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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P와 스티브 잡스

Connecting the dots

by 느낀표

학교를 다니든 회사를 다니든 자영업을 하든 필수로 참여해야 하는 교육들이 있습니다.

전 도무지 그런 교육에는 흥미가 없어서요. 다른 책을 들고 가든가 노트북을 켜놓고 다른 일을 하는 경우 많았던 것 같아요. 시간 아깝다는 핑계로요. 저만 그런 거 아니죠..?


그런데 얼마 전에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마음에 꽂히는 댓글을 하나 발견했어요.

박진영.png


가수이자 JYP엔터테인먼트의 수장이기도 한 박진영 씨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물론 익명의 댓글이고, 사실인지 아닌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걸 감안해야겠죠.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가정 하에, 생각이 많아지는 일화였어요.


예비군 교육을 귀담아듣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솔직히 이야기하면, 일단 저는 아닙니다.

애써 안 들으려는 건 아니었고요. 듣다 보면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니, 다른 생각에 빠지거나 꾸벅꾸벅 졸기도 했죠. 직장 생활도 고달픈데, 예비군 교육 시간은 꿀 같은 휴식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데 유명한 가수이자 성공한 사업가인 박진영이 예비군 교육을 필기까지 하면서 경청했다?

피곤할 텐데 잠이나 자지, 혹은 뒷자리에 앉아서 사업 구상이든 뭐든 돈 되는 생각을 하지 시간 아깝게 왜 그런 걸 열심히 들었을까요?


그런 생각을 할 때 스티브 잡스가 떠올랐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대학교를 자퇴했죠. 하지만 몇몇 과목을 청강 형식으로 들었다고 해요. 일단 자퇴를 했으니 필수 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고, 그러다 캘리그래피 수업을 들었다고 해요. 여기서 세리프와 산세리프 글꼴, 글자 조합 사이의 간격 조절, 훌륭한 타이포그래피를 만드는 요소들에 대해 배웠다고 하죠.


그냥 호기심에 들었던 수업이었고 장난 삼아 들었을 수도 있는데, 스티브 잡스는 이 수업을 꽤나 열성적으로 들었나 봐요. 이게 나중에 매킨토시 컴퓨터 디자인 철학에 큰 영향을 줬다고 합니다.


스티브 잡스의 유명한 연설 영상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요.


Monosnap Steve Jobs' 2005 Stanford Commencement Address - YouTube 2025-03-30 22-05-44.png 출처: Stanford 유튜브 채널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앞을 내다보며 점들을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뒤를 돌아볼 때만 점들이 연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러니 앞으로 나아갈 때는 점들이 언젠가는 연결될 거라고 믿어야 합니다. 당신의 직감이든, 운명이든, 인생이든, 업(karma)이든 무엇이든 간에 무언가를 믿어야 합니다. 이 믿음은 한 번도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고,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 스티브 잡스, 스탠퍼드 대학교 연설 중

유튜브 영상



점을 연결하는 것.

지나온 경험들 하나하나가 선으로 연결되고, 그게 어떤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겠죠.

그런데, 과거에 찍은 그 점들이 희미하다면 어떨까요? 혹은 희미한 점조차 찍혀있지 않다면요.


저는 앞을 내다보며 점들을 연결하려 했던 것 같아요. 무엇을 해야겠다는 목표가 있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지금 A와 B를 해야 한다는 식이었죠. 그럼 그 외에 것에는 관심을 주지 않아요.

하지만 어쩌다 보니 제 목표를 이루는 데 상관없는 C를 하는 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죠. 돈을 벌기 위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든지요. 근데 그건 그저 돈벌이 일 뿐이고, 편의점 일 자체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어요. 점이 찍히지 않은 거죠.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왕 하는 거, 여력도 있었는데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볼 걸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재고 관리는 어떻게 되는지, 손님들은 많이 찾는 과자는 무엇인지, 어떤 날에 우유가 많이 팔리는지 같은 것들이요. 그랬다면 점이 찍혔을 테고, 그 점은 어떻게든 이어질 수 있었겠죠?


물론 살면서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열과 성을 다 할 수 없을 거예요. 하지만 이왕 무엇인가를 하게 되었다면, 거기서 무엇이든 배워오고 남기려는 자세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있죠.


박진영의 예비군 일화(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는 그래서 저에게 더 와닿았던 것 같아요.

저도 예비군 교육 때 충분히 열심히 들을 수 있었거든요. 그렇게 피곤하지도 않았고, 달리 할 것도 없었고요. 근데도 별 필요 없겠지 하는 마음으로 다른 생각에 빠졌던 것 같아요.




유튜브 댓글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한 며칠 뒤, 회사에서 전 직원 필참인 교육이 있었어요. AI 툴 활용법에 관한 교육이었죠.

저는 평소에 AI툴에 관심도 많고 충분히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에 교육 자체에 큰 흥미가 생기진 않았어요. 그래서 노트북을 들고 교육장으로 들어갔죠. 뒷자리에 앉아 밀린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요.


근데 막상 자리를 잡고 앉아서 메일함을 여는데 박진영과 스티브 잡스가 떠오르는 거예요. 지금은 일을 한다고 해봤자 얼마나 집중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이왕 듣는 거 어떤 점이든 찍어보자는 결심이 섰죠. 결국 노트북을 덮고 교육에 집중했습니다.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도저도 아닌 시간을 보낼 바에야, 지금 하는 것에 최선을 다 해보자.' 이런 태도를 가져볼까 해요.

이런 태도가 앞으로 어떤 점들을 찍게 할까요. 그 점들은 또 어떤 그림을 만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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