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밑줄 07 - 서머셋 몸의 <달과 6펜스>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달'을 쫒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6펜스는 우리나라 돈으로 치자면 '100원'같은 개념이고, 달은 현실보다는 조금 떨어져 있는 어떠한 꿈, 이상을 의미한다. 현실과 이상의 세계가 공존할 수 없을 때, 이상을 좇게 되는 사람의 이야기.
인생을 '특별하게' 살고 싶거나, '예술'에 대한 어느 정도 환상이 있거나, 혹은 '예술만을 추구하는' 길을 고려해 본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책이다. 내가 느끼기에 이 책의 가장 큰 질문은 이것이었다: 예술을 추구하는 삶 (혹은, 꼭 예술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단 한 가지 꿈을 추구하는 삶)은 그 어떤 것의 희생보다 가치 있는가?
정말 간추려서 말하자면 (사실 책을 읽고 바로 써 내려간 리뷰가 있었는데 너무 길어져서 버려야 했다) 이 책의 줄거리는 이렇다: "중산층의 평균적인 가정"에서 아버지 역할을 맡은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주인공은 어느 날 가정을 떠난다. 다른 여자와 바람피우며 떠났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실제로 그게 아니었고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 혹은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안 되는 '악마에게라도 사로잡혀있는 듯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가정을 떠나 파리의 작고 다 허물어가는 아파트에서 그림을 그린다 (아내와 자식에게는 전혀 미련이 없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그림을 팔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남이 자신의 그림을 인정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와중 주인공은 병에 걸리고 자신의 그림을 유일하게 알아주는 사람, 스트로브라는 사람이 살려준다. 스트로브는 아내가 싫다는데도 주인공을 자신의 집에 데려와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아내와 병간호를 해준다. 그리고 스트릭랜드는 스트로브의 아내와 눈이 맞고 그 아내와 같이 스트로브의 집과 스튜디오를 차지해버리고 만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스트로브의 아내는 자살하고, 스트릭랜드는 타히티로 가버린다. 거기서 그림을 그리다 아타라는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그림을 계속 그리고, 애를 낳고, 결국 병에 걸려 죽고 만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자신의 집 벽에 그린 그림들이었는데 그가 그 작품을 마무리 하자마자 다 태워버렸다고 나와있다. 그가 죽은 뒤에야 세상은 그를 천재라고 부르며 그의 작품들을 대단하다고 여긴다.
이렇게 줄거리만을 얘기하면 정말 단순해 보이는 작품일 테지만, 그 어느 책이 그렇듯 나에게는 '얼마나'라는 것이 중요했다. 스트릭랜드가 "얼마나" 죄책감 없이 떠났는지, 스트로브가 "얼마나" 자신의 부인을 사랑했는지 등등. 작가들이 서론을 길게 쓰면 보통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있는 메시지가 있는데 소머셋은 이 작업을 굉장히 잘했다.
스토리를 시작하며 작가는 스트릭트랜드의 "중산층의 평균적인 가정"이 얼마나 지극히 평균적이었고, 평범했는지 열심히 설명한다. "스트릭랜드 가족은 중산층의 평균적인 가정이었다. 문학계의 이류 명사들을 사귀고 싶은, 결코 해롭다 할 수 없는 갈망을 지닌 명랑하고 손님 접대를 잘하는 여인, 자비로운 섭리가 마련해 준 삶의 환경을 받아들여 제 의무를 다하는 다소 따분한 남자, 그리고 잘생기고 건강한 두 아이들. 이보다 더 평범한 가정이 있을까. 내가 보기에 그들은 호기심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 만한 것은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런 글을 읽으면 그 누구나 답답해하기 마련이다. 그 어느 누구도 "지극히 평범한" 인생을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로 그 어느 누구도 "지극히 평범한" 인생을 살고 있지 않다.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 인생을 사는데 개개인의 특별함이 있기 때문이다. 예술을 추구하지 않아도, 유명해지지 않아도 우리는 우리만의 스토리가 이다. 나는 그 어떤 사람도 다른 이에게 "평범하다"라고 정의하는 그 자체가 굉장히 거만한 태도라고 생각하는데, 자신이 "평범하다"라고 부르는 그 사람의 내면, 그리고 그 사람이 살아온 날들을 알게 된다면 그 어느 누구도 타인을 "평범하다"라고 부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개개인이 다 특별하고, 그런 면에서 모두가 평범하다. 적어도 나의 개인적인 시선에서는, 우리는 어느 누구보다 '더' 특별하지도 않고, 누군가 나보다 '더' 평범하지도 않다.
