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점심시간의 기억
아이들은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급식을 먹는다. 큰아이는 학교 급식 식단을 확인하면서 잠자리에 든다. 좋아하는 급식이 나올 예정인 날은 신나 하고,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약간 시무룩 해지는 것 같다. 어쩌다 맛있는 급식이 나온 날이면 집에 와서 자랑하기 바쁘다.
둘째 아이는 코로나 때 급식용 수저통을 가져간 것이 버릇이 되어서 인지 아직도 아침마다 수저통을 챙겨서 등교를 한다. 물론 학교에서 수저를 주기는 하지만 마스크를 벗어도 되는 시기에도 마스크를 쓰는 것처럼 학교 수저를 쓰기가 아직은 꺼름직 한 것 같다. 수요일은 '수다날'이라고 해서 맛있는 음식이 나오는 날이라고 한다. 면종류와 피자, 치킨, 햄버거등 다양한 메뉴가 나와서 좋아한다. 목요일은 '그린날'이라고 한다. 아마 채소위주의 식단인 것 같다. 아이는 싫다고 한다.
아이의 앙증맞은 수저통을 보다가 문득 나의 어린 시절 점심시간이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를 4군데나 다닌 '프로 전학러'로 학교를 다녔기에 어느 학교에서는 난로가 피워진 교실에서 도시락을 먹었었고 어느 학교에서는 급식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 때는 잡곡을 장려할 때였다. 지금은 상상이 안 가지만 쌀이 부족했던 시기여서 초등학교 때 점심시간에 잡곡밥을 가지고 왔는지 검사를 선생님이 하셨다. 어머니께서는 계란 프라이를 밥에 얹어 주실 때가 있으셨다. 그때는 아들이 계란을 들어 올려 검사를 받는 수고라도 덜게 하려고 약간 기다란 보온 도시락 밥통에 계란 프라이를 도시락 중간에 놓아주시고 그 위에 다시 밥을 얹어 놓으셨다. 그렇게 해주신 어머니의 이유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중간에 놓인 계란프라이는 또렷이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별도의 도시락 반찬을 마련해 주시기보다는 집 밥상의 축소판으로 도시락을 준비해 주셨다. 사실 그때는 그 도시락 반찬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어머니가 해주시는 나물 반찬이나 멸치 등의 밑반찬이 제일 맛있는 나이가 되었다.
친구들의 점심시간 도시락이 생각이 난다. 그중 중학교 때 같은 반 친구의 도시락이 갑자기 뇌리에 스쳐 지나간다. 모범생으로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하고 사이도 좋은 친구였다. 그 친구는 그 시절 컴퓨터 바이러스에 관심이 많아 학교에서 발간하는 책자에 기고를 하기도 했었다. 그날 그 친구가 싸 온 도시락은 '상추쌈'이었다. 그 친구는 당당하게 상추에 밥을 싸고 쌈장을 넣어 입을 크게 벌려 상추쌈을 먹었다. 그 친구가 엄마에게 상추쌈을 도시락으로 싸달라고 했을까? 아님 엄마가 그냥 상추를 도시락으로 싸 주셨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평범하지 않은 그 친구의 용기가 부럽다. 나라면 어땠을까? 엄마가 '상추쌈'을 싸주셨다면 도시락 뚜껑을 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난 무언가 평범함을 벗어나는 것이 두려운 아이였기 때문이다. 때론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도 필요한데 말이다. 어쨌든 그 '상추쌈' 친구의 용기가 부럽다. 먹고 싶은 걸 도시락을 싸 오면서 까지 먹을 수 있는 용기, 혹은 엄마가 싸주신 상추를 본인이 원하지 않았을지라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당당함이 부러웠다.
도시락 하면 소풍 때 먹는 김밥을 빼놓을 수 없다. 그 김밥에 대한 한 친구의 추억이 있다. 그 친구는 소풍날 김밥이 아닌 밥과 반찬을 싸가지고 왔다. 소풍의 점심은 김밥이라는 국룰을 어긴 그 친구 주위로 다른 친구들이 모였다. 그날이 처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 친구와 여러 해를 같은 반을 했던 다른 친구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소풍날 그 친구의 도시락을 말이다.
사실 그 도시락의 반찬은 특별했다. 지금으로 치면 평범할 수 있지만 돈가스, 햄, 동그랑 땡 등 당시에는 환상적인 도시락 반찬들이 들어있었다. 왠지 김밥이 너무 평범해 보였다. 그 친구의 엄마가 김밥을 잘 못 싸시는 건지, 아님 그 친구가 김밥 알레르기(?) 같은 게 있어서인지 원인은 모르지만 그날도 그 친구의 도시락은 친구들 사이에서 큰 즐거움이 되어 주었다.
점심시간에 먹는 도시락은 학창 시절의 큰 즐거움이 된 이유는 친구들과 함께 먹어서 일거다. 고등학교 때 난 점심시간이 되면 도시락을 들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다른 반 친한 친구들과 함께 야외에서 도시락을 먹기 위해서이다. 따듯한 햇볕아래 운동장 옆 벤치에서 장난치며 친구들과 먹는 도시락은 그 맛이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기분과 분위기, 친구들의 웃음소리 등 그 시간은 온전히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 친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쉽게도 고등학교 친구들이 연락이 쉬이 안 된다. 한 친구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독일로 이민을 갔다. 한 친구는 몇 해 전 늦게 결혼을 했다고 한다. 다시 교정에 모여 도시락을 함께 먹고 싶다. 맛있는 음식이 아니어도 좋다. 그 친구들과 함께한다면 무슨 음식이든 진수성찬이 될 것 같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 둘째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운동장에 줄이 쳐지고 그 줄 밖에서 아이를 지켜봐야 만 했던 아쉬움이 있다. 어느 날 아이의 급식 여부를 묻는 e알리미에 난 '먹지 않음'을 과감히 눌렀다. 코로나에 함께 먹은 점심이 걱정스러웠다. 다음날 아이의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급식을 먹지 않겠다고 한 아이는 우리 아이 하나라고 말이다. 함께 급식을 먹는 게 아이들에게 큰 즐거움이고 그 속에서 또 많은 걸 배울 수 있다는 말씀이셨다.
코로나가 걱정이 되어 아이의 큰 즐거움과 배움의 기회를 뺏을 뻔했다. 그 이후 아이는 급식을 신나게 잘 먹는다. 특히 수요일을 기다리며 말이다. 아이의 기억 속에 많은 추억이 담겨있는 급식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내일 아이의 급식은 보리밥, 등뼈감자탕, 스크램블에그, 구이김, 깍두기, 수박, 우유이다. 아이가 이젠 등뼈감자탕도 먹는구나... 벌써 아이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