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찾아오는 꽃들이 다 지고 아쉬울 즈음 자연은 또 장미꽃을 내어 놓는다. 출근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아침 아들과 딸을 태우러 주차장에 나갔다가 화단에 피어있는 장미꽃을 차마 지나칠 수 없었다. 마침 조금 일찍 나간 날이라 차에서 내렸다. 그 자연이 만든 쨍한 색이 너무 예뻐서. 나를 보러 오라고 유혹하는 내음에 취해서 나는 정신줄을 놓고 그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침마다 허덕거리던 삶에서 잠시 탈출하여 장미꽃에 취했다. 어쩌면 신은 이렇게 예쁘고 강렬한 장미꽃을 만들어 놓았을까? 한 잎 한 잎 오묘하게 자리 잡아 중심을 향해가는 그 아름다운 모양과 색의 조화가 인간을 사로잡지 않는다면 무엇이 인간을 유혹할 수 있단 말인가. 빨간 장미는 초록색 잎이라는 조연이 있기에 더 돋보인다. 파란 하늘까지 배경으로 더해주니 개화의 절정을 이루는 요 며칠간 화단의 주인공이 될 만한다. 게다가 가시까지 있어 도도하기까지 하다. 이 녀석!
벚꽃이나 목련이 함께 피어 순백색, 연분홍색의 합창을 하고 있다면 장미꽃은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나와 독창을 하는 성악가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 음악이 더 강렬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이렌의 노랫소리를 닮았다. 하지만 난 유혹에서 빠져나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누군가 나이가 들면 그렇게 꽃 사진을 찍는다고 하더니만 내가 딱 그 나이가 되었나 보다. 예전에도 꽃은 예뻤지만 사는 게 바빠 돌볼 수 없었던 나의 마음에 다시 꽃이 들어오는 것일 테다.
풍경을 주로 찍던 나는 아기가 태어난 뒤로 아기 사진을 찍기 위해 무거운 수동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다녔었다. 렌즈를 통해 보는 아기의 해맑은 미소가 나를 설레게 했었다. 세월이 흘러 핸드폰은 점점 더 발전해 화소 좋은 카메라가 장착되었고, 예쁜 아기들은 사진을 찍기 싫어하는 청소년이 되었다. 사진의 주인공은 다시 자연과 일상이 되었다. 언제든 꺼낼 수 있는 손안의 카메라. 항상 이 순간이 지나면 이 장면을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은 조바심이 '바로 지금이야'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핸드폰을 꺼내게 만들었다. 매일 글 쓸 소재를 찾고 있는 나에게 핸드폰은 필수 아이템이다. 눈으로 담았던 피사체의 아름다움은 저녁에 글을 쓸 때까지 남아있기 어려운 나이가 되었기에 그 순간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문명의 이기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참 좋은 세상이다. 사진작가가 아니지만 사진 찍기가 쉬워진 시대가 되었으니 그때그때 만나는 순간들을 아끼지 말고 찍어두자. 오늘의 꽃은 어제의 꽃이 아니며 '나'라는 존재도 매일 갱신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