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본다는 것
이번 주 볼 그림입니다.
그림을 천천히 감상해 보세요.
그림을 관찰하며 떠오르는 단어가 있나요?
이 그림의 제목은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그림을 보며 떠오르는 질문이 있나요?
떠오른 질문 중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질문은 무엇인가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보고 적어보세요.
그림을 보며 든 생각
앞모습을 보리라 기대했던 그림에서 반복되는 뒷모습을 보고 당혹스럽다. 평범하지 않은 전개는 감상자가 그림 앞에서 생각하기를 바랐던 화가의 의도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평범한 일상보다는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우리의 사고는 촉발되기 때문이다. 거울 속에 비친 주인공의 모습은 정면이 아닌 뒷모습이다. 우리는 평소 자신의 완벽한 뒷모습을 보기 어렵다. 거울이 양쪽으로 두 개 설치되어 있는 곳이라면 모를까.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어렵기에 우리는 가끔 우리의 뒷모습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궁금할 때가 있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윤기 나는 곱슬머리, 깨끗한 와이셔츠, 검은 양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주인공은 잘 사는 집안의 자제 같다. 그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 대신 뒷모습을 마주하고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뒷모습을 주제로 그린 그림들의 의도와 같이 화가는 주인공이 거울 속에서 자신의 뒷모습을 확인하고 느낄 다양한 감정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런데 거울 앞에 놓여있는 책은 반대로 비치면서 거울의 원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음을 감상자에게 노골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거울로 상징되는 또 다른 세계에 비친 우리의 세상이 실제가 아닌 환영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말하는 것일까? 거울을 통해 볼 수 있다는 작용을 뒤틀어 버림으로써 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재현되는 것과 재현되지 않는 것의 관계를 생각해 보게 하기에 이 그림에서 '거울'은 매우 영리한 소재가 된다. 또 한 가지 의문, 거울 앞에 꼭 책이 있어야만 했을까? 이 책은 무슨 책일까? 걷잡을 수 없는 질문의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느낌이다.
그림을 보며 느껴진 단어
거울, 대리석, 책, 검은 양복, 쌍둥이, 뒷모습, 외로움, 반복, 자아분열, 빛의 굴절, 이데아, 현실, 이상
내가 지은 제목
떠오르는 질문
- 주인 얼굴을 보기 싫은 걸까?
- 왜 책 주위만 거울의 반사 역할 그대로 하고 있는가?
-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거울 앞의 책은 소설책일까?
- 책을 배치한 이유가 뭘까?
- 양쪽 다 뒤통수만 있는 괴물은 아닐까?
- 거울 속은 또 다른 세상을 의미하는 걸까?
- 앞모습은 어떻게 생긴 사람일까?
<작품 정보 >
르네 마그리트, <금지된 재현>, 1937, 캔버스에 유채, 81.3X65cm, 보이만스 반 뵈닝겐 박물관, 로테르담
르네 마그리트는 1920년 중반까지 미래주의와 입체주의 성향의 작품을 그리다가 조르조 데 키리코의 영향을 받아 초현실주의적인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어요. 동시대 다른 초현실주의자들이 꿈과 무의식에 세계에 집중했다면 마그리트는 사실적으로 묘사한 일상적인 오브제를 예기치 않은 낯선 상황, 이상한 관계 속에 놓음으로써 친숙한 것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생각거리를 던져주었고, 시각적 충격을 불러일으키는 데페이즈망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현실의 것을 절묘하게 변형하고 왜곡하는 표현 기법은 후에 영화, 음반 표지, 애니메이션 등 수많은 분야에 응용되었기에 현대 미술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큽니다.
이 그림은 마그리트의 후원자인 에드워드 제임스가 런던 자택 무도회를 위해 제작 의뢰한 세 점의 그림 (<붉은 모델>, <고정된 시간>)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그림에는 <고정된 시간>에 등장하는 벽난로와 동일한 벽난로가 등장합니다. 마그리트는 제임스 집 내부의 인테리어를 그림에 그대로 재현했거든요. 아래 그림에서 확인해 보세요.
<금지된 재현>의 주인공은 비록 뒷모습이긴 하나 제임스의 초상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거울 앞의 책은 에드거 앨런 포의 1838년 소설 <아서 고든 핌의 모험>의 프랑스 판입니다. 포는 마그리트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었다고 합니다. 이 책의 내용은 고래잡이 배에 밀항한 아서 고든 핌의 모험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작품에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소재로 넣어 주는 센스, 혹은 책의 내용과 그림의 연결성까지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왜 굳이 거울에 비치는 소재가 책이었어야 했을까라는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또 다른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보는 것이 어떤 것을 숨기고 있는지 보고 싶어 한다."라는 마그리트의 말을 다시 되새겨 보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