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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영 Jan 12. 2022

화려한 초능력 대신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히어로

디즈니플러스 호크아이

크리스마스를 앞둔 뉴욕 브로드웨이 한 중년의 남자가 아이 셋과 함께 뮤지컬 로저스를 관람하고 있다.   


"난 하루 종일 싸울 수 있어.(I can do this all day.)"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가 버릇처럼 내뱉던 말을 가사화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발랄하고 경쾌한 음악 속에 어색하기 그지없는 코스튬을 한 어벤저스 배우들이 노래하고 춤 추는 공연을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한 남자. 붉은 색 머리에 검은색 수트의 블랙위도우 역할을 맡은 여배우에 그의 시선이 멈추면서 귓가는 고요해진다. 옆자리에 앉은 딸이 몇차례 불러도 그는 혼자만의 깊은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보다못한 딸 라일라가 손으로 눈을 가리자 그제서야 보청기를 만지작 거리며 고개를 돌리는 남자. 제법 붙은 얼굴의 나잇살과 깊게 패인 이마 주름. 아내와 세 아이의 가족의 가장인 그는 어벤저스 뮤지컬을 느긋하게 관람하는 중년의 클린트 바튼 호크아이다. 


2019년 출시된 이후 만돌로리안, 완다비전, 팔콘 앤 윈터 솔져, 로키와 같은 히트 콘텐츠를 선보이며 꾸준히 최고의 스트리밍 플랫폼 중 하나로 자리매김해 온 디즈니 플러스가 어벤저스 가운데 가장 저평가된 호크아이시리즈를 선보였다. 블랙위도우와 함께 호크아이는 어벤져스 캐릭터에서 초능력이나 파워풀한 기술을 갖추지 못한 히어로였다. 최첨단 슈트로 무장한 아이언맨, 슈퍼솔저 혈청을 통해 완벽한 신체를 얻은 캡틴 아메리카, 방사선에 노출된 괴물 헐크, 신 그 자체인 토르와는 달리 어릴 적부터 서커스단에서 훈련받은 클리트 바튼은 활과 화살만으로 단련된 맨몸의 히어로다. 


케이트 비숍(헤일리 스타인펠드)과 클린트 바튼(제레미 레너) / 출처: 마블


이 시리즈는 클린트 바튼이 나머지 어벤져스와 함께 타노스의 공격으로부터 전 인류를 구한지 2년이 지난 뒤를 배경으로 한다. 범죄 조직과 싸웠던 로닌으로서의 과거 모습과 절친이었던 나타샤 로마노프를 보르미르에서 잃고 홀로 생존한 죄책감 때문에서인지 사람들의 칭찬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클린트 바튼. 그는 자식들에게 최고의 아빠로서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헌신하지만 늘 그렇듯 상황이 그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22살의 궁수이자 열렬한 호크아이의 팬인 케이트 비숍은 우연히 불법 경매장에서 발견한 로닌 수트를 입고 갱단과 범죄자들로부터 원치 않는 관심을 받게된다. 클린트는 어린 자신의 팬을 돕고 아이들과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혼란을 해결해 나간다. 


호크아이 시리즈는 클린트 바튼 뿐만 아니라 새 캐릭터인 케이트 비숍(헤일리 스타인펠드)에게도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질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케이트 비숍은 다음 호크아이로 낙점됐고 제작자들은 시리즈 안에서 이를 숨기려 하지 않았다. 


케이트 비숍(헤일리 스타인펠드) / 출처: 마블


호크아이의 강점은 MCU의 이전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보다 납득할만하고 더 현실적인 접근을 하고 있는데 먼저 어벤져스와는 다른 관점에서 치타우리 족의 침략을 바라본다. 에피소드 1편은 뉴욕 도심 한복판에서 폭발로 인해 무너지는 건물과 생명을 위협하는 외계 생명체의 공격 속에 두려움에 가득찬 어린 케이트 비숍(클라라 스택)과 그녀의 어머니 엘리노어(베라 파미가)의 눈으로 시작한다. 어벤져스 영화에 나오는 모든 싸움의 공포와 절망감이 훨씬 더 극심하게 느껴진다. 케이트가 건물 꼭대기에서 활을 쏘며 도시를 구하는 호크아이를 본 것도 이 순간이다. 히어로들이 괴력으로 외계인들과 싸우고 있는 가운데, 여전히 활과 화살만으로 버티는 호크아이는 케이트의 우상이 되고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어머니에게 활과 화살을 구할 수 있냐고 묻는다. 


호크아이는 보미르에서 가장 친한 친구인 나타샤를 잃은 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고군분투한다. 남자는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다치고 상처받았다. 시리즈 내내 제레미 레너의 고독한 모습은 그가 마블 히어로를 맡기 잔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의 윌리엄 브랜트를 연상시킨다. 임무 수행중 이단 헌트의 아내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의 모습과 상당히 닮아있었다. 제레미 레너를 눈여겨 본 건 어벤저스나 미션 임파서블이 아닌 <본 레거시>에서 였다. 맷 데이먼의 본 시리즈에 익숙해 있던 와중에 그를 대신하는 새로운 배우에 의심의시선으로 봤지만 그의 현란한 액션과 절제된 감정 연기에 반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봤다. 이후 마블에서 그를 처음 봤을 때 그의 액션 연기를 기대의 시선으로 마음껏 즐겼지만 다른 히어로들에 비해 비중이 낮은 역할과 이야기의 중심에서 벗어난 캐릭터여서 늘 아쉬웠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호크아이 시리즈가 더 반가운 이유다.


클린트 바튼(제레미 레너)과 나타샤 로마노프(스칼렛 요한슨) / 출처: 마블


젊고 자신감 넘치는 케이트 비숍과 나이들고 지친 호크아이는 상반된 인물이지만 그들의 역동성은 이야기를 더 흥미롭고 재미있게 만든다. 헤일리 스타인필드는 그녀의 캐릭터에 즐겁고 젊은 매력을 가져다주는 반면, 제레미 레너는 실제 50이라는 그의 나이가 말해주듯 도망치는 과거와 그를 따돌리는 현재 사이의 공허함에 갇힌 인물을 표현해내는데 탁월함을 발휘한다. 


에피소드를 거듭할수록 밝혀지는 각 캐릭터들의 비밀 역시 궁금증을 자극한다. <컨저링> 시리즈로 사랑 받은 베라 파미가는 그간 볼 수 없었던 색다른 모습으로 시청자들과 만나 특별함을 더했다. <베터 콜 사울>에서 랄로 역으로 인상 깊은 악역 연기를 펼친 토니 달튼이 엘리너의 약혼자로서 온화한 미소 속에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영화 <블랙 위도우>에서 나타샤의 동생이었던 옐레나 벨로바 역시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코로나 19로 요즘같이 여행이 쉽지 않은 시기에 크리스마스 트리 컬러 장식을 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록펠러 센터의 아이스링크장 등 뉴욕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건 덤이다. 나홀로 집에, 러브 액츄얼리, 로맨틱 홀리데이 말고도 궁술로 가득 찬 색다른 크리스마스 콘텐츠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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