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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니 Jan 06. 2022

엄마 냄새

너에게 천리향이 되고 싶다 (소소 34개월)

  “엄마 엄마“ 이른 아침 소소가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침대와 나는 물아일체의 상태이고 눈꺼풀은 풀칠이나 한 듯 꿈쩍을 않는다. 그 와중에 아이가 쉬지 않고 불러대는 '엄마' 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아, 귀찮아.' 순간 놀라서 얼른 생각을 거둬들였다. 귀찮다니. 감지덕지해도 모자랄 판에. 아이가 엄마를 찾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어떤 사람들은 모를 거다. 우리 집에는 물리적 엄마는 있었으나 정서적 엄마가 부재하던 시간이 길었다. 그 까만 시간 동안 소소는 엄마를 찾지 않았다. 어쩌면 찾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도저히 안 떠지는 눈을 억지로 비벼서 떴다. “사랑해, 좋은 아침이야”라고 말하며 옆에 누운 아이를 안아주었다. 그러자 소소가 웃으며 “엄마 냄새난다. 엄마 냄새”라고 말했다. 냄새? 매일 바르는 로션 냄새를 말하는 걸까. 어제 자기 전 샤워도 하고 머리도 감았으니 구린 냄새는 아닐 것이다. 그럼 이걸 내 마음대로 해석해도 되려나. 최근 아이와 스킨십을 늘리려고 나름 노력 중이므로 예전보단 그래도 조금 더 껴안고 만지고 하는 시간이 늘었다. 그래서 진짜 엄마 살 냄새, 체취를 느낀 건 아닐까 라고. 


  소소가 어린이집에 간 뒤 책장에서 「엄마 심리 수업」을 오랜만에 꺼내보았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유명한 표현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엄마 냄새’다.        

엄마 냄새는 엄마 마음이다. 사람들은 아이를 볼 때 자기도 모르게 엄마 냄새를 맡는다. 아이는 엄마에게 대접받은 그대로 사람들에게 대접받는다. 지금 엄마인 나의 냄새를 맡아보자. 나는 아이에게 어떤 냄새를 풍기고 있나? 사랑의 냄새? 미움의 냄새? 못마땅 냄새? 기쁨의 냄새? 귀찮은 냄새?

 - 윤우상, <엄마 심리 수업> 


  작년에 이 책을 읽을 땐 속이 말이 아니었다. 형광펜으로 책에 밑줄을 그어가며 '아이를 의심하지 말아야지. 기질을 인정해야지'라고 머릿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건만 눈빛에서, 말에서 새어 나오는 불안의 공기는 어떤 식으로도 감출 수가 없었다. 이 냄새가 아이 몸에도 함빡 배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끝없이 마음을 할퀴었다. 그때 나의 엄마 냄새는 ‘순도 100%짜리 불안’이었다.


  오늘의 나는 아이에게 어떤 냄새를 풍기고 있을까. 평소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정전이 된 듯 침묵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지만 다행히 어젯밤에 소소의 숨겨진 노력을 칭찬하는 글을 작성했다. 소소가 정말 대견했고 아이의 애씀을 포착한 나 자신도 기특했다. 그러니까 오늘은 스스로에게 조금은 점수를 후하게 줄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서 풍기는 엄마 냄새는 희미하겠지만 그래도 사랑의 냄새일 거라고 감히 생각해본다. 남들처럼 진하지는 못하더라도, 아주 옅은, 그렇지만 분명 사랑의 냄새일 것 같다. 

 

  오래전 수목원에서 딱 한 번 천리향 나무를 본 적이 있다. 그날 온실을 돌아보는데 가는 곳마다 계속 같은 향수 냄새가 났다. 누가 이렇게 향수를 잔뜩 뿌리고 다니냐며 친구와 웃었다. 그러다 어느 나무 앞에 이르자 그 향이 엄청나게 강해졌다. 그제야 그게 꽃향기인 걸 알았고 그게 바로 천리향이었다. 해설사분이 운이 좋다며, 꽃이 핀 시기를 맞춰서 잘 왔다고 했다. 원래 정식 이름은 백서향인데 향기가 워낙 진해 천리까지 퍼진다고 천리향이란다.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그 향은 거대한 온실 전체에 진하게 퍼져 있었고 향수 냄새라 착각할 만큼 아찔하게 그윽했다.

 

  나의 엄마 냄새가 천리향에 비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노력하다 보면 천리를 넘어 퍼지는 진짜배기 사랑 냄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천리는 393km, 서울과 부산 사이의 거리다. 오늘 내가 300km 떨어진 곳에 계시는 내 부모의 사랑을 고스란히 느끼듯 언젠가 소소가 나와 멀리 떨어지더라도 엄마의 사랑 냄새를 느낄 수 있도록. 내 아이의 몸 구석구석에서 사랑이라는 냄새가 폴폴 풍긴다는 상상만으로도 미간의 주름이 펴지고 눈앞에 환한 빛이 어른거린다.


  밤에 잘 시간이 되어 다시 침대에 누웠을 때 소소에게 물었다. "소소야, 아침에 엄마 냄새가 난다고 했지? 엄마 냄새는 어떤 냄새야?" 소소가 “좋은 냄새”라고 답한다. 너무 기쁘고 감동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소소가 말했다.

 “지금도 나. 엄마 냄새. 좋은 냄새야.” 

천리향 <출처 : 안녕, 우리 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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