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숙집 이모 Feb 11. 2023

 쌀 포대엔 합격소식을 담고

밥엔 이야기를 담다

점심시간. 전년도 매식생들이 찾아왔다.

하하하하!

두 손을 벌려 마중하면서  마음속으로는 '잘했다 잘했어.'를 반복하며 주방밖으로 뛰어나갔다. 이때쯤 연락을 하거나 찾아오는 이들은 100프로 합격소식을 전해준다.

전화벨이 울리며 발신자의 이름이 화면에 뜰 때,  카톡창과 문자에 발신자 이름이 뜰 때, 입에도 맘에도 찢어지게 웃음이 나오고 '잘했어 잘했어 이쁘고 고마워!'를  혼잣말로 중얼거리다 목소리로 전해 듣던지 글로 전달받는 합격소식에 온몸은 짜릿한 흥분으로 화답한다.

빈이가 마중한 손에 케이크를 건네며  '셋! 다' 합격했고 규는 30분 뒤에 달걀을 사 올 거라 말했다.

'셋 다!!' 짜릿한 행복이 전신으로 퍼졌다. 옆에서 20킬로 쌀포대를 꽃다발처럼 안고 서 있던 현이가 약속을 지켰다며 환하게 웃었다.

세상에나!  이 친구들 대단하다.


12월의 매식은 이전달과는 다르다.

1차 임용시험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밥을 함께 먹는 그룹들이 바뀐다. 이전엔 친구들과 그룹을 지었으나 이땐 같은 지역 지망생들이 스터디 그룹을 만들함께 밥 먹으러 오는 게 일반적이다. 빈이가 말한 '우리 셋'이 그런 그룹이었다.


합격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쌀포대와 달걀이 뭔 일인가 하면,

다부진 체격의 규는 2인분!

훤칠한 현이는 곱빼기!

눈에 총기가 꽉 찬 빈이는 보통!

세 사람의 상차림이다.  


몇 해 전 한 학생이 밥을 너무 많이 퍼 공기에서 흘러내리는데 그 위에 또 밥을 얹고 있었다. 탕그릇을 꺼내주고 이곳에 밥을 담아가라고 알려 주었고 1년 내내 그 학생 밥은 탕그릇에 담겼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졸업하고 임용되면 쌀을 사 오겠다고 넉살 좋은 인사를 했었다. 그래서 보통 2인분을 먹는 학생들에게 너도 쌀을 사 와야 할 사람이라고 선배 이야기를 하며 탕그릇을 꺼내주었다. 이 말인즉 오랜만에 만난 누군가에게 나중에 밥이나 같이 하자는, 다시 봐서 반가웠다는 정도! 그 넉살 좋은 선배가 쌀을 사 오지 않았기에 가볍게 할 수 있는 말이었던 것이다.


규와 현에게도 쌀 사 와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는데 자기들은 시험에 꼭 합격하고  본가가 당진인 현이가 지역 특산품인 해나루 쌀을 규는 달걀을 사 오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저녁, 예정된 메뉴는 비빔밥. 특별한 쌀로 지은 비벼버리면 그 맛을 모를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할까 잠깐 고민을 하다가 비빔밥이니까 당진해나루 쌀로 밥을 짓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나물과 규의 달걀로 꾸미를 만들고 현이의 쌀로 밥을 지어 올리면 좋은 기운의 저녁상차림이 될 것이다. 보통의 밥에 특별한 이야기가 담기면 요리가 되는 거다.

을 먹는 학생들에게 선배들이 사 온 쌀이랑 달걀로 준비된 이라고 자랑하느라 저녁 내내 입이 바빴다.

올해는 유난히 2인분이 많아 보여 걱정이 조금 되기도 하지만 내 가벼운 말에 약속을 지켜준 그들 덕분에 이야기가 담긴 요리를 기분 좋게 준비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작가의 이전글 격렬하게 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