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예술이 되는 순간
현대 미술은 들어봤는데, 현대 사진은 뭘 말하는 걸까?
고전 사진과 현대 사진의 차이는 뭘까?
객관적 현실을 담아내는 사진이 예술이 될 수 있을까?
<프랑스현대사진전> 소식을 보자 이런 질문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런 궁금증을 안고 성곡미술관으로 향했습니다. 1시간 남짓, 사진전을 둘러보며 궁금증에 대한 나름의 해답과 사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었습니다.
오늘은 사진전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작품과 그 사진에서 새롭게 얻은 시각을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최초의 사진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을까요?
약 200년 전, 프랑스의 조제프 니세포르 니엡스(Joseph Nicephore Niepce)가 최초의 '영구적인 그림'을 만들어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른 미술사의 도구들에 비해서 역사가 상당히 짧은 편이죠.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사진은 빠르게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초창기 사진기는 현실을 담아내는 기술적인 도구로 여겨졌습니다. 고전 사진은 어떤 사진가의 독창적 자질이나 특성을 담아내는 데 집중한 것이죠. 하지만 현대의 사진가들은 사진의 고유한 특성에 대해 고민했고, 점차 개념적인 도구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프랑스 사진가 수잔 라퐁(Suzanne Lafont, 1949 출생)은 "과거 사진이 세상을 분류하기 위한 도구였다면, 오늘날의 사진은 세계와 카메라 사이에 존재하는 새로운 관계들을 모색하기 위해 그의 작업을 수행하는 도구"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넘어, 사람(사진가)과 세계 사이의 관계를 해석하는 행위가 현대 사진의 의미가 아닐까 싶네요.
사진이 회화나 조각 같은 하나의 미술 장르로 인정되고 사진을 통해 자신의 예술적 의지를 창조하고 표현한 시기는 1970년대 말부터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1900년대 중후반부터 최근까지의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재밌는 건 2000년 대에 만들어진 작품은 디지털 작업이나 AI 기술을 활용한 사례가 많았다는 점이었어요. 사진이 더 이상 사진에만 무르는 것이 아니고, 사진 위에 새로운 의미가 덧입혀진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동시에 '이게 사진인가?'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요.
그런 의미에서 사진에 대한 관점을 바꾼, 흥미로운 작품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작가 스미스(SMITH)의 작품입니다.
이 작가는 자기 실험적인 과정에 중점을 두며, 자신의 몸을 실험의 장으로 활용한다고 합니다.
실험의 소재는 열화상 카메라, 드론, 형광 물질 등으로 다양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몸에 전자칩을 이식한 뒤 이를 활용해 사진을 찍는다고 합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열화상 카메라로 자신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이 사진들이 인상 깊었습니다. 작가의 작품 세계관과 별개로, 사진을 찍기 위한 도구가 아닌 기계로 사진을 찍었다는 점 때문이었어요.
수년간 팬데믹으로 인해 고통받을 때,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한 기기 중 하나는 아마도 열화상 카메라일 거예요. 열화상 카메라는 신체 부위별 온도를 보여주는 기기입니다. 대중적인 장소에서 감염자를 찾아내고,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격리시키는 과정의 1차적인 수단이죠.
하지만 이 사진들에선 열화상 카메라의 존재 목적인 감지와 색출이라는 기능이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대상의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한 사진기로써의 기능을 하고 있죠. 도구의 본래 목적성을 거부하고 새로운 목적을 위해 활용했다는 점 흥미로웠습니다. 한정되어 있던 대상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한다는 의미가 느껴지기도 했고요.
여기에 더해 감지와 색출을 위한 도구로 사진을 찍는다는 사실이, '판단을 지양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본다.'라는 의미로도 와닿았습니다. 그래서 사진의 이야기가 더 풍부하게 느껴졌어요.
사진이라는 결과물은 같지만, 무엇으로 그 사진을 찍었느냐에 따라 의미가 더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이 느껴지는 사진이었습니다.
라파엘라 페리아는 그라타주라는 기법을 활용합니다.
그라타주는 프린트 표면을 긁어내는 기법인데요. 첨부된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데, 현장에서 보면 사진이 판화처럼 긁혀서 결이 나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사진은 <조류시장>이라는 작품인데, 그라타주 기법을 활용해 새의 깃털 부위를 입체감 있게 묘사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밑의 사진을 봤을 때는 '사진이 아니라 그림 아닌가? 그것도 동양화!'라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자세히 보면 나무 그림 위에 그라타주 기법으로 입체감이 더해진 새 사진을 오려 붙여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위 사진에서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사진의 특성인 재생산, 복사 가능성을 없애버렸다는 점입니다.
