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사람은 부자도, 유명인도 아니다. 바로 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이다.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시간과 재정의 여유가 되는 사람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그래서 sns사진 중 여행 사진을 볼 때 가장 배가 아프다. 특히 해외여행. 그들도 휴가를 내서 어쩌다가 떠난 여행이겠지만 여러 사람이 올린 여행 인증 사진을 보다 보면 다들 나만 빼고 낭만적으로 살고 있는 것 같아 속이 상한다. 하지만 이 옹졸한 마음을 자유롭게 여행 다닐 미래를 상상하는 일로 현명하게 대체한다. 사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면 친척들이 많이 사시는 제주도에 여름방학마다 갔으니 그렇게 속상할 일도 아니지만 자녀와 같이 떠난 여행이 아니라 열외 시키게 되나 보다.
J형인 나는 여행 계획을 완벽하게 짜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1박 2일을 가더라도 갈 곳과 맛집 코스까지 다 정하고 나서야 안도하는 여행자였다. 이동 시간까지 계산해서 동선을 짜는 것은 기본이고. 귀중한 시간과 돈을 들여 떠나는 여행이니 만큼 아주 알차게 놀고 오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이루어진 여행은 빈틈이 없었을지는 몰라도 정작 계획을 짠 나는 즐길 수 없었다. 계획된 시간에 맞춰야 하는 스케줄에 온 정신이 가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챙기고, 남편을 챙기다 보면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몰입하기보다 틀어지면 안 되는 계획으로, 그들의 안위로 나의 관심이 옮겨갔다. 그렇게 가족 여행은 늘 나의 주도로 이루어졌고, 여행 사진에 나는 늘 없었다. 사진을 찍어주기 바빴기에.
그렇게 집안의 대소사, 여행 등 모든 것을 주도하는 18년을 보내다가 작년에 드디어 나의 자리를 남편과 아들에게 내어주었다. 의도적이기도 했지만 글쓰기 이외에는 신경 쓰고 싶지 않을 만큼 의욕을 잃었다. 지쳤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작년에 다녀온 일본 여행은 처음부터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여행 계획을 짜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흐뭇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편안하게 패키지여행으로 다녀오자고 권유했으나 머리가 굵어진 아들은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며 가이드 역할을 자원했다. 비행기, 열차, 숙소, 지하철 이용권, 유니버설스튜디오 등 미리 구매해야 할 표가 많았음에도 둘이 알아서 진행했다. 여행을 가서도 여러 돌발상황이 발생했으나 나는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뒤에서 조용히 아들의 해결력을 지켜보았다. 낯선 곳에서 당하는 문제에 대해 해결해 보는 경험이 더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행 중 약간은 우스우면서 뭉클했던 순간이 있었다. 내가 일본에서 길을 잃을까 봐 아들이 내 뒤에서 졸졸 쫓아다니며 나를 챙기는 모습을 보였을 때였다. 내가 그 정도로 어리숙하지는 않은데, 아들 눈에는 이제 엄마가 걱정되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어느새 이렇게 자랐나 하는 뿌듯하기도 했고, 보호만 해주던 아들이 나를 보호해 주는 사람으로 변모한 것에 대해 마음이 한쪽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이제 난 계획대로 여행이 흘러가지 않아도 조바심을 치지 않는다. 우연한 돌발상황, 우연하게 들른 곳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유명 장소나 맛집을 가보지 않으면 어떠랴. 모든 곳이 사람 사는 곳이라 그곳에서도 새로운 경험은 늘 존재할 터. 자신이 익숙하게 살던 곳을 떠나 미지의 세계로 떠나기. 나는 이제 계획되지 않은 여행을 꿈꾼다. 그곳에서 맞이할 순간들이 벌써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