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대화, 꽃이 피다
‘공감’이란 현재를 두텁게 만드는 것이라고 어느 시인은 말했다. 상대의 정서를 상황을 생각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는 건 어느 만큼의 사랑이 필요한 것일까.
제주는 바람과 돌, 여자가 많아 ‘삼다’라 불린다고 했다. 여자가 많은 섬, 제주의 어머니들은 생존하기 위해서 내 식구만이 아닌 이웃과 함께 살아내야 했다. 어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로움은 우리 선조들이 일구어놓은 공동체 터전 위에서 더 빛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귀하게 받들고 어려운 이들을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할 시기가 지금이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그녀는 제주에서 태어났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는 성격대로 학교와 직장생활은 그녀에게 지역과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또한 삶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은 제주에서 태어나 이 사회에 무언가 되돌려 줄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했다. 그래서일까. 회사에서 직장동료들과 가끔 나가는 자원봉사는 그녀에게 또 다른 희열을 가져왔다. 그리고 제주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주위의 도움으로 성장했으며 앞으로도 사회에 환원하며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녀의 자원봉사는 독한 소독약을 희석한 물로 화장실 청소하는 게 전부였다. 이미용 기술을 가지고 봉사를 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그녀는 재능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생교육과 다양한 지역 교육을 통해 그녀에게 맞는 활동들을 하나씩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먹고 받아들이는 교육은 그녀에게 이웃과 함께하는 삶을 꿈꾸게 했다.
퇴직 후, 그녀는 어르신들이 모인 문해 교육장을 찾았다. 글자를 읽고 쓰는데 불편함이 있는 어르신들을 위해 글자를 익힐 수 있는 교육장이었다. 그들에게 정말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근본적인 물음이 생겼다. 그리고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배움의 장을 계속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궁금증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약통에 놓여 있는 수많은 약 중에 두통약이라고 쓰인 것을 읽어서 찾아낼 수 있다면, 은행에서 숫자를 쓰고 읽을 수 있다면, 식당 메뉴판을 자신 있게 읽고 주문할 수 있다면... 하는 사사로울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 일상의 작은 불편함이 배움의 장으로 발길을 계속 옮기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거기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편지로 마음을 전달해 보고 싶은 건 그 뒤편에 몰래 감춰둔 꿈같은 것이었다.
그녀는 평생을 글 읽기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오신 분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싶었다. 항상 자신이 없어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어르신들의 마음을 펴 드리고 싶었다. 지인들과 한식당 중식당을 찾았을 때 자신 있게 메뉴판을 읽어볼 수 있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녀는 어르신들의 일상 자체가 공부라는 사실을 깨우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칠판 글자 따라 쓰기와 인쇄된 한글 교재를 넘어서 그들과의 공감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녀는 먼저 어르신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당신이 어디를 가고 싶은지, 무엇을 제일 하고 싶은지 묻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들에 대한 궁금증을 편지로 주고받을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바로 그 지점이 문해 교육의 시작점이 될 것이라 믿었다. 어르신들이 알고 있는 단어 몇 개와 문장이 들어있는 ‘편지 단어 사전’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그 사전은 평소 어르신들이 사용하고, 글자로 써 보고 싶어 하는 단어들로 채워졌다.
어르신들은 본인들의 공책에 그녀가 만들어준 단어 카드 하나를 옮겨 썼다. 그리고 그 옆에 어울리는 단어를 가져와 나란히 썼다. 어느새 하나의 문장이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문장은 다른 문장들과 함께 편지가 되었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담긴 편지를 앞에 두고 어르신들의 얼굴은 놀라움과 기쁨으로 가득했다. 소화되지 않은 낱말을 어색하게 집어넣은 글보다 백만 배 더 가슴을 울렸다. 직접 쓴 편지를 손에 쥐고 떨리는 음성으로 ‘고맙다’며 울먹이던 어르신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감정이 뜨거워진다고 한다.
왜냐하면, 어르신들의 배움에 대한 열망이 제주의 어려웠던 시절 자식을 위해 부모를 위해 더 나아가 혼란스러웠던 역사의 한편에서 많은 걸 희생할 수밖에 없었던 모습으로 자꾸 겹쳐져서였다. 그래서 그녀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어르신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이 느끼는 고민을 같이 느끼고자 했다. 그녀의 작은 사랑은 깜깜한 흙 속에서 이곳저곳 자리를 잡아가는 뿌리가 되었고 결국 싹을 틔웠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왜 나는 자꾸만 그들을 찾아가는 것일까. 왜 나는 당신들과 만나면서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왜 이리 행복한 걸까.’ 지금도 그녀는 그 물음에 답을 써 내려가고 있다.
회사를 나온 후 5년이 흐른 지금. 그녀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퇴직금과 함께 단기 근로직으로 받은 월급으로 그럭저럭 생활을 꾸려나가는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르신들의 배움에 대한 열망을 보면서 고민을 함께 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녀 자신도 동시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바라는 제주 사회의 이상형을 그녀 스스로 그리고 있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지금 이 시간이 행복하다고 한다.
그녀의 꿈은 그림 동화 작가다. 그녀에게 그림책은 모든 세대의 마음을 연결해 줄 수 있는 고리이다. 동화 속 그림과 글자를 장애인들과 같이 읽을 때, 그들은 진심이 담긴 눈빛을 보여주었다. 그 눈빛 속에는 동화 속 세상의 아름다움으로 빛나고 있었다. 꿈과 희망이 가득한 동화 속 세상, 비록 세상은 동화 속 세계와 다를지라도 그들이 그 꿈과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언젠가는 이 세상도 동화 속 세계와 닮아갈 것이라 믿는다.
단어를 같이 옮겨 쓰며 받았던 어르신들의 따뜻한 포옹, 동화책을 같이 읽으면서 받았던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빛... 그들을 보며 알았다. 사람에게서 받은 사랑은 반드시 사람에게 돌려진다는 것을, 그 사랑이 쌓일수록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 진다는 것을.
나는, 그녀가 장애인에게 책을 읽어줬던 이야기와 80년이 넘게 글을 모른 것이 당신들의 탓으로만 여기며 살았을 어르신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며 타인의 삶을 고민하는 그녀를 떠올려 보았다. 인생 경험과 도약의 순간은 아무에게나 오는 게 아니다. 가끔은 일상에서 떠 오르는 질문을 발견하는 힘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 삶의 이상과 현실에서의 간격을 알아보는 것. 그리고 그 이상이 개인의 만족에 있는 것인지.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인지 기준이 필요하다.
그녀는 삶의 이유를 자기 안에서 주체적으로 찾은 자원봉사자다. 어떤 상황에서도 위험을 회피하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기꺼이 주인으로 참여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자기 자신이 원하고 지향하는 지점에 도달하기 위하여 지금도 고민하며, 제 안의 에너지로 끊임없이 주위를 비추는 그녀. 그녀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지 자못 궁금하다. 물론 장애물쯤은 개의치 않겠지. 사람과 사람으로 닿는 에너지가 포용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나 역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