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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니 Dec 30. 2021

그날의 나에게 위로를 보낸다

도서관에서 책을 숨기다 (소소 35개월, 43개월)


  소소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준 뒤 곧장 집 근처 도서관으로 향했다. 전부터 점찍어놓은 오은영의 「화해」, 이시형, 박상미 공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제니스 캐플런의 「감사하면 달라지는 것들」을 빌리기 위해서다. 원했던 책들이 모두 제자리에 꽂혀있어서 기쁜 마음으로 집어 들고 무인 대출기를 향해 가고 있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소소의 어린이집 친구 엄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려 다가가려다 순간 멈칫했다. 재빨리 품에 안긴 책의 제목들을 훑어보았다. 하필 마음공부에 관한 책을 3권이나 들고 있는 게 마음에 걸렸다. 이로 인해 나의 정신적 취약함을 들키면 어떡하지. 쓸데없이 고민만 많은 한심쟁이로 비치면 어쩌지. 책 표지들이 눈에 안 보이게 팔로 잘 감싼 다음 그녀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누었다.


  집에 돌아온 뒤 도서관에서의 일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꼭 그렇게 책을 숨겨야 했을까? 그게 그렇게 창피한 일인가? 아니야. 분명 아니었다. 애쓰고 있잖아. 육아를 잘해보려 애쓰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 애쓰고, 감사하며 살기 위해 애쓰는 나야. 인문고전 읽으면 멋있는 사람이고 자기계발서 읽으면 진취적인 사람이고 심리서적 읽는 사람은 나약하다고 생각한 거니? 이런 편견쟁이! 스스로를 나무랐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이런 책을 읽고 있노라고 당당하게 펼쳐 보일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지자마자 편견쟁이를 외치던 내면의 목소리가 증발해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나의 수고와 노력을 부끄럽게 여기고 싶지도 않은데. 좋은 방법이 없을까? 머릿속으로 그 엄마와 마주치는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책을 숨기지 않는다. 대신 절박하고 우울한 표정 대신 우아하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인사한다. 이게 베스트다. 하지만 과연 실천할 수 있을까? 어떤 대답도 들려오지 않는다. 역시 안 되겠다.


  왜 이렇게 자신감이 부족할까. 왜 당당하지 못해! 이 책이 내가 보는 책이다 왜 말을 못 해! 남의 눈치는 왜 그렇게 많이 살필까. 내 자존감은 언제쯤 올라올까. 얼마나 더 감사하고, 상담받고, 수련해야 되는 걸까. 그게 되긴 할까. 나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을 낑낑대고 나서야 마음의 출렁거림이 멈췄다. 흙탕물처럼 어지럽게 뒤엉켜있던 감정들이 가라앉고 나니 차분히 마음을 다독일 수 있었다.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노력이라도 노력은 훌륭한 거야. 앞으로도 어쩔 수 없이 책은 숨기더라도 책을 읽으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노력만은 자랑스럽게 여기기로 마음먹었다.



  8개월이 지난 오늘 다시 물었다. 만약 지금 다시 그때와 똑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이런 책들을 읽는다고 남에게 오픈할 수 있을까? 1초의 고민도 없이 답은 YES다. 오은영 박사의 책은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는 책이고, 삶의 의미를 성찰하는 것도, 감사하는 것도 다 유익한 일 아닌가. 이 책들을 한꺼번에 읽는다고 해서 조금도 정신세계가 이상하게 보이진 않는다.


  아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따져볼 것도 없다. 다 괜찮은 책이 아니라면 또 어떤가. 무엇을 선택하든 내가 당당하면 그만일 테다. 내 선택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가 아닌 이상 그에 대한 판단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십년  어학연수 때 같은 반이었던 중국인 여학생이 6월에 밍크코트와 시베리아 스타일 털모자 차림으로 수업에 왔는데 눈길이 한 번 갔을 뿐 나를 포함한 누구도 수군거리 덥지 않냐고 묻지 않았다.   


  아니다. 어쩌면 애시당초 이 모든 과정이 불필요했을 지도 모른다. 남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니깐! 알면서도 자꾸 깜빡하는 인생의 진리가 뒤늦게 떠올라 나를 나무란다. 애초에 그 엄마 내가 무슨 책을 골랐는지 관심조차 없었을 지도.


  지금은 이렇게 별 것 아니게 느껴지는 일인데 그때는 그토록 겁을 먹었구나. 내가 나를 부족하다, 한심하다 여기고 있으니 남들도 당연히 그러하리라 생각했을 테지. 잘못을 저지른 양 책을 감추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마치 우산 없이 비를 맞고 있는 사람 같다. 그 비에 이름이 있다면 외로움과 가여움일 것이다. 그날의 나에게 위로를 보낸다. 고생 많았어. 이제 우산을 씌워줄게.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받아들이기로 한 지 1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여전히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는 자신을 발견한다. 나의 많은 부분이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때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다행히 나는 변화의 여정 위에 서 있다. 느리지만 분명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 책을 숨겼던 지난봄엔 앞으로도 책 제목은 절대 오픈하지 못할 거라 믿었는데 해가 채 바뀌기도 전에 할 수 있다고 생각이 바뀌지 않았나. 나는 거북이다. 달팽이다.


  '세상에서 가장 야한 101가지 이야기' 제목이 이쯤 되면 좀 가릴 만하지 않을까? 흠. 자존감이 엄청 높은 사람은 그마저도 당당하게 내보일 지도 모른다. 왜요? 그냥 제 취향인데요? 라며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상대에게 네가 더 이상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 물론 현재의 나에게는 요원한 일이다. 하지만 인생에 '절대'란 없으니 조금씩 단단해지다 보면 언젠가 그런 상쾌한 순간이 올 지도.

왜요? 제 취향인데요?

  

  상상만 해도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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