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하늘 Dec 06. 2022

각자에게 있어 좋은 삶이란

Socratic method

우리에게 좋은 삶이란 어떤 것일까?

어떻게 살면, 잘 살았다 내지는 좋은 삶이라고 이야기될까?


종교적인 느낌이 나는 듯한 질문이지만, 사실 이 질문은 철학계의 오랜 질문 중 하나이다. 소크라테스부터 이어진 수많은 학자들이 고민해온 삶의 정수가 담긴 질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대 성인이 되던 무렵부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끝없는 고민을 하며 살아왔다. 왜 태어났는가에 대한 존재론적인 고민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적인 고민들을 더 던지며 살아왔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방향성을 찾아나가다 보면, 자연스레 내가 태어난 이유와 목적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의 삶은 'How'에 초점이 맞춰진 채로 흘러왔다.


그리고 살아가는 방향에 대한 숱한 고민들을 찾기 위해, 여러 책과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나에게 책은 세상을 알려주는 선생님과도 같았고, 다양한 사람들은 그 세상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생생한 동지이자, 친구였다. 책을 읽으며 나 자신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져나갔고, 또 여러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며 더 나은 삶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러한 나의 과정은,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문답법과도 얼추 모양새가 비슷해 보인다.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진리를 인식하기 위해서, 논리적 논박을 통해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산파술을 통해 진리에 스스로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이성을 계발하게 되고, 진리에 도달하게 된다. 특히 소크라테스가 강조한 것은, 진리에 도달하는 것을 방해하는 의견, 즉 doxa를 제거해나가며 참된 진리에 다가서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의견(doxa)은 우리가 어려서부터 답습해온 사회적 관습 내지는 비합리적인 믿음을 뜻한다.


그러나 내가 답을 찾아 나서기 위해 여러 사람들에게 질문을 구했던 과정은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 아니었기에, 어쩌면 사회적 관습, 다른 말로 의견(doxa)을 받아들이는 또 다른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경험론적인 입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이 이야기하는 일반적인 삶에 대한 기준을 나에게 적용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혹여라도 내가 그 일반적인 삶의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의 20대는 지금보다 더 위태하고, 불안했던 시기였다. 사람들이 일반적(경험적)으로 말하는 삶의 형태를 내 삶의 모습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리곤 거기에서 벗어나는 내 자신을 볼 때면 불안과 초조를 느꼈으니, 이 얼마나 위태롭고도 불안한 20대였단 말인가.


하지만 서른이 지난 무렵, 나는 깨달았다. 삶은 누구에게나 같은 형태로 찾아오지 않으며, 그렇기에 오히려 참된 지혜는 자기 안에서 구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다른 이에게 내 삶의 질문을 던지고, 나의 답이 아닌 다른 이의 답을 듣는 과정을 통해 삶의 진리를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질문은 나 자신에게 끝없는 질문을 던지는 과정을 통해 참된 앎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과정에서 현명한 누군가의 도움, 즉 나에게 되묻는 본질적인 질문을 통해, (그 도움이 책이 되었든 사람이 되었든 경험이 되었든) 삶의 진리에 한층 더 가까워지며 스스로 삶의 지혜를 깨달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치열한 문답의 과정을 통해, 진리와 의견을 구별해나가야 한다. 사회적으로 내려져 온 관습이나 경험적인 생각이 아닌, 내 안의 참된 지혜를 발견해나가야 한다.

때로는 내가 생각한 진리가 훗날 돌이켜보면 참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 오류를 깨닫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기나긴 인생 속에서 자기 자신에게 질문 던지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알면 행하게 되어있다고. 악행을 저지르는 이유도, 참된 앎이 없는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삶의 행복은 앎이 있는 삶이요, 곧 덕이 있는 삶이라고 이야기한다.

나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이 자제력이 없어, 쾌락과 고통에 져서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크라테스는 덕(지식)은 가르쳐질 수 있고, 인간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짐으로써 스스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산파술을 주장한다.


단순한 국어, 영어, 수학 문제의 질문을 묻는 것이 아닌,

우리에게 삶의 질문을 던지는 소크라테스야 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선생님이 아닐까.

우리의 삶에 질문이 필요한 이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회적 재난, 그 무력감 앞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