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종편으로 이직하자마자 나는 신문과 방송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이 반반씩 섞인 인사검증팀에 배속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을 두 달여 앞두고 인수위원회에서 내각을 꾸려나가던 시기였다. 박 전 대통령은 김용준 인수위원장을 정부 첫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 채널A를 포함한 모든 언론사 기자들이 김 후보자에 대한 도덕성과 자질에 대해 검증했고 취재 경쟁은 치열했다. 채널A와 동아일보는 김용준 후보의 땅 투기 의혹과 장남 병역 면제 의혹을 집중 보도했다. 결국 김 후보자는 총리 지명 닷새 만에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채널A는 다른 언론사들을 제치고 김용준 후보자 검증으로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종합편성 채널의 최초 수상이었다. 당시 MBC 출신의 이상호 기자 역시 고발뉴스 트위터를 통해 채널A의 수상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김용준 총리 후보자 사퇴 소식을 다룬 동아일보 보도
취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각 장관 후보자마다 서너 명의 기자들이 달라붙어 그들을 “뒷조사”했다. 나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서승환 국토부 장관, 김종훈 미래부 장관 후보자를 맡아 취재했다. 윤병세 당시 장관 후보자를 취재하면서 딸의 이름 석 자만을 갖고 그녀가 한 국내 언론사에 근무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회사에 찾아가 그녀를 직접 만났고 이후 그녀가 대학 재학 중 가계곤란 장학금을 받은 것에 대한 기사를 써서 보도했다. 서승환 국토부 장관의 경우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서종철 전 국방부 장관의 아들이란 사실을 알고 부녀(父女) 정권의 부자(父子) 장관 임명이란 특이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시장주의 학자로 알려진 서 장관이 세종시 건설을 강하게 반대한 전력과 그의 부인이 강남 사교육 시장을 옹호하는 책의 글 일부를 쓴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단독 취재해 보도했다.(관련기사)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토 균형발전 및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교육 정책기조에 반하는 행적들이었다. 끝으로 김종훈 미래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 해외에서 주로 생활한 탓에 정보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정 킴’ 이란 그의 미국 이름을 구글에 검색하던 중 그가 CIA 자문위원 출신으로 미국 부시 정권의 안보 전략 정책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관련기사) 안타깝게 간발의 차이로 인터넷 언론에 단독 보도의 기회를 놓쳤었다. 게다가 그가 미국에서 문란한 밤문화생활을 보냈다는 교민의 증언까지 확보했고 채널A를 포함한 다른 언론사들의 보도가 이어지면서 결국 그는 장관 후보직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인사검증팀장이자 사건팀 캡으로부터 국정원 직원들이 우리 팀원들을 예의 주시한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사실인지 거짓인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런 얘기가 돌 정도로 박근혜 내각에 대한 당시 채널A의 보도는 날 끝이 제대로 서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시청자의 항의도 거셌다. 한창 장관 후보자에 대한 도덕성과 자질 의혹에 대한 검증 보도를 이어나갈 때였다. 사회부 사건팀 테이블에 앉아 열심히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데 사무실에 전화가 끊임없이 울렸다.
“저희가 다 취재하고 확인하고 보도했다니까요. 어떻게 마음대로 기사를 쓰겠어요?”
“네. 네. 고소하세요. 하시면 됩니다. 제 이름요? 채널A 사회부 000 기자입니다.”
민원 전화에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급기야 내 앞에 놓인 유선전화도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네. 사회부 사건팀 이준영입니다.”
“여보세요? 거기 채널A 맞죠?”
경북 사투리가 심하게 배어있는 60대 어르신의 목소리였다. (나는 부산 출신이라 경남과 경북 사투리의 차이를 정확히 알고 있다.)
“네. 그런데요.”
“어이. 이 새끼야. 너희 뭔 생각으로 뉴스를 이따위로 만들어!”
“선생님. 진정하시고요.”
“뭐? 진정? 00 하고 자빠졌네. 너희가 언론사야? 박근혜 대통령님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그래? 자꾸 저런 엉터리 기사 내보낼 거야? 내가 너희들 가만 안 둬!”
더 이상 상식적인 대화가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수화기를 내려놓는 순간 같은 전화기에서 또다시 벨이 울렸다.
“사회부 사건팀 이준영입니다.”
“저 거기 채널A 사회부 맞죠?”
이번엔 30대로 추정되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앞서 통화한 어르신과 달리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 투였다.
“네. 맞습니다.”
이거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우리 박근혜 대통령님 왜 이렇게 괴롭혀요? 채널A, 동아일보 다 보수잖아요. 같은 보수끼리 왜 싸우는 거예요?
"네?"
"왜 이렇게 우리 박근혜 대통령님을 못살게 구는 거예요? 내가 일부러 채널A 챙겨보는데 이제 더 이상 못 보겠네요. 언론이 사실대로 보도해야지. 뉴스를 이렇게 왜곡해서 만들면 어떡해요?"
“어떤 기사를 보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지금 방송하는 내용들 전부 다요. 장관 후보자들 비리 이거 전부 말도 안 되는 얘기잖아요!”
“저희가 다 취재해서 사실관계 전부 확인하고 쓴 기사예요. 여기도 언론사인데 없는 얘기 지어내서 쓰지 않습니다.”
“그러면 지금 저 앵커가 하는 얘기는 뭐예요? 다 거짓말이잖아요!”
그녀는 점점 언성을 높여갔다.
“준영아. 거 웬만하면 알겠습니다 하고 그냥 전화 끊어.”
하루 종일 모니터를 보고 데스킹 하느라 빨갛게 눈이 충혈된 임모 차장 선배가 나를 가엾이 바라보며 말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건팀 선후배들이 모두 하나같이 수화기를 들고 진땀을 빼고 있었다.
“잘 알겠습니다.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둘러 통화를 마무리 짓고 전화를 끊었다. 저녁 뉴스에 나가야 할 기사를 완성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항의 전화는 하나같이 보수 성향의 시청자들로부터 걸려왔다. 애초에 진보 성향 시청자들은 보수 채널은 틀지도 않으니 우리가 어떤 보도를 하는지 전혀 몰랐고 아마도 관심조차 없었을 것이다. 내 주위 사람들에게 장관 후보자들의 비리 의혹에 대한 채널A 보도에 대해 말하면 진보와 보수 등 그들의 정치 성향에 관계없이 다들 의아한 표정으로 하나같이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채널A가 왜?
보수 성향의 사람들도 역시 마찬가지로 진보 언론을 보지 않을 게 뻔하다. 언론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된 계기였다. 박근혜 정부 내각 인사검증팀은 합숙하다시피 두 달을 회사에서 보냈다. 자정에 모여 회의하기도 하고 새벽 두 시에 퇴근해 여섯 시에 출근하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몸이 피곤하고 고된 기간이었지만 8년의 기자생활 중에 가장 보람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