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친정집 주변은 지역을 관통하는 고속도로 공사로 지형이 바뀌고 수로의 위치도 달라졌다. 그 달라진 수로가 친정집 앞에 계획되어 땅 일부가 수용되는 바람에 몇 해 전 심어 겨우 자리를 잡았던 소나무와 주목, 배롱나무들이 터를 옮겼다.
나무 몇 개 옮기는 일이 별게 아닌 줄 알았는데 주변의 곡식들도 신경 써야 하고 낮은 땅을 흙으로 메꿔 높이를 높이기도 하고 전신주를 옮기는 위치도 상의해야 하는 등 생각보다 일이 많다.
부모님이 연로하신 이유도 있겠지만 그런 일들을 좋아하고 잘하는 막냇사위인 남편이 맡아 처리하게 되어 수시로 친정집을 방문하고 있다.
뭐든지 자꾸 하면 실력이 늘고 손이 가면 모양이 나아진다고 엄마네 정원도 친정집에 다녀오는 횟수만큼 예뻐지고 있다.
엄마는 우리 부부가 정원을 가꾸고 꽃을 심는 것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어려서부터 꽃을 좋아해 시집가면 예쁜 꽃밭을 가꾸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먹고살기 바빠서 평생 일만 하며 살았다."
엄마가 꽃을 좋아하신다고?
처음에는 꽃을 좋아하신다는 그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집 앞에 화단이 있어 계절별로 꽃이 피기는 하나 꽃밭인지 풀밭인지 구별도 안되고 화분 몇 개가 있지만 그마저도 고추가 자라고 있는 마당 풍경을 떠올리면 꽃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 큰언니와 엄마를 모시고 카페에 가서 차를 마셨다.
이전엔 카페를 모시고 가려면 한바탕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집에서 커피 마시면 되지 왜 비싼 돈을 주고 먹냐, 할 일도 많은데 뭣 하려 할 일 없이 앉아 있냐, 가려면 너희나 다녀오라."
그날은 어쩐 일인지 카페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옷을 갈아입으셨고 자식들이랑 놀러 가신다고 좋아하셨다. 찾아간 카페의 정원엔 여러 가지 꽃들이 피어있었는데 "색이 곱다, 참 이쁘다." 하시며 유독 꽃무릇과 바늘꽃에 관심을 보이셨다. 돈 주고 사는 차를 마시고 한가하게 꽃구경을 하시며 예쁘다고 감탄하는 엄마의 모습이 어린아이처럼 곱고 귀여우셨다.
그런 엄마를 보고 있자니 엄마의 꽃들이 머릿속에서 피어나기 시작했다. 울 밑에 봉선화와 채송화가 있었고 나팔꽃이 지붕 위로 올려지기도 했었고 해 질 무렵 과꽃이 피고 선인장 꽃도 마을에서 제일 먼저 심었었고 이 집 저 집 분양도 해 주었었다.
정원의 위치가 바뀔 때도 수선화를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을 하셨다. 몇 해 전 동해를 입어 배롱나무가 꽃을 제대로 피우지 못했을 때도 저게 참 예쁘던데 어쩌냐고 안타까워하셨고, 수돗가 옆 수국의 탐스러운 꽃을 자랑하셨었다.
그랬었다. 엄마는 꽃을 좋아하셨다.
아마도 아버지가 편찮으신 후로 상황이 달라진 것 같다.
꽃씨를 심고 새순이 나오기 시작할 무렵이면 곡식의 순도 나오고 더불어 풀도 나기 시작한다. 일손이라고는 오직 엄마밖에 없는 친정의 일들은 엄마에게 꽃이나 돌볼 여유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눈이 보기 좋기 이전에 먹고사는 것이 우선이라 밭에 풀을 뽑고 농약을 치고 돌아서면 또 풀이 나오는, 그러다 보면 이미 화단을 가꿀 시절은 지나 꽃인지 풀인지 분간할 수 없는, 화단인지 풀밭인지 구별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었을 것이다.
엄마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예쁜 꽃도 있기는 했었다.
도시에서 이사 온 겉모양이 세련된 이웃은 온갖 나무를 집 주변에 빼곡하게 심었다. 그 나무들은 엄마의 밭을 빙 둘러 담을 쳐 버린 것이었는데 그게 바로 벚꽃이었다. 벚꽃이 필 때 친정을 방문한 자식들은 이웃의 그 빼곡한 벚꽃이 작은 우리 집과 밭을 감싸고 있는 모습을 좋아했지만 엄마는 밭에 그늘이 꽉 차서 무슨 곡식을 심어도 되는 게 없다고 이웃의 벚나무를 미워했었다.
예쁘니까 그냥 봐주라는 자식들의 말에 엄마는 몹시 섭섭한 눈치를 보이셨었다. 이쁘기는 뭐가 이쁘냐며 곡식을 다 망치는 화려한 이웃과 이웃만큼 화사한 벚꽃나무를 향해 눈을 흘기셨다.
위치를 변경하기 전의 정원도 엄마와는 맞지 않았다. 처음부터 정원수는 엄마의 일을 줄이기 위해 막냇사위가 심은 거였다.
소나무 아래에 호박이나 강낭콩을 심어 넝쿨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게 했다. 나무가 넝쿨 때문에 괴로워한다고 엄살을 떨어도 모른 체하셨다.
또 화살나무를 심어 놓았더니 새순이 나오면 잎을 훑어 나물로 드시는 바람에 꽃처럼 예쁜 빨간 알갱이를 볼 수 없게 하셨다. 그냥 정원을 즐기시라 해도 소용이 없었다. 나무는 크고 그 아래에 풀 나면 보기 싫어서 그렇다고 말씀하시지만 엄마의 속마음은 나무 아래 빈 공간에 대한 아까운 마음이 더 크다는 것을 자식들 모두 알고 있었다.
엄마의 꽃밭은 아담해야 한다.
그래서 엄마를 위해 작고 아담한 화단을 만들었다.
집 앞에 화단인지 풀밭인지 구별이 안되던 곳을 정리하고 수선화와 튤립을 심었다. 집으로 올라가는 길 옆엔 은방울꽃을 추가했다. 화단을 만들면서 큰언니와 내년부터는 박여사네 꽃 축제를 열자고 모의도 했다. 봄과 가을에 엄마 형제들을 초대하고 엄마 손주들도 오라고 하자고 말하며 사람을 불러 모으는 일은 큰언니가 담당하고 꽃밭을 가꾸는 일은 우리 부부가 담당하기로 했다.
지난 주말에도 친정엘 다녀왔다. 꽃무릇을 보시며 참 이쁘다고 하시던 말씀을 남편이 기억했다가 친구 집에서 분양받아와 화단의 중앙과 집으로 올라가는 길가 화단에 심어놓았다.
밭에서일하고 돌아오시는 엄마를 세워 "이제 일은 그만하시고 집에서 이런 거 보시며 놀아요."라고 말씀드렸다. 엄마는 '그러마.'라는 대답을 안 하시고 "막냇사위 덕분에 소원을 풀었다." 하시며 환하게 웃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