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는 꿈이 없는 게 정상이다

장래희망의 또 다른 이름

by 주박이

‘꿈’이라는 단어는 막연하다. 막연하므로 가장 불편하고 듣기 싫은 말 일지도 모른다. 거창하고 거대한 느낌이다. 특히 찬란하고 아름답게 생각하는 우리의 상상력이 독이 되어 꿈을 포기하게 만든다.


‘도대체 이놈의 꿈이 뭔데? 꿈을 이루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지?’


질문하는 것조차 부담스럽다. 막막한 두려움에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돈도 미래도 없다고 느껴지는 현실이 지독할 것이다. 암울하게 하루를 낭비하는 느낌에 고통스러울 것이다. 치열하게 고뇌해도 맘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이 괴롭고 힘겨울 때도 있을 것이다. 누구도 답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고독하고 아플 것이다. 하지만 20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으로 당당하게 말해주고 싶다.


‘몰라도 괜찮아. 모를 수 있어. 정답을 진작 알 수 있었다면 청춘이 아닌 거지. 그러니 몰라도 괜찮아.’


꿈이 없어도 괜찮다. ‘꿈’이라는 단어에 집착하지 않기를 바란다. 20대, 없어도 괜찮다. 그리고 몰라도 된다. 만약 알더라도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하지 않았는가? 그 꿈은 계속해서 변화할 것이고 이룬다 하여도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너무 막연하므로 두려운 꿈을 단순히 직업, 지위, 돈으로 바꿔보길 바란다.

20대, 꿈이 없어도 괜찮은 나이이기에 불안해하지 않길 바란다.


초등학교 땐 부모님이 꿈을 정해주셨다. 그 꿈의 이름은 ‘선생님’이었다. 내가 처음 느꼈던 꿈의 느낌은 사회적 지위였다. 무언가가 되어야 하는구나.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게 꿈이구나. 말 잘 듣는 장녀였던 난 선생님이 되면 행복할 거라는 말만 듣고 간단하게 꿈을 결정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속에선 아니라는 외침이 들렸다.


10대가 되었을 때 친구들과 선생님, 지인들은 수도 없이 이런 질문을 했다. “너는 꿈이 뭐니?” 만약 꿈이 사회적 위치라면 나는 반드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했다. 단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선생님’은 아니었다. 남들이 신나게 꿈이 무엇인지 설명할 때 반대로 이런 질문과 싸웠다.


‘난 왜 꿈이 없을까? 내 꿈은 도대체 뭘까? 난 왜 남들처럼 꿈이 어떤 거라고 말할 수 없는 걸까? 난 도대체 어떤 것을 하고 살아야 행복할까?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일까?’


부모님과도 항상 싸웠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과 부모님의 방향이 달랐다. 나는 항상 부모님이 나를 잘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부모님은 자기 배 속에서 나온 자식이기에 다 안다고 했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이건 확실히 알았다.


‘아니! 나는 내가 잘 알아. 나에 대한 수많은 질문과 고뇌의 정답은 나만 풀 수 있어!’


불효녀는 아니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꿈을 이뤄 주기 위해 내 꿈을 맘대로 선택하고 싶진 않았다. 당시에 우리 집은 매일 언성과 불만의 불협화음이 이어졌고 항상 눈물바다였다. 20대가 된 후 나에 대한 생각이 더 구체적으로 잡혔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적어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즐거워하는지 알 수는 있었다. 신기하게 주위에서 하는 질문도 구체적으로 변했다. 꿈에서 단어만 변하는 이 경험에서 내 자존감은 안드로메다로 사라지고 있었다.


“어디에 취직하고 싶니?”, “어떤 과목을 배우고 싶니?”, “얼마나 벌고 싶니?”


30대가 되면 질문이 다시 한번 진화한다.


“어떤 사람과 결혼하고 싶니?”, “요즘 취미는 뭐니?”, “연봉이 얼마니?”, “몸매 관리는 어떻게 하니?”, “결혼은 할 거지?”까지.


누구도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 꿈이 뭔지 물어보지 않는다. 어느 순간 우리는 꿈이라는 막연함을 거부하고 타협 하며 현실의 최대치를 이루기 위해 안주한다. 다시는 꿈을 묻지 않는다. 사회는 꿈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 막연한 희망으로 취업을 부추기고 부, 명예, 명문대, 전문직처럼 사회적 지위를 갖춘 사람만 꿈을 이룬 것이라고 보도한다. 우리는 그렇게 진정한 나 자신을 잃어버린다.


질풍노도 오락가락, ‘오춘기’입니다


나는 방황하는 어른이다. 애매하고 평범하며 어디서 봤을 것 같은 보통 사람이기 때문에 고뇌한다. 진짜 나를 찾는 성인의 사춘기를 겪고 있으며 날마다 치열하게 버티며 자기 계발을 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살아야 만 살 수 있는지에 대한 가짜 명분을 만들며 살고 있다. 나는 그놈의 의문과 의심, 궁금하면 해야 하는 호기심 때문에 현실과 이상을 넘나들며 약 20년 동안 끊임없이 질문하는 제2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냈다.

