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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호라 Dec 07. 2023

임신, 그 두려움과 기다림에 대하여

  너를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고난이 있다. 그 고난은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거쳤다. 심지어 예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 조차도, ‘동정녀’ 마리아라고 하는데 남자와 관계는 하지 않았음에도 임신과 출산을 거쳤다고 한다. (나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대략 알고 있는 성경의 이야기를 토대로 하면 그렇다.) 어쨌거나 하느님께서는 신의 아들을 태어난 아기 형태로 내려주신 것이 아니라 마리아의 몸에 태아의 형태로 내려주셨다. 그런 걸 보면 분명, 종교적으로 성관계는 불경한 것일지 몰라도 임신과 출산만큼은 고결하고 성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시각이 있다. 그런 시각을 떠나서 나는 감히 성스러운 임신이 현대사회의 여성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게 되는지 기록하고자 한다.


  임신과 출산은 함께 엮여있지만 별개의 사건이기도 하다. 아니, 임신은 9개월에서 10개월가량 벌어지는 일이어서 사건이라기보다는 ‘기간’이라고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앞서 임신과 출산을 별개의 사건이라고 말한 것은 임신 없이는 출산도 없지만, 세상에는 출산 없는 임신도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너를 만나기 전, 나는 출산을 하기에 ‘겁이 나는’ 임신을 하게 될까 봐 두려워한 기간이 있었다. 달리말해, ‘출산을 한다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할지도 모르는, 혹은 인생이 망할지도 모르는 임신’ 일 수도 있겠다. 정신적으로는 임신을 생각하지도 않았을 때부터, 사회적으로는 임신을 할 수 없거나 용인되기 힘든 나이일 때부터, 몸은 이미 임신이 가능한 몸을 만들어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의 몸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에게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건 인생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건 중 가장 불행한 사건 중 하나로 여겨진다. 어찌나 불행한 일인지, 당사자인 여성뿐만 아니라 딸을 가진 모든 엄마들에게도 가장 공포스러운 일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 기간 동안 나는 내 몸을 원망했고, 남자들의 욕망을 증오했고, 남자들의 욕망은 당연시 여기면서도 여성들을 단속하는 세상에 울컥울컥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면서도 나 또한 욕망에 빠져들곤 했던 어떤 날들에 정체 모를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임신이라는 과정을 거치기 위해서는 ‘임신을 위한 성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과도 연결된다. (보통의 인간은 성녀가 아니기 때문에…) 그 기간은 짧으면 몇 달, 길게는 3~4년 혹은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는데, 어쨌든 아주 넉넉잡아 계산해 보더라도 10년은 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가임기간 중에서 여자는 임신할까 봐 성관계를 두려워하는 기간이 그렇지 않은 기간보다 더 길지도 모른다. 그런 줄도 모르고 가임기간은 눈치 없이 길기도 하다. 임신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 누군가는 짧다고도 말할지 모른다. 그들에게도 역시나 임신을 기다렸던 기간보다 임신하면 안 되었던 기간이 더 길었을 것이다. 임신해도 괜찮은 기간 동안 여성은 그 전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성관계를 경험하게 된다. 처음으로 전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고, 죄책감을 갖지 않아도 되는 성관계를. 그것만으로 세상은 ‘임신할 수 있는’ 여성에게 다른 차원의 문을 열어주는지도 모른다.


  내게는 그랬다. 임신과 출산을 10년 넘게 두려워하고 피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임신을 하리라’고 굳건한 마음을 먹는 건 내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을 먹고 나니 어쩐지 해방된 느낌이기도 했다. 임신을 할 수 있지만 해서는 안 되는 몸에서 임신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마음껏, 기꺼이 발휘할 수 있는 몸이 된 것이다. 내 몸의 허락은 진작에 있었으나, 열몇 해만에 나는 운 좋게, 사회적 허락까지도 획득하였다.


  솔직히 나는 내 몸으로 너를 만들어 내고 잉태하는 그 신비를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게도, 좋다. 두려울 때도 있지만 아직은 알 수 없는 그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한다. 그 체험에 신비감을 느끼는 것도 어쩌면 생명의 번식에 유리하게끔 내 유전자에 새겨진 진화된 뇌의 작용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러한 나의 욕망이 드디어 사회적 요구와 합일을 이룰 수 있었다는 점에 은근한 해방감을 느낀다. 성관계를 할 때 늘 공포였던 임신을 이제는 축복으로 여길 수 있는 행복을 짧게나마 누릴 수 있는 시기라니, 급작스럽게 태세가 전환된 느낌이지만 즐겨야 마땅하다.


