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숙집 이모 Jul 23. 2023

시골 소녀, 서울 학교의 교감이 됐다

친구의 승진이 부럽지만 질투하지 않는다

  그날, 저녁 일을 시작하느라 급하게 통화를 마치고 내내 네 생각을 했어.

중학교, 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넌 늘 나보다 우월했지. 우월함은 단지 성적뿐이 아니었어. 똑같은 농사꾼의 딸인데 그 모습 그대로 시골아이인 나와 다르게 뽀얀 피부에 또렷한 이목구비, 훤칠한 키에 이국적인 분위기가 도시아이 같았다.

너의 엄마는 그 시절에도 시내 가서 영화를 보고 오신다는 말에 매일 일만 하는 우리 엄마와 비교되면서 너의 고급진 환경이 부럽다 못해 질투가 났었다. 그리고 시골의 고등학교가 아닌 대도시의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네 동생을 볼 때 우리 집과 사뭇 다른 너네를 더 실감했었지.


대학을 졸업하고 너는 교사가 되어 서울로 갔어.

우리의 격차가 더 벌어졌고 나의 모자란 열등감은 너와 거리를 만든 것 같아.


십수 년의 세월이 지난 어느 날, 내게 주어진 책임이 꽤나 많아 어떻게 감당하며 살아야 할까 하는 걱정으로 이리저리 뒤척이고 이것저것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던 중에 작은 깨달음을 얻었어.

'누구나의 성장엔 노력과 시간이 투자되고 그 시간을 잘 견뎌낸 사람은 성취감을 맛본다.'는 당연한 진리를 말이야. 그걸 나는 서른 중반이 지나서 겨우 알았단다.

근데 있잖니, 그때 네가 생각났다. 좋은 부모, 예쁜 외모와 상관없이 과외나 학원도 없던 시골아이가 영어 선생님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했을까, 너네 집 보다 더 좋은 환경의 도시 아이들과 경쟁하기 위해 네 동생은 또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그런 생각끄트머리에서 모교의 정문 앞에 걸려 있던 펼침막 속 네 동생의 이름이 왜 그렇게 기특하게 느껴지던지.


또 세월이 지나 너와 다시 연락이 되고 여전히 열심히 살고 있는 너를 나는 여전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어.

통화 중 다른 친구의 승진소식을 내가 전할 때 슬그머니 꺼내놓은 너의 승진과 대학원 졸업 이야기가 부러웠지만 신기하게도 질투는 나지 않더라. 그리고 줄곧 너를 생각했어, 생각할수록 좋아서 웃음이 났어, 내 친구 훌륭하고 멋지다고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어지는 거야. '깡시골 내 친구가 서울 한 복판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교감선생님이 되었다.'라고 주위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더라.


요사이 친구들의 승진소식이 부쩍 자주 들리고 서로의 기쁜 소식을 나눠주며 마음껏 칭찬하고 웃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어려서는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었으나 나이 들면서 잘했다 손뼉 쳐 줄 대상이 되고 더불어 나도 함께 성장해야겠다는 욕심을 갖게 하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래서 오늘은 나의 느리고 작은 한걸음을 위해 책을 주문하고 너를 자랑하기 위해 짧은 이야기 남긴다.

친구야 진심으로 축하해, 그리고 참 기쁘다. (추신, 주문한 책은 괴테의 파우스트야)

작가의 이전글 건강한 큰 애기의 시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