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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니 Jan 14. 2022

그림책 진짜 읽어주기

다독, 완독보다 더 소중한 게 있음을 (소소 40개월)

  소소가 어린이 서점에서 얻어온 과학전집의 샘플 책을 열심히 본다. 이 나이쯤 많이 들이는 인기 시리즈고 샘플 책도 좋아하니 사줘야 하나 싶지만 썩 내키지가 않는다. 지식 관련 책을 들이면 아이가 내용을 얼마나 기억하는지에 내가 집착할까 봐 우려가 되어서다. 2년 전 소소가 자연관찰책을 즐겨볼 때 거기 있는 내용을 얼마나 외우는지 확인하고 뿌듯해하기를 반복하며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을 가졌던 흑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여느 부모처럼 우리 부부도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랐다. 그러나 나는 사심이 가득했고 남편은 아무리 천천히 읽으라고 잔소리를 해도 뒤에 누가 쫓아오는 양 엄청난 속도로 랩을 하듯 낭독했다. 또 우리는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무조건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꽉 채워 읽었다. 책을 읽어주는 동안 어느 페이지에 그려진 나비를 보고 아이가 “나비다”하며 관심을 보여도 멈추지 않고 끝까지 읽기의 소임을 다했다. 어떤 책을 사야 할지는 부지런히 검색했지만 어떻게 읽어줘야 할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둔 적이 없었다. 다양한 독후(後)활동이 있다는 건 알았어도 독중(中)에는 무심했다.


  목소리를 이용해 실감 나게 읽어주는 게 유일한 독중()의 최선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건 그림책 읽어주기를 주제로 한 부모 교육을 들으면서다. 그림책을 읽기 전 표지부터 보고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것, 책을 펼치면 글씨 먼저 읽어주지 말 것, 어른이 그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여길 보라는 지시이므로 지양할 것을 배웠다.


  번뜩, 책 읽어주기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음이 뇌리를 강타했다. 강사님 본인이 학교에 가서 그림책을 읽어줄 땐 처음부터 끝까지 책 한 페이지만으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놀라운 말을 고 나서였다. 많은 책을 읽어주는 것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주는 것보다, 내용을 기억하게 하는 것보다 아이의 관심에 함께 머물며 이야기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한 거였구나. 책 읽어주기의 본질은 교감과 소통이었다. 그걸 깨닫자 사사로운 마음들이 허공으로 흩어지고 왠지 모를 홀가분함마저 찾아들었다.


  귀퉁이에 코딱지만 하게 그려진 나비 한 마리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게 아이들이니 거기서부터 상상의 나래가 펼쳐질 것이다. 그림책 한 페이지를 가지고 날아갔다가, 헤어졌다가, 먹었다가, 죽었다가, 변신했다가 하며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느라 분주한 꼬맹이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니들이 상상한 게 다 옳다며 강사님은 천연덕스럽게 맞장구를 쳐주었을 것이다.


  그날 이후 우리 집의 책 읽어주는 풍경은 사뭇 달라졌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땐 표지부터, 그림부터 탐색한다. 책장을 넘기고 내가 잠시 기다리거나 ‘오’ 정도의 간단한 추임새를 넣으면 소소가 자신의 관심거리를 찾아낸다. “사자가 자고 있네”라고 장면에 관심을 두기도 하고, “민들레다”라며 그림을 포착하기도 하고, “읽어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아이가 원하는 만큼 탐색이 이루어지도록 기다리고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부분에서는 언제나 멈춰서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책을 읽으며 언제, 어디서 시작하고 멈출지는 늘 아이가 결정한다.


  책장을 넘기기가 무섭게 글씨란 글씨는 죄다 읽어버리겠다는 듯 읽기 시작하던 엄마·아빠는 이제 없다. 아이의 눈길이 그림에 채 닿기도 전에 한 발 앞서 "여기 사과가 있네. 진짜 맛있겠다. 우와"라고 말하며 아이의 관심을 가로채는 행위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책을 읽어줄 때 학생-교사의 관계와 비슷했다면 이제는 책 읽는 아이-도우미의 관계에 가깝달까. 과거에 부모가 주도하고 아이가 수동적으로 듣는 입장이었다면, 이제는 아이가 리드하고 부모는 아이의 관심이나 생각에 호응하고 확장해주는 역할로 변했다. 그동안 우리 집의 책 읽어주는 시간이 부모→아이의 일방통행이었다면 이제는 쌍방통행이다. 말과 감정, 생각이 오가는 가운데 사랑도 쌍방으로 여물고 있으리라 믿는다.


  요즘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것은 책 읽을 장소를 정하는 일이다. 전에는 아이가 책을 들고 오면 그 자리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아이에게 어디서 읽고 싶은지 종종 물어본다. 아이는 침대, 소파, 여기 등 원하는 장소를 선택하고 우리는 거기서 책을 펼친다. 사소하지만 아이에게 결정권을 줌으로써 책 읽는 주체를 치켜세워주는 동시에 부모에게는 작은 덤도 따라온다. 아이가 순간 중요한 일인 양 눈알을 굴려가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는 게 몹시 귀엽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좀 더 재미있는 걸 해볼 생각이다. 동굴 이야기니까 우리 동굴처럼 이불 속에 들어가서 읽어볼까? 여기 커다란 나무가 나오니까 우리 커다란 나무 밑에 가서 읽어볼까? 이것은 부모의 귀찮음 극복이 선결 과제이겠지만 가끔이라도 시도해보려 한다. 그 첫걸음으로 방금 공룡 백과사전을 읽어달라며 들고 온 소소에게 공룡책이니까 공룡 모양 방석에 앉아서 읽는 건 어떠냐 물었다. 소소가 좋다며 쪼르르 달려가 자리를 잡고 앉아 눈을 반짝이며 나를 쳐다봤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그만 사랑에 빠져버렸다. 책 읽어주는 게 이렇게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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