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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Jul 05. 2022

경아, 밥 먹자~

그냥 이모

이제 그만 두자! 

일은 지치고 

학생들에 대한 애정도 무뎌지고

음식을 만들며 맛있다고 즐거워했던 기억은 가물거리고

재미없다, 힘들다, 죽겠다는 구덩이 파고 들어갈듯한 말들을 쏟아냈었다. 

 

이 지경이 된 이유는 쉬지 못해서 그런 거고 코로나 시대라 더 그렇다고 변명했다. 

누구나가 이해할만한 변명도 찝찝한 기분을 걷어내지 못했다. 그 이유를 알면서 모르는 척하려니 점점 더 일이 싫어졌다. 


그렇다. 내 탓이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큰 실수가 있었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스스로에게 실망을 했다.

몇 명의 학생들이 다른 매식 집으로 떠나고 새로운 학생들을 맞이했으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일로 도망치고 싶었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 그냥 고객으로만 생각해. 네가 실수한 거는 잊어.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잘하고 싶단 생각도 다 병이야, 병, 고질병!'


여러 사람들의 충고가 귀에는 들리지만 마음까지 와닿지는 못했다.

남편은 부동산 중개소에 찾아가서 하숙집 건물을 매물로 내놓은 후 그동안 하고 싶었던 건축 관련 일을 시작했다. 


남편의 새로운 일은 돈이 들어가고 다시 나오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그 덕에 당장 일을 멈출 수 없어서 그냥저냥 일하다 새해가 되었고 새로운 학생들을 맞이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둘이 하던 일을 혼자 해야 되니 규모가 줄어 힘에 부치지 않고 학생들의 말소리가 들리고 표정이나 행동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잘하고 싶다는 고질병이 도진건 아니지만 학생들이 많이 이쁘다. 


 

밥시간 약간 전부터 아이들이 식당 안으로 들어온다. 거의 매일 조금 기다리라고 말한다. 나이가 한 살 더 먹고 손이 둔해졌는지 약속된 식사시간보다 2~3분 늦다. 예전엔 상상도 못 하던 일이지만 올해는 그냥 늦으면 늦는 대로 조금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실수하면 실수하는 대로 미안하다고 말한다. 


오늘도 기다리게 했다. 

경아, 밥 먹자~.

처음 들어온 학생의 이름을 부르며 식사 시작을 알린다.

난 이모니까 조카 이름을 부르는 게 맞다.

많은 생각이 필요치 않다. 올해도 그냥 하숙집 이모다. 


(두어달 전에 써 놓은 글입니다. 이번달 부터는 남편이 돕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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