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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Jun 12. 2021

다 가진 여자

얼마 전부터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게 되었다. 

부모님이 아시게 되면 등짝 스매싱 각이었기에 입 조심을 하던 중, 이를 알게 된 회사 동료 한 명이 사진을 보여달라고 했다. 사진과 동영상을 보던 그녀는 눈을 빛내며 '너무 귀엽다, 사랑스럽다, 만지고 싶다'를 연발했다. 


손으로 핸드폰 화면을 쓰다듬으며 이뻐 어쩔 줄 몰라하던 그녀를 보며 문득, 누군가가 내 반려동물을 이렇게 예뻐해 주다니 참 고마운 일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으로 그리고 영상으로 자신의 아이의 모습, 반려동물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공유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한참 고양이 사진을 들여다보던 회사 동료는, 자신의 어린 딸이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하루가 멀다 하고 조른다며 한숨을 쉬었다. 한때 임보(임시보호)를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던 그녀에게 의아해서 물었다.


"이렇게 고양이를 예뻐하시고 딸도 너무 원하는데, 왜 안 키우세요?"

"제가 털 알레르기가 있어서요. 5분만 같이 있어도 눈물 콧물 난리가 나고 코가 부어올라요. 진지하게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더라고요."


아... 그러시구나.. 안타까워하는 나에게 그녀는 고개를 들고 부럽다는 듯이 말했다.


"고양이도 키울 수 있고, 정말 부러워요. 다 가진 여자네요"


.......... 응?????


내 머리는 방금 들을 말을 소화해내느라 잠시 멈추었다.

그녀는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며 똑 부러지는 성격에 업무 능력도 좋아 회사에서 인정받는 사람이다. 요즘 가장 부러운 '집 있는 사람'이며 시부모님도 좋아서 시월드의 괴로움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아쉬울 것도 부러울 것도 없어 보이는 그녀에게 '다 가진 여자'라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오묘했다. 단지 고양이를 키울 수 있다는 작은 이유로 말이다.


그녀에게는 단지 지나가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의 감정을 담아 던진 한마디가 퇴근 시간 즈음엔 그녀의 머릿속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의 한마디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나에게 남아 작은 뿌듯함과 기분 좋은 감정을 안겨주고 있다. 아마도 나의 고양이를 볼 때마다 그녀의 말과 지금의 감정이 생각나겠지.



만약 그녀가 '잘 생각해본 거예요? 동물을 키우는 게 상당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일인데 충분히 고민한 거예요?' 혹은 '빨리 아이를 가져야 할 시기에 고양이요???'라는 등 '현실적인 조언'을 하려 했다면 내 기분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내가 애써 묻어두려는 고민을 끄집어내어 콕 찌르는 말에 기분이 좋을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고맙게도 조언 대신 공감과 부러움을 표현했다. 그러한 반응을 보여준 그녀에게 오히려 고마움을 느꼈다.


좋은 말이든 안 좋은 말이든, 내가 순간 내뱉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 깊은 여운을 남길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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