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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Mar 22. 2023

아궁이는 없고 장작과 가마솥은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 2

  아침잠이 많은 남편이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지인이 공사 중인 현장에서 참나무를 가져가라 했단다.

그래서 수차례 픽업트럭의 타이어가 터지지 않을 만큼 참나무를 실어와 원룸 앞에 쌓아 두었다. 절구통 만한 참나무가 주차공간을 차지하고 있으니 이웃집 언니가 뭘 만들 거냐고 물으셨고 남편은 나중에 집 지으면 참나무숯에 삼겹살 궈서 먹으려 한다고 대답했다.

참나무는 주말마다 시골로 가서 장작으로 변했다.


 인터넷 쇼핑과는 거리가 먼 남편이 당근을 관찰하더니 드디어 맘에 드는 중고 가마솥을 찾았단다. 전화를 한다. 입구의 길이가 50센티가 넘고 솥 안은 두 배는 될 거라는 통화 내용이 다 들리는데도 자기 입으로 다시 생중계를 한다. 흥분했다는 증거다.

서로 시간조율을 하지만 안 맞는다. 다행히 전화를 끊었다.


"가마솥은 뭐 하려고요."

"온돌방 만들면 아궁이에 가마솥 걸어야지."

"온돌방?"

"집 짓고 당신 별채를 온돌방으로 만들기로 했잖아."

"그럼 집은 언제 지을 건데요?"

"차차 지어야지."


주말에 친정엘 갔고 잠깐 낮잠을 자는데 전화가 왔다.

"마님, 장작 다 패었구먼요. 이제 뭐 할까유?"

"난 쉬고 싶어."

웃음도 안 나오는 아재개그에 자리 털고 일어나 마당으로 갔더니 남편은 또 통화 중, 결국  가마솥과 약속을 잡은 모양이다.

지금 가마솥을 사면 어디에 쓰냐고 투덜거리니 내 맘에 안 들면 그냥 올 거니까 보기만 하잖다.


가마솥은 옴 몸이 누렇게 녹이 었고 나는 온 몸에 주름이 생겼다. 저 녹을 어떻하냐니까 깨끗하게 닦으면 된다고 걱정하지 말라며 밤중까지 기다린 사람 앞에서 나더러 살 거냐 말 거냐를 재촉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맘대로 하시라 하고는 차로 돌아와 언니에게 하소연을 했더니만 재미있다고 웃는다.

두 남자가 차 앞을 스치듯 지나가더니 트렁크는 열리고 내 힘으로는 뚜껑도 못 들 만큼 무거운 가마솥이 가뿐하게 실렸다.

나는 한숨을 쉬며 언니에게 이번 주말에 참나무 숯으로 솥뚜껑 삼겹살 구어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렇게 남편과 내 꿈은 삐그덕거리며 한 발짝씩 가고 있다.

녹 슨 가마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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