어쨌든 보통 "평범함"의 잣대가 책에 나오면 그 틀을 깨고 나오는 누군가 있기 마련이다. 스트릭랜드는 그 "평범한" 집에서 한순간에 나오는데, 그것만으로도 많은 독자들에게 어느 정도의 해방감을 선사했을 거라 생각한다. 실제로 그를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스트릭랜드의 모든 행동에서 뿜어 나오는 것이 바로 "자유로움"인데, 보통 사람들은 '자유로움'을 지극히 동경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형성된 가족과의 관계, 그리고 자라면서 사회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범주가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틀'이라고 여길 때가 많다. 사실 그런 관계나 '법'은 사회적으로 모두의 (그리고 궁금적으로 본인의) 이익 (건강과 경제적 안정)을 위한 것인데도 그렇다.
관계적인 틀, 사회적인 틀 안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어느 사람이 더 "특별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스트릭랜드가 무책임한 인간임은 줄거리에 틀림없이 나오지만 (자신이 세상에 내놓은 아이들인데 그 아이들까지 버리며 떠났으니, 그리고 자신을 살려준 사람의 와이프까지 취한 뒤 그녀가 우울해도 그 어떤 도움과 케어도 주지 않고, 결국 그녀가 자살을 하게까지 내버려 두었으니) 이 책은 교묘하게 그 무책임함을 무한한 자유로움 (타인을 신경 써주는 것에 대한 자유로움 + 타인의 시선에서부터의 자유로움)과 엮으며 그 무한한, 모두가 꿈꾸는 듯한 자유로움 아래에 무책임함은 어쩔 수 없는 부산물(byproduct)처럼 보여준다.
스트로브는 스트릭트랜드 외에 가장 이 책의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인물이다. 주인공과 이름도 비슷한 그를 소머셋이 왜 썼는지, 왜 등장시켰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인물로 비춰지는 그가 독자에게 어떤 감정을 던지는 역할을 하는지 보는 게 중요한데, 그를 통해 소머셋 몸이 이 책을 쓰며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드러난다.
일단 소머셋은 스트로브를 재능이 없는 "엉터리 화가"로 그리지만, 그에게 딱 한 가지 재능을 준다. 그 재능은 바로 예술을 알아보는 눈이다. 이렇게 본인은 노력해도 움켜쥐지 못하는 능력을 쥐어줌으로써 스트로브의 예술에 대한 고찰은 거의 절대적으로 그려진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는 한 어느 정도 이 작가가 얘기하는 말을 믿으며 따라가야 하는데, 이 작가는 스트로브를 이렇게 묘사한다:
"그는 엉터리 화가이면서도 미술에 대한 감각만은 아주 섬세해서 그와 함께 화랑에 가는 일은 큰 기쁨이었다. 미술에 대한 그의 열정은 진지했고 비평은 날카로웠다. 관심의 폭도 넓었다. 옛 대가들의 작품도 제대로 볼 줄 알았고 현대 화가들에 대해서도 공감할 줄 알았다. 재능 있는 작품을 판별할 줄 알았고 칭찬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내가 만나 본 사람 중에 그만큼 정확한 안목을 가진 사람도 없었던 듯하다. 게다가 그만큼 교육을 많이 받은 화가도 드물었다. 여느 화가들과 달리 그는 다른 예술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많았고, 특히 음악과 문학에 대한 조예는 그림에 대한 그의 감식안을 깊고 다양하게 만들어 주었다."
사실 이렇게 "미술에 대한 감각이" 탁월한 사람이 곁에 있는 자체가 신기할 정도로 엄청난 묘사로 스트로브의 예술적 감각에 대해 독자들에게 믿고 따르게 만든다. 이렇게 세팅을 지어준 다음 소머셋은 스트로브를 통해 "예술" 그리고 "위대한 예술"에 엄청난 힘을 실어준다.
스트로브는 스트릭랜드와 예술에 대해 첫 등장 씬에 이런 말을 한다.
