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의 블루베리
새소리에 눈을 떴다. 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니 6시가 안 됐다.
부지런한 녀석들 덕에 나도 덩달아 부지런하다. 옥상에서 내 블루베리를 유유자적 먹어치우는 직박구리들이 신경 쓰여 잠시 망설임도 없이 이불을 걷어냈다.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블루베리 효소를 선물 받아 샐러드드레싱을 만들었는데 상큼한 그 맛이 일품이었다. 그리고 얼음을 넣어 음료를 만들어 마셔보니 시원하고 좋았다.
그래서 시작한 효소 담기는 은근 재미도 있고 하나씩 늘어가는 통을 바라보며, 이건 내년 우리 학생들 몫이고, 이건 우리 언니들 주고, 이건 경이네 주고, 또 이건 친구들과 조금씩 나누고......
이렇게 마음속으로 이름표를 붙이며 담그다 보니 블루베리가 계속 필요했다.
직박구리들도 그냥 먹고만 간다면 조금 봐줄 수 있겠는데 떼거지로 몰려와서는 가장 맛있는 것만 따 먹고 잘 익은 열매들을 바닥에 잔뜩 떨어트려 놓고 가버린다. 그리고는 응가까지 하고 사라져 그것들 뒷정리를 하느라 땀을 빼야 했다.
다른 해 같았으면 이미 새들 밥으로 넘겨주고 말았을 텐데 올해는 그렇게 블루베리 효소를 담느라 욕심을 내고 또 직박구리들에게 줘 버리기엔 녀석들 행동이 많이 얄밉기도 하여 플라스틱 바가지 하나 들고 하루나 이틀에 한번 옥상으로 올라갔었다.
사실 옥상에 올라가는 일은 아침뿐이 아니다. 어제 오후 휴식 시간에도 새소리 때문에 옥상으로 올라갔었다.
마침 친구에게 전화가 왔고 직박구리와 경쟁하며 블루베리를 수확하고 있다는 말을 전했더니 너무 낭만적이라고 새들이랑 나눠 먹으면 좋지 않겠느냐며 화창하게 웃었다. 친구의 그 화창한 웃음에 나도 덩달아 즐겁기는 했다.
눈으로 보기에는 아직 열매가 많이 남은 것 같아 바가지 들고 올라가지만 수확 양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보니 친구 말처럼 '새들과 정답게 나누고 낭만적인 삶을 사는' 척! 하며 적당한 때에 녀석들에게 넘겨주어야 할 듯하다.
이렇게 적은 양을 보면서도 내일이 포기되지 않는다. 내일 또 올라가 보고 오늘보다 더 적은 양을 수확하게 된다면 모래부터는 억지로라도 숲 속에서 새소리 들으며 아침을 맞는 시늉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