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말씀드립니다만, 전 방황했습니다

평범함이라는 최대 약점을 나만의 가치로

by 주박이
미리 말씀드립니다만, 전 방황했습니다


10대 때는 내내 방황했던 거 같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알 수도 알려주는 이도 없었다. 공부는 왜 해야 할까? 귀는 왜 뚫으면 안 되며, 교복은 왜 입어야 하고, 두발의 자유는 왜 없는 건지, 내 인생의 10대는 왜 안 되는 게 많은 건지 매사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중 꿈이 확실해서 열정을 불태우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난 그 부류와는 달랐다. 썩 공부를 잘하지도 그렇다고 잘 놀지도 못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니 문과인지 이과인지 고르라고 하더라. 인생의 고비가 왔다. 잘하는 과목은 결정하기 힘들게 ‘영어’랑 ‘수학’이었다. 꿈도 없는데 문, 이과를 어떻게 고르라는 건지 막막했다.


“수학을 좋아하면 이과를 가고 국어랑 영어를 잘한다! 그러면 문과를 가.”


선생님은 하필 그렇게 말했다. 두 과목을 다 좋아했던 난 선택할 수 없었다. 결국,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이과를 선택했다. 광합성의 과정을 3단계로 나눌 때까지는 괜찮았다. 이과는 이보다 더 깊게, 식물이 광합성을 하는 대단하고 섬세하며 어마어마한 과정을 배운다. 미적분을 지나 벡터를 배우게 될 때 이 길은 내 길이 아님을 정확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당시 이과생 중 유일하게 교차지원으로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한다.

눈 깜짝할 새에 20대가 되었다. 이제 자유인가? 처음에는 마냥 좋았다. 구속되어 있던 억압이 터지며 못 했던 것을 하기 시작했다. 금발 머리로 염색도 하고, 열망했던 하이힐을 신었다. 술도 원 없이 마시며 어른 흉내를 냈다. 웃긴 건 수동적으로 살아오던 인생에 선택권이 많아지니 패닉이 찾아왔다. 완급 조절이 되지 않았다.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달리고 또 달렸다.

당시에 학교 선배가 이런 말을 했었다.


“인생 어차피 한 번인데 대학 생활을 추억도 남기면서 잘하는 법 알려 줄까? 쉽지 않긴 해. 학사 경고, CC, 장학금 세 개를 달성하기만 하면 어딜 가서 대학 생활은 알차게 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지. 대신 꼭 장학금을 타야 해.”


나는 결국 학사 경고 2번의 영광과 함께 졸업한다.

본격적인 취업 시즌이 될 때 내 성적은 2.91이었다. 부모님이 졸업을 원하셔서 졸업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 이놈의 학점이 내 발목을 꽉 잡을지는 예상치 못했다.


그래서 내 이름은 160만 원입니다.


학교에서 주선하는 취업 연계 프로그램이 있어서 신청했다. 동그란 안 경을 낀 아저씨가 성적과 이력서를 살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영어영문학과에 2.91…. 어디 들어가기 힘들겠는데. 잘하는 거 있어요?” “셰익스피어요. A+ 받은 과목인데 인물 분석할 때 너무 행복했어요. 전공과목 중에 유일하게 너무 재미있더라니까요!”


“에이, 그런 거 말고 영어를 잘한다든지 뭐 자격증이 있다든지… 토익 점수나… 아무것도 없네. 본인은 160만원 받는 곳 들어가면 될 거 같은데? 마침 우리 회사 사원 자리가 비었는데 들어오지?”


존댓말과 반말을 섞으며 나에게 취업컨설팅 회사의 사원을 제안했다. 그는 안경을 올렸다 내리며 내 눈을 쳐다봤다. 차라리 월급을 말하지 않고 제안했으면 나았을까. 순간 불쾌했다. 어쩌면 그 순간 주제 파악을 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 와중에도 “생각해볼게요.”라고 말했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뛰쳐나왔다.


회사에 입사했을 당시에 비정규직이었다. 우연히 구직 사이트를 뒤져 보다 ‘영어 사용’이라는 말만 듣고 경력이라도 쌓아보자는 생각에 지원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 정신없던 3대 3 압박 면접이 지나갔다. 1분 동안 영어 자기소개와 일본어 자기소개를 했다.