"그 사람 (스트릭랜드) 정말 천재일세. 확실해. 지금부터 백 년 후에 말일세. 사람들이 자네나 나를 조금이라도 기억해 준다면 그건 전적으로 찰스 스트릭랜드와 알고 지낸 덕분일 걸세."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름다움이 해변가 조약돌처럼 그냥 놓여 있다고 생각해요? 무심한 행인이 아무 생각 없이 주워 갈 수 있도록? 아름다움이란 예술가가 온갖 영혼의 고통을 겪어 가면서 이 세상의 혼돈에서 만들어 내는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오. 그리고 예술가가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 냈다고 해서 아무나 그것을 알아보는 것도 아냐. 그것을 알아보자면 예술가가 겪은 과정을 똑같이 겪어 보아야 해요. 예술가가 들려주는 건 하나의 멜로디인데, 우리가 그것을 우리 가슴속에서 다시 들을 수 있으려면 지식과 감수성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소머셋이 스트로브의 예술적 안목, 그리고 예술의 고귀함, 숭고함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한다면, 그의 다른 면을 독자한테 꽤나 디테일하게 소개를 한다.
스트로브는 외모가 출중하지 않아 자신과 결혼을 해 준 와이프를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하며, 인간관계를 꽤나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와 그의 아내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훈훈해지는 그림과도 같은 한 쌍이었으며, 아내를 향한 그의 순박한 사랑에는 은은한 아취마저 있었다. 우습긴 했지만 그의 진심 어린 열정은 동정을 불러일으킬 만했다. 나는 그의 아내가 그에게 어떤 감정을 느낄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퍽 다정하게 그를 대하는 것을 보고 기뻤다. 유머 감각이 있는 여자였다면 진짜 우상이라도 모시듯 남편이 자기를 떠받들어 주는 것이 우습게 여겨졌을 것이다. 그녀도 웃긴 했지만, 그래도 기쁘고 감동스럽게 여겨졌던 모양이다. 더크는 그녀의 영원한 애인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비록 나이가 들어 지금의 팽팽한 선과 아름다운 용모를 잃어버린다 해도 그에게는 여전히 같은 여자로 보일 것이다. 또한 그녀는 변함없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인일 것이다. 늘 질서 정연한 그들의 생활에는 기분 좋은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었다."
스트로브는 친구들에게 자주 무시당하고, 스트릭랜드에게 조롱당하지만, 자신이 꾸민 이 소박한 가정 안에서 만큼은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작가는 이렇게 스트로브에게 그려준 거대한 영역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며 그 안에서, 예술이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그 어떤 것 보다 우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틀을 형성한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다시 읽으면, 소머셋이 다 짜놓은 거대한 체스판 위에 독자는 말 하나하나가 옮겨지 듯 그의 메시지에 설득된 것이 보인다.
스트로브는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스트릭랜드의 고약한 성격까지 어느 정도 포용해 주며, 스트릭랜드가 아플 때 자신의 와이프까지 설득하며 집에 들여서 보살펴주려고 한다.
여기서 소머셋은 또 한 번 스트로브를 통해 '천재'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다:
"그 사람은 천재라니까. 당신은 설마 나를 천재로 생각지는 않겠지. 나도 내가 천재였으면 좋겠소. 천재를 볼 줄은 알지. 천재를 정말 진심으로 존경해요. 세상에서 천배보다 굉장한 건 없으니까. 천재들에게야 그게 큰 짐이 되겠지. 천재들에게는 너그럽게 대해주고 참을성 있게 대해 주어야 해요." (여기서 마지막 부분은 거의 소머셋이 독자에게 던지는 메시지와 같다. 천재들보다 위대한 것은 없으니, 천재들이 사회적으로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보는 시점에서 어설픈 실수는 잘못을 해도 넘어주어 가야 한다는 것. 왜? 그들은 천재이기 때문에.)
일단 이런 천재가 죽게 놔두면 안 된다는 생각과, 다른 사람이 곤경에 처하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합해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와이프와) 스트릭랜드를 병간호해 준다.
