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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Sep 30. 2021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

사랑의 빚을 사랑의 빛으로 갚다, 등잔대 만들기

할머니가 시집오던 날,

동리 사람들은 밤이 늦도록 문 밖을 지켰습니다.

족두리를 쓴 채 불편한 혼례복을 입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것도 참을 수 없는 노릇이었으나 그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것은 볼 일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혹시나 싶어 전날부터 물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는데도 몸속의 물은 어디서 생겨나는 것인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어요.

등잔불의 희미한 빛을 쳐다보다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 나가고 눈은 병풍 에 있는 요강 쪽으로 힐끔  돌아갔습니다.

그 순간 새신랑은 이불을 들고 바느질한 이음새를 찾아 두 손으로 움켜쥐고는 힘껏 양쪽으로 잡아당겨 찢어 버리더니 그 속에서 목화솜을 한 주먹 뜯어 병풍 옆의 요강 속에 넣어 주고는 등잔불도 박력 있게 꺼 주더랍니다.  

그다음은 상상 그대로입니다.


중매쟁이의 발걸음이 양가의 대문을 여러 차례 드나들고 잡힌 혼인이었습니다.

사정이 그러하니 두 사람은 얼굴을 대면한 사이가 못되었지만  신부는 그날 신랑의 행동이 얼마나 믿음직스럽고 고맙던지 남편으로 평생 믿고 살아도 되겠구나 생각을 하였답니다. 그러나 생각처럼 믿고 살만한 남편은 못되었습니다.

신랑은 사업을 한답시고 가산을 탕진했고 아내는 억척스럽게 다시 가산을 일궜습니다.

그렇게 아내는 남편의 뒷감당뿐만 아니라 덤까지 이루며 살았습니다.



위의 이야기는 건너 건너 아는 댁의 부모님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부부지간에 빚이 생기면 서로에게 빛으로 갚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처음 만난 그날 혼인식을 치웠던 두 사람,

희미한 등잔불을 신랑이 꺼 주었을 때 신부의 마음에 새롭게 켜진 반짝이는 등불은 두 분의 평생을 인도해 준 빛이 되었습니다.


사랑의 빚을 사랑의 빛으로 갚은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싶어 등잔대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감상하시는 동안 마음에 예쁜 등잔불 하나 밝히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nSojUITeS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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