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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영 Oct 17. 2020

놀이기구가 된 비행기

목적지 없는 비행 상품

포털사이트에 비행이란 두 글자를 검색해본다. 마우스 스크롤을 천천히 내리다 보 목적지 없는 비행 상품에 관련된 기사가 수두룩하다. 상품을 내놓은 항공사가 세 곳이나 된다. 항공사에서 적극적으로 언론사에 홍보자료를 돌린 모양이다.


목적지 없는 비행이란 이륙해서 상공을 날다 비행기를 탄 공항으로 돌아오는 비행이다. 아시아나항공이 국내 상공을 약 2시간씩 비행하는 'A380 관광 비행' 상품이 출시 20분 만에 비즈니스 스위트와 비즈니스석 모두 완판 됐다고 한다. 판매 가격은 비즈니스 스위트석 30만 5천 원, 비즈니스석 25만 5천 원, 이코노미석 20만 5천 원으로 저렴하진 않다.


에어부산도 저비용 항공사 가운데 최초로 일반인 대상 목적지 없는 비행 상품을 출시했다. 부산을 출발해 강원도를 거쳐 서울과 제주 상공을 비행하고 부산으로 도착하는 2시간 코스로 운영한다. 운항 승무원과 객실 승무원, 정비사 등 항공 전문가들이 기내에 동승해 항공 전반에 대한 소개와 질의응답 시간이 진행된다. 탑승객에게는 운항승무원이 항공일지를 작성할 때 사용하는 파일럿 로그 북(log book) 등 기념품을 제공한다. 운항 항공기는 에어버스의 최신 항공기인 A321LR 항공기로 운항하며, 실제 좌석 수보다 100석 축소된 120석만 ㅅ승객을 채운다. 항공권 운임은 공항 사용료 등을 포함한 총액 15만 4천 원이다.


여기에 국내 제1의 LCC 제주항공까지 가세했다. 인천공항을 출발해 약 1시간 30분 동안 광주여수, 부산, 포항, 대구 상공을 선회 한 뒤 다시 인천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뉴클래스는 12만 9원, 일반석 9만 9원이다. 인천관광공사에서 운영하는 호텔 1박(스탠다드룸 2인 1실)과 일반석 항공운임이 포함된 패키지는 15만 9원이다. 탑승객 전원에게는 식음료 패키지(감귤주스 및 스낵), 메디컬 키트(손소독제와 마스크) 등이 포함된 트래블백이 제공된다. 또 비행 시엔 승무원들이 탑승, 이벤트를 통해 국내선 무료 왕복항공권, 호텔 무료숙박권 등 경품을 제공한다.


항공사들이 너도 나도 나서 관광 비행 상품을 내놓는 속내는 따로 있다. 코로나 19 속 유급휴직에 들어간 조종사들의 비행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조종사는 해당 기종에 대해 90일 이내 3회의 이착륙을 해야 비행을 계속할 수 있다. 글로벌 여객 노선이 죄다 막히면서 특정 기종의 조종사들이 자격을 모두 잃게 됐다. 울며 겨자 먹기로 비행기를 띄어야 하는데 이왕이면 승객들을 태워 유류비 등 운영비를 조금이나마 벌어보자는 셈법이다. 아시아나와 에어부산 소속 조종사들은 경제적으로 그다지 회사에 큰 도움은 안된다고 입을 모았다.


공항 가는 길은 늘 설레었다. 8살 때 처음 비행기를 탔을 때 육중한 기계가 굉음을 내며 활주로를 달리다 천천히 하늘로 솟아오를 때 아랫배가 출렁거리는 그 짜릿한 순간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스릴 있고 재밌었다. 그런 점에서 어린 내게 비행기를 타는 것은 교통수단이기 이전에 일종의 놀이기구나 다름없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항공사가 내놓은 이 비행 상품은 그야말로 목적지 없이 어른들을 위한 단순한 놀이 비행이다. 갈 곳 없는 항공사의 현 사정이 안타깝기만 하다. 항로를 되기까지 최대한 버티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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