그러는 와중에 스트릭랜드가 자신의 와이프와 눈이 맞고 (대화가 거의 없던 그들은 정말 그냥 "눈이 맞는" 정도의, 성욕 정도의 끌림에 빠진다) 스트로브의 유일한 행복이었던 와이프가 스트릭랜드와 함께할 거라고 한다. 스트릭랜드가 있던 곳으로 내쫓으면 와이프까지 굶어 죽을 것 같아 자신의 집과 작업실을 그들이 살 수 있도록 내준다. 그리고 혹시나 자신의 와이프에게 무슨 일이 있을까 봐 주위를 돈다. 그의 와이프는 자살을 하게 되고, 그는 그제야 그 반경을 떠나려 한다.
여기서부터 소머셋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스트로브의 와이프의 "배신이라는 마지막 일격"이 "그로부터 만사를 쾌활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주었던 회복력을 앗아 가고"만 상태에서, 스트로브가 갑자기 마지막으로 스트릭랜드를 만난 이야기를 한다. 그는 자신의 작업실에 어느 날 들어가게 되고, 스트릭랜드가 자신의 와이프를 누드로 그린 그림을 발견하게 된다. "슬픔과 질투와 분노가" 그를 사로잡았고, 그는 "쉰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는 그 그림을 찢을 도구를 찾다 그림 주걱을 발견하고 그림을 파괴하려다 멈췄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그림을 봤네. 진짜 예술 작품 말일세. 나는 감히 손댈 수가 없었네. 겁이 났어." 그가 덧붙였다. "정말 대단한, 정말 굉장한 그림이었네. 경외심마저 느껴질 정도였어. 하마터면 무서운 범죄를 저지를 뻔했네. 나는 그림을 좀 더 잘 보려고 몸을 옮겼네. 그때 뭔가가 발에 걸려서 보니 내가 떨어뜨린 그림 주걱이었네. 소름이 쫙 끼치더군."
그는 자신이 스트릭랜드로부터 그 어떤 고통을 받았던, 마치 이 예술 앞에 모든 것이 용서되듯이 말한다.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자,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만드는 소박한 가정만 있다면 세상 무엇도 유쾌하고 쾌활하게 대할 수 있던 스트로브. 스트릭랜드는 스트로브에게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뺏어버린 것뿐만 아니라 다시는 볼 수 없게 만든 사람이었다 (여자가 자살함으로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으니). 그런데도 스트로브는 스트릭랜드에게 "같이 네덜란드에 가자고" 말했다고 한다. 자신의 고향집에 가면 그가 머물만한 여유는 있을 테고, "가난하고 소박한 사람들을 사귀면 그 사람 영혼에도 큰 득이 될 거라는" 생각까지 해주며.
이 책은 재밌게 쓰였으나, 읽는 내내 여자들에 대한 일반화가 넘쳐나서 걱정이 되었다. 그게 "여자들이란 이렇다"라는 작가의 생각을 마치 너무 당연한다는 듯이 쓰여있어서 이것을 무의식적으로 접하는 젊은 독자들은 여자들에 대한 생각을 1) 이런 식으로 하게 되거나, 2) 이미 가지고 있던 생각을 확인받는 듯한 느낌을 가질까 봐 걱정되었다.
내 기준 필요 없이 굳이 "여자"를 썼다고 느꼈던 부분 (이 부분을 "사람"이라고 대체만 했어도 괜찮았을 듯하다):
"그녀는 자리에 앉았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와는 관계없는 문제를 두고 이런저런 말을 한다는 게 여간 어색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나는 여자들이 빠지기 쉬운 잘못, 그러니까 들어주는 사람만 있으면 누구 하고나 자신의 사생활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8장)
내가 느리게, 한 자 한 자 읽는 편이라 그럴 수도 있는데 - 여자들이 빠지기 쉬운 잘못이라고 굳이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여자든 남자든 자신의 사생활을 얘기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다. 그저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잘못" 혹은 "인간이 빠지기 쉬운 잘못"이라고 썼으면 훨씬 낫지 않았나 싶다.
