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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하늘 Nov 29. 2022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이유

Why I Want To Be A Teacher

내가 교사가 된 이유는 단순했다.


어릴 적엔 교사였던 엄마, 그리고 친척들의 영향을 받아 교사는 고리타분한 직업이라는 생각만 했었다. 그래서 난 저렇게 뻔한 직업은 하지 말아야지, 더 맘껏 넓은 세상에 뛰어들어 다양한 업을 탐색하고 나의 일을 찾아가야지 라고 생각하곤 했었다. 하지만 정말 핏줄의 영향인건지, 대학교 졸업 무렵 내가 흥미를 잃지 않고 이어온 활동은 교육 분야의 일이었고, 교사라는 직업이 누군가를 편견없이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나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누군가를 아낌없이 진심으로 사랑하고, 또 그들의 성장을 바라보는 일이 나에게는 정말 큰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직은 단순히 매달 월급을 받고 일하는 근로의 개념과는 조금 다른 영역의 일이라 느껴졌다. 심지어는 결혼을 안한다면, 평생 교단에서 아이들을 사랑하며 살아가도 그것만으로도 내 삶은 충분한 의미를 갖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교 졸업 무렵, 내가 꿈꾸던 노년의 삶의 모습도 아이들을 사랑하며 그 속에서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던 어젯밤 문득, 또 그런 생각이 찾아왔다.



내가 왜 교사가 되려 했지?



잊고 있었던 내 마음 속 깊은 목소리였다. 나는 20대 중후반 무렵, 조금 큰 고비를 넘기며 아팠던 경험이 있다. 그 당시 건강이 좋아지지 않자, 내가 꿈꾸던 모든 것들은 좌절되었고 당시의 나는 컴컴한 세상 속에 홀로 놓인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앞으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교사가 될 수 있을까? 좌절의 문턱 앞에만 서있던 내게 그 당시 잊을 수 없던 순간이 있다. 내 삶에 희망이 하나도 없던 평범한 어느 날, TV에선 하계올림픽이 한창이었다. 내 안의 좌절이 너무나도 컸던 터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그리고 세상이 돌아가는 이야기에도 큰 흥미가 없었는데, 그 날 유독 TV에서 본 운동선수들의 모습이 나에게는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악착같이 버티고 버텨 해내는 운동선수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조금씩 내 안의 절망에서 벗어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우연히 신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신문에는 마침 수영의 황제라 불리는 펠프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었고 그가 어느 정도의 훈련량과 몰입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는지에 대해 적혀있었다. 그리고 다시 힘을 얻었다. 해봐야겠다, 다시.


그렇게 돌아 돌아 다른 직업을 거쳐 어렵사리 교직으로 오고난 후, 나는 아이들을 마음껏 사랑하며 또 그리고 사랑받으며 꿈꾸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예전엔 내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일이었는데, 지금은 어느덧 나도 모르게 관성이 생겨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 평생 이 일만 해도 난 행복하겠다는 생각 뿐이었는데, 어느새 나는 교직에 발을 들인 후 또 다른 새로운 세상에 나를 투기해볼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 교직이 나에게 남겨준 또 다른 고민들 때문이다.


교육현장에 직접 발을 담그며 마주친 현실적인 문제들은 때때로 나를 무력화시켰고, 아이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만일 내 주 타겟이 1%의 우수한 학생들이었다면 다른 차원의 고민들을 이어나갔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나와 다르지 않은 보통의 아이들을 마주하며 과연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하는 방향성은 무엇일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토록 바라던 교사라는 일이었지만, 또 그만큼 나에게 많은 물음표를 던져주기도 한다. 물론 그저 지금 나의 본업에 충실하며 학교 현장에서 내가 마주하는 아이 한 명 한 명을 소중히 대하고 그들이 온전한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내 역할에 충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에서 내가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은 결국 우리 사회가 만든 관습에 의한 결과물들이고, 대물림이다.


학교 밖 세상은 정말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나 조차도 따라가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우리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것들은 과거의 답습물들이다. 그래서 다른 직업군의 사람들이 학교를, 그리고 교사를 세상 물정 모르고 편협하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한편으론 너무나 당연하다. 학교가 머물러있는, 교사가 머물러있는 시스템이 학교 밖 세상처럼 빠르게 변화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고교학점제, 자유학기제 등 제도상의 여러가지 변화들은 이미 많이 시작됐다. 그 변화는 학교 밖의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할 정도이다. 하지만 제도만 변화했을 뿐, 결국 그 제도 안에서 우리가 키워내고자 하는 본질적인 목표들은 여전히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등에 머물러있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고, 그렇게 생각하는 교사, 학부모, 사회적 분위기가 대체적이다.


