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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낀표 Feb 04. 2024

캘리포니아 할아버지와 나눈 출산과 육아에 대한 생각

관점을 바꾸니 선택지가 생겼다.

80일간의 신혼여행 - 산티아고 순례길 34일차


결혼 2년 차를 맞은 우리 부부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는 출산에 관한 것이다. 이번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가장 많이 하는 대화 주제였는데, 대부분은 우리의 수입, 아이에게 들어갈 돈, 아이가 살아갈 미래에 대한 (암울한) 예상을 거쳤고, 결론은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없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오늘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생각의 틀을 깨는 이야기를 들었다. 출산과 육아에 대한 관점이 변했고, 마음이 한 결 편해졌다. 마냥 부정적이기만 했던 출산에 대해 선택지가 하나 늘어난 것만 같았다.




산티아고 길에선 출신 국가, 나이, 하는 일 등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재밌는 점은 처음 만난 사람과도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아마도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를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을 것이라는 심리적 자유 때문이 아닐까.  오늘 만난 캘리포니아 할아버지(우리 부부는 줄여서 캘리 할아버지라고 불렀다.)와 나눈 대화가 그랬다.


캘리 할아버지를 처음 본 것은 3~4일 전쯤이었던 것 같다. 하루치 길을 다 걷고 식당의 테라스 자리에 앉아 햄버거를 베어 물고 있었다. 그때 별안간 쾌활한 말투의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왔다. 오늘 날씨가 덥다면서 간단한 인사를 하고는 곧바로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는데,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들었다. 보통은 이름이라도 먼저 알고 묻는 질문인데, 너무 갑작스럽게 들어온 탓이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고 간단한 이야기를 하는데, 영어를 잘한다며 칭찬을 하는 것이 아닌가. 당시에는 그 할아버지가 약간 무례하다고 생각해서였는지, 칭찬도 꼬아서 들렸다. ‘뭐지, 놀리는 건가?’

그래서 나도 누가 봐도 미국인인 할아버지에게 ‘영어를 잘하시는데 어디서 오셨냐’고 되물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왔다고 하셨다. 그 이후로 우리 부부는 이 할아버지를 캘리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간단한 대화를 하고 할아버지는 친구 두 분이 있는 자리로 돌아가셨는데, 여전히 의문스러운 지점이 많았다. 처음 보는데 갑자기 너무 친근하게 말을 걸고, 이름을 묻기도 전에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묻다니. 이야기를 나눠보니 분명 나쁜 의도는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왜 그런 걸까? 그 궁금증은 오늘 캘리 할아버지를 다시 만나면서 해소되었다.


이날 뿐만 아니라 며칠에 걸쳐 마주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은 숙소에 도착하기 전, 길을 한창 걷는 중에 혼자 걷고 있는 캘리 할아버지를 만났다. 우리는 다음 마을로 도착하기까지 함께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캘리 할아버지는 위성 관련 비즈니스에서 일을 하다가 은퇴를 하고 최근에는 아내분과 여행을 많이 다니는 중이었다. 산티아고는 아내분이 걷기 힘들어해서 친구네 부부와 함께 온 것이라고. 산티아고 길을 다 걷고는 파리로 넘어가 아내와 결혼기념일을 보낼 예정이라고 했다. 이런 소소한 이야기를 들으니 왠지 모르게 세웠던 경계가 많이 허물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에게 왜 그렇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는지 알게 되었다.


캘리 할아버지의 아들 중 한 명이 일본인 아내와 결혼해서 손녀가 있는데, 그 손녀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할아버지였다.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우리가 봐도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아시아쪽과 인연이 깊은 할아버지는 우연히 본 우리가 유독 반가웠던 것 같다. 특히나 한국인이 많은 프랑스길과는 다르게, 이곳 북쪽길에는 아시아인이 거의 없었으니까 더욱 반가웠을 것이다.


그렇게 자초지종을 알게 된 우리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게 걱정된다는 이야기로 넘어갔다. 우리도 저렇게 귀여운 아이를 가지고 그 아이가 또 아이를 가지는 걸 보는 과정이 좋을 것 같았지만, 현실이라는 벽이 너무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할아버지가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다 경제적 여유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아이를 제대로 키우지 못할 것을 주로 염려했다. 요즘은 유치원부터 급이 나뉜다고 하고, 초등학생이 명품 가방을 든다는 둥, 어느 아파트에 사는 지로 친구가 갈린다는 둥, 무수한 낭설 혹은 슬픈 사실 때문에 압도되었다. 아이를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다니는 ‘반듯한 사람’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때 할아버지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꺼냈다. 자신은 아이를 키울 때 자신이 생각하는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 내려하지 않았다고, 자신의 역할은 아이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에 그쳤다는 것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우리에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아이를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주체로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가 커 오면서 들은 이야기, 지금 주변에서 들리는 이야기도 이런 관점을 고착화시키는 데 한몫했다. 애들은 어떤 옷을 ‘입혀야’ 하고, 어떤 학원에 ‘보내야’ 하고, 어떤 대학에 ‘보내서’, 어떤 직업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마치 프린세스 메이커 게임을 하듯이.



캘리 할아버지는 이어서 이야기했다. 자식이 결코 마음대로 되지 않았으며, 자신이 무엇인가 기대하는 바가 있었을 때는, 그것으로 인해 자식과의 갈등이 생겼다고. 그러므로 자식을 키우는 것은 그 어떤 누군가로 만들기 위한 것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라는 존재는 한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옆에 있는 가장 관계가 깊은 존재이다. 캘리 할아버지는 자신이 부모라는 존재로 한 생명에서 자신이 가진 생각과 자신이 하는 행동으로 영향을 주고, 그 영향을 받은 아이가 어떻게 자라나는지 보는 게 무엇보다 큰 행복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나의 영향을 받은 아이가 어떻게 자라는지 보는 것



이 지점에서 나의 출산과 육아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다. 나는 아이에 대한 무한 책임이 있으며, 그 책임에 대한 대가로 아이에게 무언가를 바란 것이 아닌가. 심지어 아이를 가지기도 전부터 이런 생각에 근심하고 걱정한 것이 아닌가. 영향을 끼치고 어떻게 자라는지 바라보는 역할이라면 충분히 보람되고 행복한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캘리 할아버지와의 대화는 그 뒤로도 한참 이어졌지만 육아에 대한 생각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캘리 할아버지와 헤어진 뒤에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관점이 바뀐 것은 큰 전환점이었지만 여전히 걱정되는 부분은 많았다. 특히 사회적인 시선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아이가 원하는 방향이 소위 말하는 사회적 표준과 많이 떨어져 있으면 어쩌지? 남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의대 코스를 밟는다는데 지원이 부족해서 우리 애가 남들보다 뒤떨어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들. 

결국 바뀌어야 할 것은 남들과 비교하는 우리의 생각이며, 다른 아이들을 사회적 평균에 빗대어 평가하는 우리의 태도가 아닐까. 아이를 낳는 것은 그런 시선과 기준,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날 때 가능한 게 아닐까.


여전히 출산과 육아에 대한 고민은 남아있지만, 오늘 나누었던 대화는 분명 우리에게 하나의 길을 보여주었다. 이런 우연 또한 여행의 산물이자 산티아고 길의 선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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