, 한국 명칭으로 ‘흰머리오목눈이’가 그려진 것이었다. 임신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머리맡에 아기 양말을 두면 아기가 찾아온다’는 미신을 믿고 싶었다.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새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에 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기가 그 양말을 신으려면 어느 정도 자라야 할지 감이 오지는 않았지만, 아기가 양말을 신고 아장아장 걷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양말을 산지도 9개월이 지났다. 그때 임신했다면, 뱃속에서 아이가 다 자랄 만큼의 기간. 그 기간의 두 배정도 되는 기간, 스무 달에 가까운 기간 동안 나는 계속해서 임신을 시도하는 중이다. 산전검사에서 남편과 나, 둘 다 임신하기에 특별한 이상소견은 없다고 들었기 때문에 ‘아직’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단계까지 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준비기간’이 이토록, 내 예상을 훨씬 웃돌만큼 길어지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임신의 어느 정도는 노력의 영역이면서도 최종적으로는 운의 영역, 혹은 신의 영역이었다. 그러니 인간으로서 어느 정도까지 노력해봐야 하나 고민이 깊어지는 시기다.
처음에 나는 이 일이 그저, 앎의 영역이자 노력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임신, 출산과 관련된 책도 읽고, 임신을 하면 몸이 어떻게 변하고 내가 무엇을 겪게 되는지 미리 알아둠으로써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임신과 관련된 콘텐츠를 처음 볼 때는 놀라웠고, 두려웠지만 그것조차 반복되니 이제는 궁금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토록 힘들다는 입덧과 어지럼증도, 뱃속에서 태아가 꿈틀대는 신비롭고도 이상한 이물감도, 코끼리가 배를 밟고 지나가는 듯하다는 진통도 두렵기보다 애틋해지려고 했다. 내가 언젠가 할 수도 있는 경험이 아니라, 내가 평생 알 수 없는 경험이 될까 봐.
이런 생각에 대해 남편에게 말하면, 남편은 나를 안으며 아이 없이 우리 둘이 사는 것도 행복하다고 했다. 괜찮다고 다독였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 조급했다. 이도 저도 아닌 내 상황이 싫어서, 아이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큰 건지, 이 준비기간에서 벗어나 확실한 상황에 도달하고 싶은 마음이 큰 건지 알 수 없었다. 마음을 놓으면 아이가 찾아온다는데, 어떻게 해야 마음이 놓아지는 것인지 모르겠고, 마음을 놓고 배란일이나 생리 주기 따위 신경 쓰지 않아도 아이가 찾아오는 기적 같은 일을 바라는 건 더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남편은 국민연금 개편안에 대한 뉴스를 보고, 우리의 자식 세대가 월급의 40% 이상을 연금으로 내야 한다는 사실을 걱정했다. 이상 기후로 곳곳에서 산불이 번지고, 봄마다 더욱 심해지는 듯한 미세먼지를 견뎌내야 하는 환경에 대해서도 걱정했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낳는 게 맞나…”
남편이 한탄했다. 나 또한 아이를 기다리는 한편에서는 자꾸만, 나쁜 뉴스들을 보며 흔들렸다.
“그래도 태어나서 좋은 일들도 많잖아.”
우리는 잘 키울 수 있을 거라고, 행복한 경험을 많이 겪게 해 주고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도 알려줄 수 있을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왠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에 조금 슬퍼졌다. 우리가 사실은 확신을 갖지 못해서 아이가 와주지 않는 건 아닌지, 괜한 생각을 했다.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시술을 받아 아이를 가져야 할 만큼 간절한지, 태어날 우리 아이가 ’ 그렇게까지 해서 나를 낳아야 했어?‘라고 묻는다면 어떤 답을 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나쁜 뉴스들을 보면 세상에 또, 하나의 인간을 더하는 것이 이기적인 건가 싶다가도 내가 좋아하는 풍경들을 보면 나는 자꾸만 미래의 아이를 상상하고 싶어진다. 노래하는 새에 대해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고, 어느 계절에는 어떤 꽃이 피고 어떤 열매가 맺히는지 보여주고 싶다.
아이에게 양말을 신기고 있을 어느 미래, 아이가 제 손으로 양말을 벗고 있을 어느 미래. 그 미래에 미세먼지가 지금보다 더 심할지라도, 또 다른 팬데믹이 올지라도. 내 반쪽인 작고 여린 아이를 보면, 아이를 세상에 초대한 걸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확신이나 확언은 아니더라도, 후회하지 않으리라고, 네가 우리의 아이로 온 것에 후회를 심어주지 않으리라고 다짐은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