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고민만 쌓여가는 일상
평소 자주 사용할 일 없던 '베풀다'는 단어가 요즘 들어 자주 내 머리에 나타난다.
최근 겪은 교통사고와 회사의 근무지 변경 등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연이어 내 삶을 방문하다 보니 정말 생각이 많아졌다. 하지만 이 대부분의 생각은 부정적인 가정과 결합하여 커지고, 그럴 때마다 자라난 생각을 짙은 한숨과 함께 끊어주는 일을 연일 반복하게 되었다. 다소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반복되는 생각 끊기 과정에서 '혹시 신이 지금 내가 잘 못살고 있다고 계시를 주는 건가?'라는 의문까지 들었다.
그래서(?) 신점을 보러 갔다.
사실, 3년 전 다른 곳에서 점을 본 적이 있었다. 처음 방문하는 것이니만큼 설렘과 기대가 컸는데, 소문으로만 듣던 '네 어깨 위에 고양이가 하나 있어'와 같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지금 할머니가 다녀가셨어'처럼 소환 기술을 겸비한 이른바 매지션과 대화하며 유사한 체험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자수성가 할꺼다.', '결혼은 늦게하는게 좋다.'와 같은 사주풀이 해석 결과에 큰 서운함을 느꼈다.
그리하여 이번엔 별다른 기대 없이 그저 최근의 상황들과 그로 인하여 신의 존재와 시련으로 이어지는 생각들이 정말 관계가 있는지 정도를 확인하고 싶었다.
생각보다 너무나 젊었던 무속인님의 외모, 연월일시를 묻지 않고 존댓말로 쏟아내는 상담 내용, 용하게 짚어내는 과거사와 입 밖에 내지 않고 머릿속에 맴돌던 내 생각들까지 읽어내는 시간이 너무나 재미있고 신기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불안한 마음을 위로받고 나왔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내가 뭘 베풀고 살았나?', '계속 베풀라는데 뭘 어떻게 베풀어야 하나?'와 같은 질문들과 함께 온전히 사라지지 못한 부정적 사고들로 회사에 무작정 휴가를 신청하고 그저 휴식만을 목적으로 아무 계획 없이 제주도행 비행기표를 샀다. 마침 '나 퇴사한다 ㅅㄱ'라며 쿨하게 자랑하던 친구에게 '난 내일 제주도 감.ㅋ'으로 멋지게 응수하였으나, "같이 ㄱㄱ"라는 카운터를 끝으로 생각지도 못한 동료까지 얻게 되었다.
길게 내린 내 머리를 보고 웹툰 "독고"의 주인공 머리 같다며 시원한 비웃음으로 반가움을 표하던 우리는 제주에 도착해 바다와 회와 소주가 함께 모였을 때, 비로소 반년 가까이 못 본 공백의 시간을 브리핑하며 퇴사하게 된 이유, 향후 계획과 같은 거창한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새로운 업계에서 일해보기 위해 퇴사를 결심하고 시험을 준비하려 한다고 했다. 나의 제주도 여행 소식에 2년 전 함께 중국 여행 후 시험에 합격했던 일이 떠올라 무작정 같이 제주도에 오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나 또한 일련의 근황들을 털어놓으며, 간단히 최근 점집에서 들었던 내용과 함께 '베푸는 삶'에 대해 물었다.
툭 던진 친구의 말이 제주에서 돌아온 지금까지도 유독 무겁게 마음에 남는다.
잘 살고 싶으면, 그냥 잘 살면 되는 거였다.
그저 나는 위로가 필요해서 신점과 제주도를 다녀왔구나.
십년지기 내 친구보다, 처음 보는 무속인님보다 나 자신을 믿지 못함에 부정적 생각만 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