물론 나의 생각이 옳다고만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현 시점에서는 제도식 교육 시스템이 가장 효율적이라 판단될 수 있지만, 학교 현장에서 실제로 만나본 아이들은 한 명 한 명 너무나도 귀한 아이들이다. 지금 중등 교육의 현 시스템 상으로는 누군가는 도태되어버리고, 자존감이 깎이고 깎여 자신의 한계를 규정짓는 일을 만든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이상의 길은 자신에게 불가능하다고 단정지어 버리는 상황이 생겨난다. 1등급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떤 학생은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고 더 큰 것을 향해 나아가도 되고, 8등급이라는 이유만으로 너는 미래가 없어, 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할 필요는 없다. 모든 학생이 가진 개별적인 특성과 장점을 북돋아, 각각의 학생들이 자신의 유능함을 믿고 세상에 나아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어쩌면 요즘 아이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계급 사회' 라는 것은 사회가 아닌 이미 학교 안에서부터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것을 가장 빨리 깨닫고 있을 수 있다. 또 좌절을 느끼며.


나는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의 존재만으로도 사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도의에 어긋난 잘못된 행동을 범하는 경우는 예외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다양한 경우의 아이들이 사랑받고 꿈꾸고 자신의 능력을 행복하게 계발하며 성장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는 지금 그런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다. 번지르르한 제도들을 만들고 만들어, 혁신교육을 하고 미래교육을 지향한다고 하지만 정작 아이들을 마주하는 교사들의 사고가, 그리고 학부모, 관리자, 교육정책가들의 본투비 근원적 사고가 변화하지 않고 있다. 우리의 시스템은 제도만 그럴싸할 뿐, 정작 내실은 변화하지 못했다. 여전히 아이들을 일렬로 세워 그들의 미래에 대한 한계를 너무나도 쉽게 규정지어버린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은 누군가는 사회에 나와 기득권이 되고, 그들은 그들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온갖 부정부패, 합법 불법 가리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켜나가며 자식들에게도 그러한 삶을 이어나갈 수 있게 만든다. 그렇게 사회 계층 간의 갭은 점점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여기에서 내 고민의 출발이 시작되었다. 나라는 작은 개인 하나가 바꿀 수 있는 것은 거의 없겠지만, 이런 시스템 속에서 그나마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일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든다. 교사로서의 삶도 나를 행복하게 하지만, 내가 누군가의 불행을 지켜본 이상 지금의 이 시스템을 답습하는 것이 나의 해결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교사가 처음 되고 싶었던 이유는, 그저 아이들을 사랑하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이 나를 통해 사랑받음을 느끼고 자신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는다면, 나는 그걸로도 행복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 개인 하나만으로 아이들이 자신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고 세상 속에 발을 내딛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 삶도 그러했듯, 아이들의 삶에도 거친 풍파가 몰려올 때가 있고, 또 누군가의 편견 속에서 자신을 깨부수면서 살아가야 하는 일이 어떤 친구에게는 정말 힘든 일이었다는 사실을 아이들 곁에서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꿈꾼다. 계속해서 꿈꾸고 성장하고 있는 또 다른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가고 싶다고. 단순히 내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서가 아닌, 아이들이 진심으로 더 나은 세상에서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주고 싶다. 더 많이 꿈꾸고, 더 행복해하며, 자신의 능력을 믿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물론 그 와중에 여러가지 좌절, 실패 등의 어려움들은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과 같은 시스템에서 모두가 한결같은 생각을 하며 똑같은 잣대로 서로를 평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 방안이 무엇이 되어야할지에 대한 고민은 아직도 찾아나가는 중이지만, 어떤 일이든 내가 앞으로 수십년간 부딪혀가며 깨달아야 할 부분들일 것 같다. 교육정책이 되었든, 교육과정의 변화든, 대입제도의 변화든, 평가의 영역이든, 그 무엇이든 말이다.


어젯 밤 마음 먹은 나의 이 다짐을 잊지 않고자 진심을 다해 이 글을 남겨본다.


훗날의 내가 이 글을 보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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