  즐겨야 마땅함에도, 마냥 즐거울 수 없는 까닭은 임신과 출산이 쉽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어서다. 임신하면 안 되었던 시기에는 단 한 마리의 정자라도 몸에 들어오면 임신이 되는 거 아닐까 노심초사하며 물리적(콘돔), 화학적(피임약)으로 철통방어를 해왔기 때문에, 그 방어선을 풀기만 하면 당연히 곧바로 임신이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안전하고 즐거운 성관계를 위해서라면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좋지만, 아무튼 생각보다 임신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철통방어를 뚫고 쳐들어오는 적군처럼 엄청난 확률로 맞이하게 되는 경우가 있기도 해서 어쨌거나 임신의 확률은 정말 미지수다. 통계적으로 만 35세 미만의 남녀가 '정상적인 성생활'을 하면 3개월 이내에 80%, 1년 이내에 90%의 확률로 임신이 된다는 평균적인 확률정도만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개개인의 임신 확률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결국 알 길이 없다.   


  생물학적으로 나의 난자는 건강할 것인지, 내 자궁은 착상하기에 적당한 두께를 갖고 있는 것인지, 배우자의 정자의 양과 질은 어떨지, 유전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을지 등, 병원에 가면 생식력과 관련된 기본적인 검사를 할 수도 있지만, 자연임신을 시도하는 과정에서는 결국 알 수 없는 확률을 높이기 위해 막연한 노력을 하는 수밖에 없다. 영양제를 먹고, 건강한 생활을 하기 위해 술이나 담배를 끊고, 운동을 하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배란기에 성관계를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지친다. 그 오랜 기다림은 즐겁지만은 않다. 숱한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는 과정이다.


  배란일에 맞춰서 관계를 하기 위해 짧으면 5일 내외, 길면 한 달 내내(생리주기가 일정하지 않다면), 배란테스트기의 '피크'(두 줄이 가장 진해지는 기간)를 기다린다. 시기에 맞게 관계를 하고 나면 그로부터 대략 2주 후쯤 그때의 시도가 '수정 및 착상'의 단계로 이어졌는지, 혹은 그렇지 못했는지는 임신테스트기 또는 평소처럼 지긋지긋하게 맞이하는 생리혈을 통해 알 수 있게 된다. '수정 및 착상'이라고 굳이 엄밀히 표현한 까닭은, 일명 '임테기 두 줄'을 본 이후에도 기다림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다음의 기다림을 '임테기 역전(임신테스트기의 대조선보다 테스트선이 진해지는 현상)을 본다'라고 한다. 꽤 많은 사람들이 임테기 역전 전 단계에서, 화학적 유산을 경험한다. 혹은 자궁내벽에 제대로 착상을 한 것이 아니고 수정란이 나팔관 같은 엉뚱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는 '자궁 외 임신'이라는 현상도 있다. 임신을 준비하기 전까지는 죄다 몰랐던 용어다.


  수많은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마지막 화에서처럼, 그냥 피임 없이 관계하고 나면 어느 날 갑자기 '웁'하고 귀여운 수준의 입덧을 하고, 그게 임신이구나 하하 호호하면서 깨닫게 되는 줄 알았지... 그러니까 두 줄을 본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 아니, 두 줄을 보기까지 사용하는 배란테스트기와 임신테스트기가 몇 개인데! 자연임신에 있어서는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봤자다. 오히려 '테스트기'의 존재가 더 신경 쓰이고 골치 아프게 한다. 임신테스트기가 없던 시절에는 화학적 유산이 있는 줄도 몰랐을 테니까. 예비 임산부들은 임테기 역전 현상, 즉, 아주 진한 두 줄을 볼 때까지 또 열몇 개의 임신테스트기를 아침마다 매일매일 하며 기다린다. 그리고 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통해 아기집이 제대로 된 자리에서 자리 잡고 아기의 심장소리가 들린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마침내 안심할 수 있다. 아니, 안심은 이르다. 사실 12주까지는 자연유산 확률이 높은 시기여서 산모가 일상생활에서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고... 결국 그렇게 출산까지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참고로 임신한 몸이 겪는 신체적 고통에 대해서는 아직 요만큼도 쓰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현재 임신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묘한 해방감'을 느끼는 동시에, 강박증적 '임신인가' 증상을 앓고 있다. 맘카페에서는 소위 '증상놀이'라고 부른다. 임신 초기의 증상이라고 말하는 졸림, 피로, 가슴 붓기, 배에 콕콕거림이 느껴짐 등등 몸의 각종 증상에 과민반응하여 뭐만 하면, '임신인가?'하고 자꾸 헛되이 기대하는 일을 말한다. 나는 이제 막 3개월째, 임테기 두 줄 기다림 시기를 지나고 있는 중이다. 다음 단계의 기다림으로 넘어가게 된다면 또 어떤 감정의 변화가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어쨌든 기다린다는 것은 고되기도 하지만 설레는 일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이들 중에, 이토록 고된 기다림을 함께 하고 있는 동지가 있다면 응원을 전하고 싶다. 마침내, 기다림은 만남으로 이어질 것이다. 쓰다 보니 러브레터와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먼 미래에서 네가 이 글을 읽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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