"여자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가는 자리에서 아름답게 행동하고 싶어하는 강렬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욕망을 볼 때마다 나는 좀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대로 여자들은 그 멋진 장면을 보여 줄 기회를 갖지 못할까 봐 남자의 장수를 오히려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 같기도 하다." 여기선 진심으로 잉? 이랬는데, 일단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게 조금 웃겼고, 이걸 또 이렇게 보편적인 형태로 써놓은 게 의아했다. 재밌게 읽히는 글에 자주 써지는 치트키는 그 어떤 것이든 확고하게 보편화시키며 쓰는 건데, 이걸 고전이 아닌 형태에서, 한 시대에서만 읽히는 글이었다면 괜찮을 수도 있지만 이게 고전으로 올라온 마당에 이렇게 여성들에 대해 이상한 상상까지 마치 다 아는 것처럼 보편화 시켜버리는 게 불편했다. 아니, 남자든 여자든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자리에서 추해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나? 하지만 그걸 기회삼아 꼭 아름답게 행동하고 싶어서 그 사람보다 더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적어도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사랑을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남자란 거의 없다. 있다 해도 그런 남자들은 별 재미가 없다. 사랑을 지상의 관심사로 삼는 여자들도 그런 남자를 경멸한다. 하기야 그런 남자들 덕분에 여자들은 기분이 우쭐해지고 자극을 받기도 하지만, 그들이 좀 덜 떨어진 인간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갖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짧은 기간에도 남자는 다른 일들을 하며 그것들에 신경을 쓴다. 직업을 갖고 먹고 살아야 하니 응당 그에도 정신을 빼앗긴다. 스포츠에 빠지기도 하고 예술에 관심을 갖기도 한다. 남자들은 대체로 여러 방면의 활동을 하며, 한 가지 활동을 할 때는 다른 일들을 일시적으로 미루어 둔다. 그때그때 하는 일에 정신을 집중할 수가 있어, 한 가지 일이 다른 일을 침범하면 못마땅해한다. 남녀가 똑같이 사랑에 빠져 있다 하더라도 다른 점은, 여자가 하루 온종일 사랑할 수 있는 데 비해 남자는 이따금씩밖에 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이건 뭐 당연히 모두가 2023년에 적용될 수 없는 구시대적인 발상으로 여기겠지만, 그래도 이 책은 1919년에 출판되었었고 여자들이 꽤나 일자리를 가지고 돈을 벌기 시작할 때였다. 어쨌든 말이 안 되는 보편화이다. 여자들이 남자보다 더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만을 유일한 관심사로 여긴다는 건 성별로 따져지는 게 아니라, 1) 여자도 남자처럼 무언가를 해야 하거나 하고 있는 지금 시대에는 말이 안 되는 것이고, 2) 심지어 그 시대에도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하루 종일 여자를 생각하는 모습들이 많다. 내가 느끼기에 이건 그저 누가 더 상대를 좋아하느냐이다. 사랑에 빠져서 하루 종일 그 여자밖에 생각하는 남자들도 있고, 그러지 않는 남자들도 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
화자가 여자에 대해 말한 부분이 더 걱정되었지만 (워낙 사실을 기반화 하는 일반화처럼 써져 있어서), 스트릭랜드가 여자에 대해 하는 말들도 걱정이 되었다. 스트릭랜드는 워낙 이상한 캐릭터로 나와서 이것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필터를 걸러서 들을 수 있겠지만, 스트릭랜드를 동경하고 그처럼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여자에 대한 사상까지 그대로 받아들일 것 같아서 이 책이 고전이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이 (특히 성장기에 읽힌다면) 좀 걱정되었다.
"여자들이라 기껏 생각한다는 게 그런 것뿐이야. 애정, 그저 언제나 애정이지."
"여자들이란 사랑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사랑을 터무니없이 중요하게 생각한단 말야. 그래서 우리더러 그게 인생의 전부인 양 믿게 하고 싶어해요. 하지만 그건 하찮은 부분이야. 나도 관능은 알지. 그건 정상적이고 건강해요. 하지만 사랑은 병이야. 내게 여자들이란 쾌락을 충족시키는 수단에 지나지 않아. 나는 여자들이 인생의 내조자니, 동반자니, 반려자니 하는 식으로 우기는 것을 보면 참을 수가 없소."