필름으로 인화된 사진부터, 디지털화된 현재의 사진까지. 그림과 구분되는 사진의 특성은 원본 필름 혹은 파일만 있으면 복사가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라타주 기법은 프린트된 사진을 긁어 입체감을 만드는 동시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오리지널리티를 부여합니다. 사진의 특성을 파괴한 것이죠.
이걸 사진이라고 볼 수 있나? 조각이나 다른 종류의 미술 기법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사진을 베이스로 두고 특성을 추가한 것이니만큼 사진이라는 범주에서 속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동시에 사진이 가진 가능성 - 복사가 가능하다는 점이 어쩌면 사진의 한계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사진을 재가공해 그 복사 가능성을 없앤다는 것이 사진의 한계를 극복하는 행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은 여러 장의 사진이 연속적으로 보이는 형식입니다. 네, 영상을 말하는 거예요.
사실 사진전이라고 했을 때 영상을 생각하지는 못해서 약간은 놀랐습니다. 생각해 보니 영상도 결국 사진이더라고요.
무려 45분 41초 길이의 영상은 비슷한 장면을 계속해서 보여줍니다. 파동 같기도 하고, 유화 같기도 하고, 산맥이 생겼다 지워지는 것 같기도 한 영상을요.
이 작품의 이름 <바다>로, 우리가 보는 수평적인 바다의 모습을 수직적으로 내려다본 것인데요. 영상에서는 이런 맥락을 전혀 보여주지 않습니다. 새로운 관점으로 낯설게 보이는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보일 뿐이죠.
저는 바다라는 것을 알고 작품을 봤음에도 파도처럼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비슷하지만 똑같지 않은 파도와 그 흔적을 반복되는 와중에 전혀 다른 이미지들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파동, 유화, 산맥 같은 것들이요.
작가 소개에 이런 말이 적혀 있습니다. "그는 영상을 서사에서 떼어내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데, 이러한 방식은 관객이 작품을 순간적으로 포착하거나 시간을 두고 관조적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독립된 어두운 공간, 의자에 앉아 십 수분을 바라봤습니다. 과묵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움직임에서 제가 이해한 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맥락을 떼어내니 그 이미지는 무엇이든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진들을 보면서, 또 해설을 보고 들으면서 든 생각이 있습니다. 감상은 개인적이라는 것입니다. 작가의 의도를 알게 되면서 작품이 더 풍성해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지만, 제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시각으로 바라볼 때 (그것이 작가가 의도한 것이 아니더라도) 더 깊은 영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번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생각과 감상이라는 점을 말씀드리며, <프랑스현대사진전>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얻은 영감을 정리해 보면 세 가지가 될 것 같습니다.
같은 인물 사진이지만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함으로써 전혀 다른 의미를 전달한 작품이 있었죠. 감지와 색출이라는 목적이 아니라, 대상의 모습을 바라보는 새로운 목적으로 사용되면서 사진의 의미가 확장되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우리의 일상이든, 마케팅과 같은 업무이든 결과물의 변주가 아닌, 과정과 도구의 변주를 통해 의미를 확장시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사진이라는 복사 가능한 대상에 2차 가공을 하면서 오리지널리티를 창조해 낸 작품처럼요. 장점처럼 보였던 것이 오히려 한계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것을 벗어나면 어떤 일이 생길까,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프레임이라고도 하죠. 어떤 대상이나 현상을 바라볼 때, 기존에 가지고 있는 인식/편견으로 인해 한정된 방식으로만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는 의도적으로 맥락에서 대상을 분리해 처음부터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혀 다른 길이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에게 인상 깊었던 작품들을 정리하다 보니, 공통적으로 '파괴'라는 키워드가 보였습니다. 아마도 현대 미술은 기존의 고정관념을 부수고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혼자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번 사진전에는 제가 오늘 소개한 것 외에도 훨씬 다양한 작품들이 있습니다. 아마 저에게 영감을 준 것과 다른 분들에게 영감을 주는 작품이 다를 것 같은데요. 기회가 되신다면 꼭 한 번 방문해서 영감을 느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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