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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니 Nov 19. 2021

감사에 눈을 뜨다

(소소 32개월)

  아침잠에서 깬 소소가 아빠를 부르며 온방을 돌아다녔다. 평소보다 유독 아빠를 찾는 게 마음에 걸렸다. 어제저녁에 물감 놀이할 때 잔소리를 많이 했나, 엄마한테 스트레스 받아서 아빠를 찾나 걱정이 되었다. 남편과 상의할 일이 있어 통화를 하다가 “그런데 소소가 오늘 아침에 아빠를 유독 찾더라. 내가 잘 못 놀아줬나 봐” 했더니 남편이 “어젯밤에 자기 전에 네가 화냈잖아”라고 했다. 그제야 어젯밤 일이 떠올랐다. 


  내가 속이 아파서 눕질 못하고 침대에 앉아있었다. 잠투정이 시작된 소소가 “엄마 누워, 엄마 누워” 하며 울기 시작했는데 도저히 누울 수가 없었다. 엄마는 배가 아파서 누울 수가 없다고 말해도 졸린 소소의 악쓰는 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나중에는 나도 짜증이 나서 “엄마 아프다고!”라고 어른 대하듯 큰 소리로 화를 냈다. 그래도 계속 울어대서 결국엔 원하는 대로 내가 옆에 누웠고 잠시 후 소소는 잠이 들었다. 그게 상처가 되었던지 아침에 엄마가 따라다니는데도 아빠만 찾았다.


  아무리 속이 안 좋았어도 옆에 누워달라는 그거 하나 못해서 애한테 소리를 질렀나 후회가 됐다. 이 일로 애착에 영향을 주면 어쩌지. 오늘도 괴로운 자책 타임이 시작되었다. 혼자 끙끙대다가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말했다.


  “그냥 잘해주고 싶은데 잘 안 되는 엄마의 평범한 고민 같은데? 나도 몸이 안 좋을 때 하나한테 소리 지른 적이 있어. 엄마의 컨디션이 안 좋으면 어쩔 수 없이 일어나기도 하는 일 같아. 잘못한 건 맞지만, 후회로 뒤집어쓰지 말고 앞으로 같은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할까 전략을 세우고, 최대한 빈도를 줄여나가는 걸로 하자.”


  별일 아니라는 언니의 말에 위안을 얻었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고민 끝에 소소 친구 엄마들이 모인 육아 단톡방에 물어보기로 했다. 용기가 필요했다. 만약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내가 나쁜 엄마라는 게 들통날 것만 같았다. “맙소사! 소소 엄마! 그런 행동을 하시다니요!” 라는 주홍글씨가 당장 새겨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도 그저 보통의 엄마들처럼 키우고 있다는 확신이 꼭 필요했기에 최대한 무심한 척 적었다. 


  13:52  “소소가 어제 제가 잘 때 화냈더니 아침에 그리 방마다 다니며 아빠를 찾네요.”

  13:53  “그거 보니 미안하더라고요. 나만 이렇게 바보같이 화내고 폭발하는 건지, 다른 엄마들도 이런 건지 알 수가 없네요ㅠㅜ”


  반응을 기다리는 몇 초가 영원처럼 느껴졌다. 다행히 H가 대답했다.


  13:54 “저희도 매일 그래요. 맨날 울고 아빠 찾아가요.”


  앗, 한 명 있구나! 언니의 말이 맞았어! 다 그렇게 키우는 거였어! 그런데 반가움도 잠시. H가 이어 말했다.


  13:55 “주로 동생 밀거나 해서 위험하면 저도 모르게 벌컥 화내요.” 


  어라, 이 엄마는 분명히 화를 낼만한 상황에 화를 낸 거네? 훈육의 조건-위험한 행동/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에 모두 해당하는 거잖아? 역시 나만 나쁜 엄마였어. 내가 왜 여기다 말을 꺼냈을까. 후회와 자괴감이 덮치며 확인 사살을 당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Y의 대답이 보이는 순간 나는 다시 행복의 구름 위로 올라갔다. 


  13:59 “저두 요새 매일 혼내요ㅠㅜ 혼내면 아빠 보고 싶다 하면서 아빠 엄청 찾아요.” 


  아, 내게도 희망이 있어. 10분 뒤 J가 말했다.


  14:09 “민석이도 제가 혼내면 아빠도 없는 아빠방에서 아빠 아빠 그래요.”   


  다행이다. 나도 보통의 엄마만큼 화를 낸 거구나. 긴장이 스르르 풀리는 게 느껴졌다. 십여 분 동안 한 고비를 넘은 느낌이었다.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자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오늘은 이렇게 육아 효능감이 무너질 위기를 극복했지만 다음에는 어떻게 하지.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일일이 남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① 이 정도 화내는 건 인간미 있는 보통의 엄마인 건가

② 내가 자기 기분 따라 막 나가는 양가형 엄마가 될 위기에 쳐해 있는 걸까

③ 내가 완벽주의 때문에 화 한 번 안내는 엄마가 되겠다는 불가능한 목표를 쫒고 있는 건가


  미래에 닥칠 문제 상황이 1,2,3번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미 낮은 자존감 및 지난 세월 소소를 방치했다는 원죄를 지니고 있는 나로선 갈피를 잡기가 어려웠다. RT 수업에서 이 고민을 오하하 선생님에게 털어놓았다.


  “소소한테 화내고 나서, 소소가 계속 엄마 보고 옆에 누우라고 했을 때 어떻게 했어요?”

  “누웠죠, 뭐.”

  “엄마 몸이 그렇게 아픈데도 누웠어요?”

  “애가 계속 우니까…….”

  “그래도 자기 몸이 아픈데도 애 옆에 누워주고. 소소 엄마가 엄청 대단한 거죠. 이렇게 생각해봐요. 소소 엄마가 예전에 지금보다 몸이 더 많이 아플 때 계속 침대에 누워만 있었잖아요. 그때 소소가 ”엄마, 엄마“ 하고 찾아와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해서 소소가 그냥 돌아갔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지금 한 번 봐요. 지금은 소소가 엄마 찾으니까 엄마의 몸이 아픈데도 참고 애 옆에 누워줬잖아요. 예전처럼 심하게 아프면 해주고 싶어도 그렇게 못 해줬을 텐데.  그러니까 ‘참 다행이다, 나는 예전보다 건강하다, 참 감사하다’ 하고 감사하는 생각을 가져야 해요. 자기 전에 오늘 감사한 일 3가지 생각하기 이런 시간을 가져 봐요. “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점점 편안해졌다. 그렇구나. 내가 예전엔 못한 것을 지금은 하고 있구나. 작년에 쓰러지고 나선 소소가 매일 침대 곁에 와서 “엄마, 엄마” 불러도 기운이 없어서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그럼 아빠가 와서 “소소야, 엄마는 아파”라고 말하면 더 이상 보채지 않고 아빠 손을 잡고 나가던 두 살 배기. 그 가슴 저릿한 기억. 그에 비하면 어젯밤 일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얼마나 장한 일인가. 나의 몸과 마음은 그때보다 훨씬 건강해졌구나. 


  관점을 달리하니 나쁜 일이 감사한 일이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감사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게 된 나는 관련 책들을 찾아 보기 시작했다. 감사함 찾기에 집중하니 저 위의 ①, ②, ③번 선택지를 고민할 일도 줄어들었다. 내 행동이 옳은지, 정상적인지 가늠할 시간에 숨은 감사포인트 찾기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잊지 않기 위해 ‘감사함 찾기’라고 포스트잇에 적어서 벽 여기저기에 붙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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