친구들도 덩달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개미지옥 같은 초능력도 있었다. 틈만 나면 왜 나는 꿈이 없는지, 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 건지 물었다. 누구는 배부른 소리라고 했고, 누구는 현실이 시궁창이라서 그런 거라고 했으며 또 다른 이는 그냥 다들 그렇게 사니까 그냥 산다고 했다.


꿈이 뭐가 중요하냐며 그냥 현실에 안주하라고 추천했다. 나에게 명쾌한 대답을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직 나 자신이 알 수 있을 터였다. 나는 불안했다. 나의 ‘오춘기’를 단순히 가볍게 넘기면 언젠가 또다시 중년과 말 년에 십 춘기, 백춘기로 다가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꿈을 찾아 떠나는 돈키호테는 사실 시골에서 사는 50대 평범한 귀족이었다. 귀족이었던 그는 한량처럼 그저 그런 하루를 살다가 언제부터인가 기사소설을 탐닉하고 기사가 되는 꿈을 꾸고 실행한다. 자신을 스스로 당당한 기사라는 의미의 ‘돈키호테 대 라만차(라 만 차의 돈키호테)’라 부르며 험난한 모험의 길을 떠난다. 광기 있고 기이한 모험을 본 세상 사람들은 조롱을 보내기도 하고 인정하기도 했다. 먼 여행을 떠나고 돌아온 그는 현실로 돌아온다. 다시는 꿈꾸지 않는 그는 그렇게 늙은 영감으로 숨을 거둔다. 돈키호테는 이상 주의자이며 방랑자였지만 꿈을 꾸는 순간 실행했다. 기사로 살았던 그는 도전하고 탐험하며 실행하고 나아간 진정한 영웅이었다


엄마는 내 눈에 원더우먼이었다


나는 엄마의 실행력을 닮았다. 그녀는 전형적인 가정주부였지만 강한 여자였다. 항상 무언가를 도전하고 현재도 무언가를 하신다. 어린 시절에는 학습지 선생님을 하셨는데 덕분에 나는 빨간 펜으로 학생들 채점을 도와줬었다. 동그라미를 치는 엄마는 나에게 선생님이자 멋진 가정주부였다.

가끔은 와이셔츠 실밥을 제거하는 아르바이트도 하셨다. 동생과 나에게 한 뭉텅이를 줄 때 족집게를 사용하게 해 줬는데 섬세한 도구를 쓴다는 생각에 동생과 상황극을 하며 실밥을 찾곤 했다. 작은 실밥을 찾아 제거하면서 나의 엄마가 디자이너이자 선생님이고 여러 가지 일을 하는 프로 주부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은 아버지와 운전에 관해 이야기하시다가 운전면허증도 없는 데 어떻게 아느냐는 말에 발끈하셨다. 그러더니 48세에 갑자기 운전면허증을 따셨다. 그녀가 50대일 때 고3인 나와 함께 수험생 생활을 자처하며 공부하시더니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하고 부동산을 차리시며 가정 주부에서 전문직 여성으로 변화하셨다.


나에게 엄마는 언제나 도전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엄마는 선생님이자 프로 가정주부이며 전문직 여성이자 본인이 하고 싶은 걸 다 하는 멋진 여성이었다. 또한, 도전하면 쟁취하는 여자였다.

엄마를 보면서 느꼈다. 나도 엄마처럼 살자. 10대를 처절하게 보낸 딸과 엄마는 피 터지는 싸움으로 끈끈한 정이 들었다. 그 과정에서 본인을 내려놓고 자식과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나아가 사춘기 자녀를 둔 후배들의 멘토이다. 올해 회갑인 그녀는 tvN에 영감을 받아 요리학원에 다닌다. 60대인 그녀도 또 다른 꿈을 찾고 실행하며 실천한다. 실패할 때도 있지만 또다시 시작한다. 나이와 상관없이 꿈은 생겨난다. 원하면 찾게 되며 도전하면 이루어진다.


우리는 모두 파라다이스를 찾을 수 있다


인생이라는 사막에서 목이 마르는지도 모른 채 계속 걷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답답함을 느낀다. 목이 말라 오아시스를 찾고 싶지만, 누구도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뜨거운 태양과 타는 듯한 목마름에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지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맞는 길을 가고 있는지 고민하고 의심할 것이다.


넘어지더라도 끊임없이 도전하고 행동하며 답을 찾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제 목마름이 어떤 건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꿈이 없음을 인정하자.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계속 묻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이며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점점 명확해질 것이다. 또한, 자연스럽게 원하는 길을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자.


꿈이 없어도 괜찮다. 삶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지름길은 없기에 매사 고민하자. 물음 없이 쉽게 얻을 수 있는 건 없다는 걸 인정하자. 목마름을 깨닫는 순간 물이 필요할 것이다. 물을 찾기 위해 노력하면 언젠가 오아시스를 발견할 수 있다. 꿈이 없음을 인정하고 꿈을 찾기 위해 도전하면 우리는 반드시 인생의 진정한 오아시스, 즉 나만의 파라다이스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책 <남들과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에 쓰인 글입니다.

최악의 외로움은 자기 자신을 불편하게 느끼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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