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숙집 이모 Apr 26. 2023

부끄럽지만 김여사입니다

그래서 무서웠습니다

황색등이 보이면 무조건 서행.

고속도로 주행은 제한속도보다 아래로.

신호위반으로 범칙금을 낸 경우는 없고 속도위반으로 범칙금을 낸 경우는 아주 오래전, 까마득한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준법 운전을 하는 사람입니다.  

여성 운전자에 대한 조롱 섞인 김여사란 표현을 싫어해서 더욱 조심 운전을 합니다.


운전 경력은 25년도 넘었지만 사는 지역을 벗어나면 완전 초보나 똑같습니다.

그래서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엔 지도를 펴고 가야 할 길의 특징을 미리 익혀 두고 출발을 했습니다.

저기 주유소를 지나서 두 번째 골목, 무슨 아파트를 지나서 좌회전, 은행을 끼고돌아 100미터 지나면 주차장!

몇번씩 확인하고 또 확인 했었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일반화되고는 거리감을 익히는 게 여전히 어려워 몇 미터 전방에서 우회전하라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깥차선으로 진입을 하고 눈치를 보아가며 서행을 합니다.

그래서 낯선 도시를 가야 할 일이 있으면 남편이 기사를 자처합니다. 아내와 함께 다니는 걸 좋아해서라기보다는 혼자 보내는 게 불안해서랍니다.


얼마 전 지인댁 문상을 갔습니다.

데려다주겠는 남편을 익숙한 지역이라 혼자서도 다녀올 수 있다고 안심시키고 당당히 나섰어요.

목적지에 잘 도착해서 문상을 하고 지인들과 인사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온 길 따라가면 되는 거지!'라는 생각에

장례식장에서 나와 진입도로를 들어섰는데 차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주 잠깐 뒤,

차선이 많아지고 차들이 주행 중인 방향의 신호대기 저쪽에서 내 차를 쳐다보며 서 있었습니다.

앗!

순식간에 차를 오른쪽 차선으로 피신하고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순발력 좋다고 생각한 건 찰나.

서서히 두려움이 덮쳐왔어요.

사고가 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위로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너무 어이가 없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나오던 지인이 그 모습을 보았던 모양입니다. 전화로 잘 가고 있는 거냐고 거기로 가면 역주행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나도 방금 알아차렸다고 조심해서 잘 가겠노라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어요.


집까지는 대략 1시간 거리였어요.

다행이었단 생각보다 신호 대기가 아니었다면, 그 많은 차들이 내 속도와 같은 속도로 달려왔다면, 오른쪽 경계석이 어서 피하지 못했다면, 사고가 났다면 난 어떻게 되었을까 등등의 가정이 마구 떠올랐고 두려움도 점점 커져 집까지 오는 길이 참으로 멀고 길었습니다.


잠을 자려는데 무서웠습니다.

눈을 감으면 빨간 눈들이 나에게 달려왔어요.

옆 방의 남편을 같이 자자고 불렀습니다.

팔베개를 해주겠다는 말에

"싫어, 등 줘."

남편 등짝에 매미처럼 붙어서 정말 무서웠다고 말했습니다.

"바보야, 다음부터는 같이 다녀."

남편의 한숨 소리 뒤에 꼭꼭 숨어서 겨우 잠을 잤습니다.

여러 날이 지났지만 생각하면 여전히 무섭습니다.


그날 저 때문에 당황 혹은 황당하셨을 운전자님들 죄송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