"여자는 사랑을 하게 되면 상대의 정신을 소유하기 전까지는 만족할 줄 몰라. 약해서 지배욕이 강하지. 지배하지 않고서는 만족하지 못해. 여자는 마음이 좁아요. 그래서 자기가 모르는 추상적인 것에는 화를 내는 버릇이 있어. 마음을 쓰는 건 물질적인 것뿐이야. 관념적인 것은 시기나 하고. 남자의 정신은 우주의 저 머나먼 곳에서 방황하는데 여자는 그걸 자기 가계부 안에다 가둬 두려고 하는 거요. 내 아내 생각나오? 블란치도 차츰 같은 수작을 부리려고 하더란 말야. 자기 딴엔 무한한 참을성을 발휘해서 나를 함정에 몰아넣고 올가미를 씌울 작정을 하고 있었어. 나를 자기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싶었던 거지. 나 자신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어. 내가 자기 것이 되어 주기만 바랬지. 하기야 나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려고 했어요. 내가 원하는 것 한 가지만 빼놓고 말이오. 난 혼자 있기를 바랐거든" 사실 여기서 가장 동의하지 못했는데, 이건 정말 케이스바이케이스이기 때문이다. 스트릭랜드가 하는 이 말을 나는 남자한테 그대로 적용시킬수도 있다. 실제로 나에게는 전혀 관심 없지만 내가 자신의 것이 되어 주기만을 바라는 남자들을 꽤나 봤기 때문에, 이건 "여자"에게 한정되는 듯이 말하는 게 싫었다.
"제가 보기엔 말입니다. 부인께서 선생과 헤어진 건 오히려 잘된 것 같습니다."
"젊은 친구, 제발 내 처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선생이 잘 말해 주었으면 좋겠소. 하지만 여자들이란 워낙 머리가 나빠서."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으니 여기까지 하겠지만, 고전으로 읽히는 소설에 이런 여성에 대한 보편화가 지극히 많다는 것은 조심해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을 좇는 이야기인 만큼, 이상(李尙)에 대한 갈망과 욕망은 여기 감사함의 부재가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최근에 여러 책을 읽으면서 느끼게 된 건데, "꿈을 꿔라" "목표를 가져라" 혹은 "자기 계발을 해라"라는 메시지를 가진 책들을 읽으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하는 태도는 "만족하지 마라"이다. "더 욕심내라" 혹은 "더 잘 되고 싶어 해라"하는 마음가짐에 감사하는 마음은 해가 된다고 써져 있는 책들도 읽었다. 최근 유튜브 붐이 불면서 리디 셀렉트에 이런 책들이 많아져서 그냥 흥미로운 마음으로 읽었던 책들 <역행자>, <악인론>, <드로우앤드류>, <지무비의 유튜브 엑시트>, 그리고 한국에서 베스트셀러에 너무 오랫동안 1위를 해서 읽었던 책 <세이노의 가르침> 같은 책들에 "감사하는 마음가짐을 가져라" 혹은 "감사함의 중요함"은 없다. 내 현실을 파악하고, 여기서 어떻게 더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확실한 목표설정을 하고 그것을 향해 달려라 하는 말밖에 없다.
반대로 다른 태도에 초점을 맞추는 책들이 있다. <슬픔은 원샷, 매일이 맑음>이라는 책이 그렇다. 이 책은 감사함, 그리고 감사함의 태도에 대해서도 나에게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만족함"이라는 단어가 어떤 책들에서는 가장 자신을 도태되게 하는 태도로 칭해지고, 어떤 책에서는 가장 현명한 태도로 칭해진다.
사회적으로 나보다도 더 많은 틀에 압박되어 있는 그 사람들이 겪는 내용들은, 지금 내가, 현재 사회를 살 때에, 어떤 생각과 어떤 시선으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혼자만 사는 세상이 아니다. 나 혼자 - 그리고 '내가 이루고 싶은 것들을' 이루기만 하면서 사는 삶은 아주 잠깐 재밌을지는 몰라도,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이루고 싶은 것만 욕심내고, 오로지 "나"의 삶에 몰두되어서 살고 있는 모습은 뭔가 기이하다.
물론, 나의 생각도 그저 지나가는 한 사람의 생각일 뿐이다. 각자 자신의 팔자와 인생이 있으니, 내가 뭐라고 할 입장은 되지 못한다.
그저, 나의 인생은 조금 더 노력해서 타인을 생각하고, 욕심보다는 감사와 가까워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달'은 나의 현실과 그리 멀지 않길. 그리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