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굴렁쇠를 굴리며.
공원(公園): 공공녹지의 하나로, 여러 사람들이 쉬거나 가벼운 운동 혹은 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마련된 정원이나 동산 (Daum 사전) / 한자 뜻: 공평할 공, 동산 원
아파트 속에 자리 잡은 집 앞 공원은 정원이 따로 없는 우리들에겐 정원이자 놀이터이고 또 사색하거나 운동을 하기 좋은 산책을 위한 장소다. 재작년 가을 이후 반년 이상의 공사를 통해 새 단장을 하고 작년 봄에 돌아온 집 앞 공원이다. 언제 공사를 완료하는지 기다리며 아파트 단지 여러 곳을 배회하며 겨울 내내 다른 곳을 산책하며 기다렸고, 새 단장을 하고 돌아온 공원에 기뻐하고 공원 주변을 돌며 페이스북에 글을 남기기도 했었다.
‘집 앞 공원’이 다시 돌아왔다. (2022.04.30 페이스북)
문득 떠오르는 옛 기억을 끄집어낸다.
고등학교 졸업앨범을 찍었던 곳이다. 짧은 스포츠머리, 조금은 촌스러운 듯한 옷차림이다. 표정만은 즐겁다.
대학 신입생 시절 친구들과 분수대 앞에서 이야기하던 곳이다. 여름밤 그 분수대에 빠진 녀석도 있었다. 철없었지만 즐거웠다.
이곳으로 다시 이사 와서 특별히 갈 곳 없는 주말. 아이들과 자주 간 곳이다. 집에서 심심할 때면 공원 가자! 하고, 큰 애는 자전거를 작은 애는 씽씽이를 챙겨 가곤 했다.
몇 년 전부터인가… 저녁이면 산책하던 코스이다. 공원 주변을 돌고 돌고 돌았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질 때면 머릿속을 정리해 주던 곳이다.
리모델링 후 거의 반년 만에 다시 오픈했다. 아이들과 산책 겸 쓱 둘러본다. 많이 바뀐 듯하지만 다행히 추억의 장소들이 세련미를 더 한 채 어느 정도 유지를 하고 있다.
옛 추억을 끄집어낼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 장소든 사람이든 함께 한 것, 순간은 언제나 기억 한 곳에서 얌전히 자리 잡았다 슬그머니 나와서 미소 짓게 한다. 이곳에서 또 추억을 만들어 본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공원을 또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에 산책하며 돌았다. '공원'에는 사전적 의미가 있지만 난 왠지 그 '공원'이라는 단어와 돌고 도는 산책코스가 어울리는 것 같다.
또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반복되는 사색들도 돌고 도는 걸 보면 정말 모든 것이 '돌고 도는 공원산책로 사색'이다.
공원 주변을 둥글게 만들어 놓은 산책로를 계속해서 걷는 것이 지겨울 법도 한데 어디로 가야 할까 하는 생각이나 고민을 하지 않고 그냥 걷기만 하면 되니 목적지에 대하여 생각할 에너지를 일상의 일이나 고민거리에 대한 생각으로 전환하여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어서 난 그냥 그 길을 돌며 산책하는 것이 좋다.
걷다 보면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 사로잡혀 그 기억을 끄집어내어 보기도 하고 미래의 어느 시점으로 가서 상상의 나래를 펴며 이런저런 생각도 해본다. 회사일로 고민거리가 있으면 그 고민거리가 산책을 하면서 계속 맴돌아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엔 좋은 방향이 생각이 나기도 한다. 물론 딱히 해결의 방법이 없는 고민거리도 있다. 그럴 땐 그 고민을 하고 있는 나의 생각을 바꿔보는 쪽으로 또 다른 해결책이 생기곤 한다.
나의 삶도 때론 이런 '돌고 도는 공원산책로' 였으면 할 때도 있다. 공원 산책로에서는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사실 삶에 있어서 가장 큰 고민거리는 '인생의 목표'이다. 하루하루의 삶이 챗바퀴처럼 도는 삶이라고 하더라도 때론 그건 단순한 챗바퀴가 아니라 마치 '굴렁쇠'와 같은 것이다. 계속 돌기는 하지만 어디론가 끊임없이 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 삶의 굴렁쇠를 굴리기를 시작할 때 어느 정도 방향은 정해져 있다.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듯 어느 한 방향으로 간다. 이왕 굴리기 시작한 굴렁쇠라면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게 좋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인생의 굴렁쇠는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다. 때론 자기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기도 해야 하고, 원하던 방향으로 가더라도 어느 돌부리라도 걸리는 때엔 방향이 틀어지기도 하니 말이다.
그래서, 때론 공원의 둥근 산책로처럼 방향 고민 없이 그냥 내 삶만 온전히 쳐다볼 수 있도록 계속해서 돌기만 하는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난 오늘도 늦은 저녁 집을 나선다. 나이가 들어서 소화가 안되어서 자기 전에 걸어야 한다는 좋은 핑계도 있지만 어떤 때는 머릿속이 꽉 막혀 걸으면서 복잡한 머릿속도 꽉 막힌 내 위장처럼 소화를 시켜 줘야 하는 다른 이유도 있다.
오늘도 '돌고 도는 공원산책로'에서 '돌고 도는 사색'을 하며 '인생의 굴렁쇠'를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