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의 다양한 회의에 대한 기억
업무를 하다 보면 일상의 루틴 한 일이 부담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매주 하는 회의도 그 중하나이다. 사실 회의의 목적은 여러 가지이다. 매주 본인이 한 일이나 일주일의 계획을 공유하면서 그 안에서 발전적인 방향을 찾거나 다른 영업기회등을 포착하기 위함이 주목적이지만 때론 부서의 장에게 '이번주에는 제가 이렇게 열심히 일했어요'라고 보고하는 자리로 전락하고 말 때도 있다. 이런 단순 보고의 자리는 사실 다른 직원의 이야기는 특별히 들을 이유가 없기에 자칫 시간낭비일 때도 있다. 이런 단순 보고의 자리를 만들지 않기 위하여 뭔가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사업부 지원 부서에서 잠깐 근무한 적이 있었다. 직원이 서른 명 이상되는 다소 큰 부서였는데 부장님께서 매일과 주단위로 발표를 시키셨다. 매일의 발표를 '짧은 숨', 매주의 발표를 '긴 숨'이라고 명칭 했던 것 같다.'짤은 숨'은 부서 내 중간 공간에 일어서서 말하고 싶은 주제에 대하여 간략히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대략 한 달 반에 한번 정도 발표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온다. 정말 다양한 주제로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지금 기억에 남는 주제는 '마블' 영화를 좋아한다는 직원의 마블시리즈 이야기, 자동차를 좋아하는 직원의 '스포츠카' 이야기, 골프이야기, 스쿼드 자세에 대하여 시범을 보이며 따라 하게 시킨 직원의 이야기 등 그 직원의 관심사 등을 들으며 직원 개개인의 새로운 면을 보는 시간이었다. 물론 짧은 시간이지만 말하는 직원은 부담이 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더 큰 부담은 매주 한 사람씩 돌아오는 약간 긴 시간의 발표인 '긴 숨'시간이었다. 10~15분 남짓이었을까?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준비하고 발표를 하였다. 기억에 남는 주제는 아파트 부동산에 대한 이야기, 예전에 보컬 레슨을 하기도 했다는 직원의 이야기 등 그리 무겁지는 않았지만 준비도 필요한 주제였다. 난 그때 '자기 계발'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가 읽은 책들을 바탕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부장님이 신문의 특집기사를 보시고 그걸 이야기하라고 시키셨다.
난...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TT.
영업점에서 매주 월요일 아침 주간회의를 진행해야 했던 시기가 있었다. 금요일이면 자료를 만들고 하는 일이 부담으로 다가왔고 차가 막히는 아침에 일찍 출근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그러다가 나름 딱딱한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부드럽게 하려고 회의 시작 전 간단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야기 준비는 출근하는 차 안에서 정리하였다. 때론 라디오에서 이야기 주제를 찾기도 했고 소소한 내 이야기도 하였다. 이런 나의 이야기를 직원들이 좋아했는지는 모르겠다. 싫은 내색은 하지 않아서 일 년 이상을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어준 직원이 고맙게 느껴진다.
부서나 영업점의 회의 이외에 본부에서 직원들을 소집해서 하는 회의도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본부장님이 연락이 오셔서 후배들이 회의를 하는데 와서 선배로서 은행생활하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신 적이 있었다. 강사를 모시고 뭔가 새로운 것을 이야기하시기를 바라셨던 것 같은데 전문적인 강사를 초빙하기에는 좀 그래서 아쉬운 데로 선배라는 이름으로 이야기를 시키 신 듯하다. 사실 직급상 내가 조금 앞섰지만 은행 선배들도 몇몇 있었기에 조금 부담스러운 자리이기는 했다. 난 그냥 내가 읽은 책 속에서 나름 적어 놓은 좌우명 비슷한 것과 연수받았던 것 과거 다른 부서에서 일했던 경험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사실 회의라기보다는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본부회의를 이야기하다 보니 나름 잔인한 회의도 있었다. 매달 행해졌던 '영업실적회의' 같은 것이었다. 어느 날 회의에 도착했더니 자리 배치가 되어 있었다. 그 전달 발표된 개인영업실적 순위의 역순으로 앞에서부터 자리를 잡아 놓았다. 꼴등이 맨 앞자리인 셈이다. 앞으로 할 영업이 어떤 게 있는지, 계획은 뭔지, 지난번 하겠다고 한 건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등을 발표해야 하는데 사실 이런 종류의 회의는 회의라기보다는 '잘하겠습니다. '라고 공개적으로 다짐하는 자리인 셈이다.
요즘 부담이 되는 회의는 매주 열리는 화상회의이다. 부행장님이 주재하시는 각 부서 기획팀장회의이다. 부서 내 진행했던 일을 보고하고 다른 부서의 일을 듣는 자리이다. 부행장님은 '보고'하는 회의가 아니고, 각기 다른 부서의 진행상황을 공유하는 자리라고 이야기하신다. 부행장님은 합리적이신 분이시고 잘 경청해 주시고 때론 방향도 잘 정해주시지만, 어쨌든 그 회의 시간이 무척 부담스럽긴 하다. 6개월을 이어온 매주 회의는 익숙해 질만도 하건만 계속 부담으로 다가온다. 아마 그 부담은 부행장님과 함께 하는 회의이기 때문일 것이다.
은행의 선배님으로서 좋은 이야기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들을 이야기해 주셔서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회의'라는 정해진 딱딱한 틀 안에서 듣는 덕담은 왠지 딱딱하다.
오늘도 회의 자료 독촉이 왔다. 다른 일로 바빠서 정신이 없다가 확인을 하고 부리나케 정리해서 제출을 하였다. 업무가 끝날 무렵 메시지가 왔다.
"내일 회의는 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환호(?)를 질렀다. 옆 직원들이 놀라서 쳐다보았다.
나이는 들어가지만 여전히 어렵고 힘든 자리는 항상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