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말부부였고 큰아이가 중학교, 둘째가 초등학교, 막내는 유치원에 다녔다.
세명의 아이의 육아를 혼자 감당하는 동안 몸이 힘든 것은 것은 참을 수 있는데 맘이 힘든 건 견디기 힘들었다. 중학교 2학년 큰 아이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 했었다. 사춘기를 벗어나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내게 살가워질 무렵 사춘기 바통은 둘째가 이어받았고 엄마를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지는 않았으나 "세상에나, 어째 이런 일이"라는 비명을 지르게 만들었었다. 이런저런 사고를 쳐서 학교에 불려 가기도 하고 이런저런 상을 타와서 학교에 떡을 해가기도 하는 한쪽발은 천당에 한쪽발은 지옥에 담그고 살아내던 밤에 혼자 눈물을 흘리며 '혼자서 너무 힘들어요. 남편이 집에 있어야 해요.'라고 기도 했었다.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둘째가 고 3 때, 이제 몇 달만 지나면 내 시간을 가져보겠구나 하는 기대가 생길 즈음 까맣게 잊고 있던 기도가 응답되었다.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집으로 들어온 것이다.
주말부부로 살던 사람들이 하루 24시간을 함께 산다는 것은 축복일까 불행일까?
여기서 잠시 딴소리를 하자면 난 사람들에게 동업은 하지 마시라고 말한다. 부부지간도 동업은 안된다고 말한다. 직원을 두면 일의 전달체계가 명확하지만 동업은 책임져야 할 일은 당신이 사장이라고 양보하면서 쓸데없는 일엔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기 때문에 다툼이 생긴다. 그러니 부부가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은 타인과 함께 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이다. (에고야, 이것은 딴소리가 아니라 우리 집 이야기다.)
24시간 붙어살았다. 같은 침대서 자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차를 타고 출근해서 같은 주방에서 일을 하는데 그 공간이 한평 남짓이었다. 의견이 충돌하면 싸우게 되고 감정이 충돌하면 심한 말이 오가다 숟가락통이 허공을 가로질러 바닥에 팽개쳐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아침에 각자 출근하고 각자 일을 하다가 저녁에 퇴근해서 만나는 삶을 살게 해 달라.'라고 기도했다. 응답을 기다리지 못하고 꾀를 낸 것이 일하는 동안은 어쩔 수 없이 같이 있어야 하지만 밤에 서로 생각할 시간을 가지고 화를 삭일 수 있도록 각자의 방을 갖기로 했다. 그렇게 몇 년 각방을 쓰다가 올 1월부터 한방에서 함께 지내고 있다.
그렇다. 이제 아침에 남편이 다른 곳으로 출근하고 저녁에 다시 만나는 삶을 살고 있다.
새로운 직장에 취업한 것은 아니다. 남편이 오랫동안 꿈꾸던 건축일을 배우고 또 하기도 한다. 그런데 만족이 없다. 원하던 한옥 일이 아니고 수입도 언제 발생할지 기약이 없다.
어쩠거나 내 꿈은 늘 이루어지기는 한다. 엉뚱한 시간에 응답되는 참으로 어이없는 상황이지만 원하던 바가 이루어진 것은 맞다.
2022년 5월 어느날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