담배를 피우는지, 술은 잘 마시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집에 돈이 많은지, 농구를 하는지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영업직이기 때문에 물어보는 것인가. 자괴감과 허탈함만 들었다. 추석 전날 합격 발표가 났다. 분명히 불합격이라 확신했는데 합격이었다. 일할 수 있고 밥벌이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온 친인척이 모인 곳에서 자랑까지 했다.


며칠 뒤 인사 담당자가 연락이 왔는데 계획 중이던 사업이 갑자기 취소돼서 사람을 쓸 수가 없다고 하더라. 진짜 기가 막혔다. 아무리 비정규직을 뽑는 자리라도 너무 억울했다. 면접을 보러 간 내 시간, 정신적 스트레스와 설렘이 와르르 무너졌다. ‘사람 가지고 장난치는 건가.’ 열이 받아서 무슨 회사가 그러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랬더니 다른 분야지만 영어를 쓰는 일이 있으니 일할 생각이 있냐는 제안이 왔다. 당연히 알았다고 했다.


그렇게 계속 일하다 보니 정규직으로 전환이 되었다. 그리고 난 어른이라 강요받는 30대가 되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인지 끊임없이 묻고 물었다. 또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꿈이 무엇인지 정답을 찾기 위해 수없이 부딪혔다.



© billy_huy, 출처 Unsplash




나는 고기, 버섯, 치즈를 좋아해

영화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아내이며 기자인 마리아 슈라이버는 『삶은 항상 새로운 꿈을 꾸게 한다』라는 책을 쓰며 나와 같은 고민을 했다.

앵커이자 기자로 네 아이의 엄마이자 저술가였던 그녀는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된 남편 때문에 ‘주지사의 부인’이 된다. 그 결과 그녀가 가졌던 지위와 꿈은 사라지고 남편을 위한 삶을 살게 된다. 모든 게 완벽했던 그 녀 또한 ‘꿈’과 ‘현실’에 대한 괴리와 정체성의 위기를 느꼈다. 그리고 그녀 역시 계속해서 물었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알기 위해 끊임없이 나에 대해 ‘질문’을 하고 ‘실행’ 해야 했다. 마치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찾는 과정과 닮아 있다.


예전에는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또한, 새로운 음식을 시도하는 것에도 겁을 냈다. ‘고수잎’은 호불호가 강하게 갈린다. 크레파스 같은 맛에 특유의 향이 싫어 입에도 못 대던 고수잎도 몇 번의 도전을 통해 먼저 찾아 먹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처럼 새로운 시도는 몰랐던 내 입맛을 알게 해 주며 새로운 취향에 눈뜨게 한다.


진짜 좋아하는 음식을 찾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맛집을 검색해 보고 맛본다. 또는 우연히 지나가다 먹어본다. 정보가 쌓인다. ‘아! 나는 이런 음식을 좋아하는구나.’ 그렇게 쌓인 정보를 통해 명확하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의할 수 있게 된다.


계속해서 나에게 질문하고 고뇌하는 과정이 바로 출발점이다.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시행착오를 겪어도 좋으니 해볼 수 있는 것은 시도해보자. 가끔 실패하고 좌절할 때도 있지만 그렇게 몇 번의 도전으로 정보가 쌓이면 좋아하는 음식처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신 있게 정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치열하게 살고 있지만 어쩌면 사회에서 만들어놓은 기준에 맞춰 그냥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라는 물음을 기점으로 진짜 나를 찾는 여행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원하는 꿈과 미래가 남을 위해, 남에 의해, 남의 것으로 끝나더라도 괜찮다면 그냥 그렇게 살아라. 그러나 삶의 주도권을 본인이 잡고 지금과 다른 미래를 맞이하고 싶다면 계속 물어보길 바란다. 그 질문을 통해 절대적으로 원하는 자신과 만날 수 있다.




책 <남들과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에 실린 글입니다.


걱정은 흔들의자와 같다. 계속 움직이지만 아무데도 가지 않는다.
윌 로저스(영화배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