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함과 상상력의 결합
한주 한 점 그림 읽기 이번 주 그림입니다.
느껴지는 대로 자유롭게 감상해 보세요.
그림을 관찰하며 떠오르는 단어가 있나요?
이 그림의 제목은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그림을 보며 떠오르는 질문이 있나요?
떠오른 질문 중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질문은 무엇인가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보고 적어보세요.
그림을 보며 든 생각
추상화를 보면서 감상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누구나 비슷하게 인지할 수 있는 인물이나 자연, 사물 등 구체적인 형상이 없는 상태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 시작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상화를 어렵다고 하는 것 같다.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손에 잡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해석에 대한 부담이 없기에 오히려 마음 가는 대로 편안하게 느끼면 된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림을 바라보면서 내가 느낀 그 감정이 바로 정답이다.
하늘색 배경과 솜사탕 같기도 하고 구름 같기도 한 흰색의 조합은 바다라기 보다는 하늘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떠다니는 형상들은 마치 물속에 부유하고 있는 듯 편안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세포 같기도 하고 괴생명체 같은 각각의 주인공들은 색이 참 예쁘고 곱다. 참 정성스럽게도 그렸다. 아동 용품에 많이 쓰이는 색깔처럼 동심을 자극하기도 하고, 파스텔톤의 대비가 주를 이루는 세련미가 있다. 여기에 빨간색이 포인트를 주고 있어 화면을 경쾌하게 만들어준다. 뾰족하고 가느다란 형상들은 위협적이지 않고 부드러우며 운동성을 느끼게 한다. 각자의 자유로운 공간이 허락되면서도 하얀색 구름이 쿠션이 되어 그림 전체를 감싸주고 있어 그림을 보는 감상자를 경쾌하면서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그림을 보며 느껴진 단어
목마, 새, 벌레, 모기, 거북이, 괄사, 핀, 지렁이, 세 자매, 펜, 바늘, 반지, 수영선수, 잠자리, 괴물, 발가락, 율동, 리듬
내가 지은 제목
천태만상
떠오르는 질문
- 하얀색을 구름과 같이 표현한 이유가 있을까?
- 그림의 가장자리 전체를 흰색으로 감싼 이유는 무엇일까?
- 화면에 잘린 형태가 있었다면 전체적 느낌이 어땠을까?
- 화가는 이 형태들에게 생명력을 부여하고 싶었던 것일까?
- 다채로운 색을 쓴 이유가 있을까?
- 배경이 검은색이었다면 어땠을까?
- 유기적인 형태가 아닌 원과 네모는 왜 넣었을까?
- 화가는 형태의 생명력을 나타내기 위해 일부러 머리와 꼬리 같은 구조가 드러나게 표현한 걸까?
- 아이들은 이 그림을 보고 좋아할까?
<작품 정보 >
바실리 칸딘스키, <하늘색 (Sky Blue)>, 캔버스에 유채, 1940년, 100X73cm, 파리, 퐁피두 센터
추상 예술의 선구주자로 현대 미술에 큰 영향을 끼친 바실리 칸딘스키는 1866년 모스크바의 부유한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피아노와 첼로, 그림을 배울 수 있는 예술환경에서 자랐으며 법학과 경제학 등을 공부했지요. 23세 때 볼로그다 지역의 민족지학 연구팀의 일원이 되기도 했는데 반짝이는 색깔로 장식된 교회와 집 안에 들어갈 때는 마치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회고하기도 했어요. 1896년 서른 살이 되던 해에 법학부 교수로 임명되었지만 회화에 전념하기로 결심하고 성공가도의 길을 포기합니다. 후에 그는 이런 결정에 영향을 미친 사건 중 모네의 <건초더미>를 보고 느낀 감정적 충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어요.
"그것이 건초더미라는 사실을 나는 카탈로그를 보고서야 알았다. 이러한 인식 부족은 나에게 고통스러웠다. 나는 화가가 모호하게 그릴 권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림 속 대상이 사라진 것 같은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놀랍고 혼란스럽게도, 그 그림이 나를 사로잡았을 뿐만 아니라 지울 수 없을 만큼 내 기억 속에 각인되는 것을 발견했다. 그림은 동화 같은 힘과 찬란함을 띠었다." - 바실리 칸딘스키 -
이처럼 칸딘스키가 처음부터 추상화를 그린 것은 아닙니다. 그가 추상미술로 나아가게 된 계기 중 유명한 일화는 한 번쯤 들어보셨을 수도 있어요. 칸딘스키는 어느 날 저녁, 화실에 들어섰을 때 거꾸로 놓인 자신의 그림을 보고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해요. 그는 그 순간 그림의 색과 형태가 마침 음악처럼 자신에게 깊은 감정적 울림을 준다고 느꼈고, 그림이 사물이나 풍경을 똑같이 묘사하지 않아도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깨닫고 그날로 곧장 노선을 전환했다고 합니다. 신기하죠? 칸딘스키는 또한 색을 듣고, 음악을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감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감각은 그가 색과 형태로 음악적 감정을 표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1911)에서 색채를 시각적 '음'으로 간주하고 색의 상징성과 감정적 울림을 여러 색으로 나누어 상세히 설명하기도 했어요.
칸딘스키는 뮌헨 아카데미에서 수학한 후 유럽을 여행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으며, 알프스 산맥 기슭의 작은 마을 무르나우에 정착해 활발한 탐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18년부터 21년까지는 러시아에 돌아와 미술 교육 및 박물관 개혁에 힘쓰고, 모스크바에서 예술 문화 연구소 설립을 돕기도 했고요. 독일로 다시 돌아온 칸딘스키는 바우하우스가 나치에 의해 폐쇄당하는 날까지 계속해서 미술교육에 힘썼으며 그 이후 프랑스로 옮겨 작업을 계속 이어가다가 1944년 사망했습니다. 칸딘스키는 추상미술이 형태와 색채라는 회화 본연의 요소를 극대화화여 미술 본연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셸 코닐 라스코스트는 <하늘색>에 대해
'기묘한 형상들이 나타났고, 우리는 그것들을 차라리 생명체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 그림 속 형상들이 기괴하며 기괴할수록, 그는 그것들을 극도로 정교하게 묘사하려는 의지를 더 분명히 드러냈다. 형태가 복잡해질수록 색채는 더 밝아졌다. (...) 구현 방식은 너무 명료해서, 우연적인 요소는 전혀 없는 듯 보인다. 즉, 정밀함과 상상력의 결합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