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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vannah Jan 03. 2020

성폭행까지는 아니지만

나의 성희롱 이야기


8살, 담임 선생님은 조그마한 종을 세 번 치셨다. 알록달록 색깔의 매트 위에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선생님이 나를 불러 아이들을 마주 보게 세우셨다. 그리고 선생님은 내 치마를 걷어올렸다.

“치마 안에는 이렇게 속바지를 입어야 하는 거예요.”

여학생들에게 조신함을 강조하기 위해, 조심성을 깨우치기 위해, 나는 희생되었다. 선생님이 특별히 일러두셨던 만큼 나에게 속바지를 입는 일은 매우 중요했다. 그 시절 나는 아이스께끼를 당하기 일쑤였다. 창피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보여도 괜찮을만한 팬티 한 겹을 더 입어야 했다.


엄마는 지금도 내가 치마를 입고 나갈 땐 속바지를 입었는지 재차 물어보시곤 한다. 나는 여전히 아이스께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조금 더 성숙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촬영한 내 팬티 사진이 세상에 돌아다니는 것을 막으려면 나는 오늘까지도 치마 속을 신경 써야만 한다.



9살, 11월 즈음이었을까? 가을이 가고 겨울이 다가오는 계절의 하굣길이었다. 나는 흰색 긴팔 티셔츠와 연분홍색에 왼쪽 가슴에는 미니마우스가 작게 그려진 패딩조끼를 입고 있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사거리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나와 내 친구를 불러 세웠다. "패딩이 아주 빵빵하구나" 하면서 패딩 조끼 위로 내 가슴을 조물조물 만졌다. 이후로 얼마간 나는 우리 집 앞을 나설 때마다 그 할아버지를 마주칠까 두려워 아파트 입구를 벗어날 때까지 뛰었다.



19살, 나는 나름 명문고등학교에 나왔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끝반이라 3학년들과 같은 층을 사용했다. 우리 층에는 여자 화장실이 세 칸이었다. 9월 모의고사가 끝날 때쯤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고3 언니가 세 칸 중 중간 칸에서 볼일을 보고 있는데 위에서 누군가 보고 있는 것 같아 고개를 들었더니 누군가가 확 숨었다는 것이다. 그 언니는 옆 칸에서 사람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고 알고 보니 같은 반 남학생이었다. 학교에서는 고3인 남학생을 퇴학시킬 수 없었고 그는 무사히 학교를 졸업했다.



25살, 남들이 인생 여행지라는 체코에 혼자 놀러 갔다. 지인들이 하도 추천하기에 프라하에만 6박 7일을 있었다. 한 5일 차쯤 됐을까? 프라하성도 지겹게 갔고 까를교도 감흥이 떨어지던 찰나에 한인민박 사장님이 비셰흐라드라는 곳을 추천해주셨다. 프라하 시내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곳이었는데 프라하 시내 전경이 잘 보이는 곳이라 하여 그곳으로 향했다.

비셰흐라드 풍경

날씨도 좋겠다, 공원도 한적하여 관광지에서 한 발 물러나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시간도 아직 민박집에 돌아가기엔 일러서 산책할 겸 지하철을 타지 않고 블타바 강을 따라 시내로 올라가기로 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뒤에서 누군가 엉덩이를 세게 움켜쥐었다. 너무 놀라 뒤로 돌았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 오른편에는 서양인 부부가 나와 함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고 2m 앞쯤에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 셋이 킬킬거리며 가던 길을 가고 있었다. 셋 중 키가 제일 작았던 체코 소년은 의기양양하게 걸어가고 있었으며 나머지 둘은 ‘미친놈ㅋㅋ’ 이런 표정으로 그 소년을 보며 웃었다. 나는 멍하니 그들이 가는 길을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그 작은 소년이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볼 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주었다. 그는 다시 씨익 웃더니 똑같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초록불로 신호가 바뀌어 앞을 걸어가는데 눈물이 주룩주룩 날 것만 같았다.

내가 여자라서 당한 걸까 아니면 동양인이라서 당한 걸까?

어느 쪽이든 수치심이 그득그득 올라왔고 의심되는 이유가 두 가지라는 것에도 화가 났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내가 그 소년에게 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별일 아니라는 듯 상처 받지 않는 것이었다.


민박집으로 이동하면서 연락 중이던 동생에게 이 사실을 실시간으로 전달했다. 그 동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또 레깅스만 입고 있었던 것 아니에요?”

성희롱을 당한 원인은 그 소년이 아닌 내가 되어있었다. 당시에 나는 레깅스 위에 허벅지는 족히 가릴 수 있는 사각거리는 도톰한 면 남방을 허리에 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잘 살고 있다. 운 좋게도 나는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정도의 성범죄를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불안하다. 하루 건너 올라오는 성범죄 뉴스의 주인공들처럼, 누군가 나를 쫓아 내 자취방에 들어오려고 할까 봐, 어느 날 갑자기 모르는 사람에게 질질 끌려가 강간을 당할까 봐 두렵다.


내 친구들도 일상생활이 불가할 수준의 성범죄를 당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중학생 때 친구 중 한 명은 차에서 길을 묻던 아저씨가 자위 중인걸 봤다.


다른 한 명은 언니의 남자 친구가 소파에 자고 있는 친구의 가슴을 만졌다.


고등학생 때 다리가 길고 예뻤던 친구는 동급생들에게 "저 다리에 비비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인 친구는 교감한테 엘리베이터에서 “00 씨는 처녀 아닐 것 같은데, 골반을 보면 딱 알아”라는 소리를 들었다.


회사 동기 중 한 명은 부장이 “방금 계단으로 올라간 여사원 누구야? 다리가 아주 튼실해. 운동한 허벅지네”라는 소릴 했다.


사촌 언니는 버스 안쪽 자리에서 내릴 때 언니의 다리 사이에 손을 집어넣는 남자를 만났다.


나는 앞으로도 운 좋기를 바라야 한다. 5살 때부터 지금까지 내 손에는 무기가 없다. 그러니 뒤에 따라오는 모든 남성을 피해 빠른 걸음을 걸어야만 하고, 자취방 현관문을 닫을 땐 누가 쫓아오지 않는지 확인해야 한다. 계단 뒤에 남자가 있다면 가방으로 다리를 가려야만 하고, 화장실에서는 혹시 모를 몰카를 찾아 두리번거려야만 한다. 그래야만 나는 잘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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