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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사원 Mar 26. 2023

꿈과 결핍과 믿음

10월.정동길



출근길에 낙엽이 밟히던 어느 날

어떤 분이 나에게 꿈을 물었다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던 것을

입 밖으로 내려니 말문이 막혔다

발주처로 이직하고 싶다며 웃어넘겼다


꿈을 묻는 건 곧 결핍을 묻는 것이다

꿈은 부푼 마음에 드리운 날카로운 가시와 같다


비어있기에 채워지고 싶고

우린 끝 없이 완전함을 갈망한다


허기짐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은 없다

꿈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꿈과 함께 마주하는 자신의 부족함은

언제나 간지럽고, 쓰리고, 아프다


때론 그런거 차라리 잊어버리고

무뎌지는게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


지나간 1년을 돌아본다

별거 떠오르지 않는다


몇몇 장면들, 당시의 감정들만

불쑥 내비칠 뿐이다


기대도 했고, 설레기도 했지만

돌아보니 덧없는 나날들

이런 허탈감을 처음 겪는 건 아니다


예전엔 종종 마음이 기울어져도

금방 중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나이도 어렸고, 학생이라는 신분 덕분인지

기대할 수 있는 새로운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반복되는 일상의 관성 때문인지

한번 치우친 마음의 균형을 되찾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


어딘가 마음을 쏟기 전에

짊어질 리스크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자연스레 변화가 불편해졌고

항상 일관된 상태를 유지하려 안간힘을 쓴다


그렇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게 된다

몸뿐 아니라 마음에도 녹이 생기도록 놔두는게

차라리 편할 때가 많아졌다


-


펜을 잡아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 안에 무엇이 남아있는지 뒤적거린다


덧없어지는 게 싫어서, 흐릿해져 가는 게 아쉬워서

여기저기 띄워놓은 수많은 텍스트,이미지 파편들은


지나간 시간과 거기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기억을, 감정을 붙잡고 싶은 집착의 흔적이다


하지만 그것들을 모으고 정리하고 나면

남아있는 건 견디기 힘든 가벼움뿐이었다


그 가벼움에 치가 떨려서

기대함이 아닌 덧없음을 기다리며

내일을 맞이하곤 했다


-


결국 꿈을 이야기하기 전에

나에게 필요한 건 믿음이다


현실의 고난과 마음의 결핍이

나아갈 길의 형틀이 되리란 믿음


아픈 만큼 더 성숙해지고, 더 굳건해지고

더 나은 사람이 될 거란 믿음


맹목적으로 추구했던 것들이

텅 빈 진실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것들을 기꺼이 덜어낼 수 있는 믿음


쳇바퀴 같은 일상에 매몰되지 않고

무거워진 고개를 바로 들어야 한다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을 찾아

굳어버린 고개를 두리번거려야 한다


믿음과 신념의 열기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을

달구고 녹이고 섞어서


깊은 결핍의 요철을 채우고

단단히 굳혀져

본래의, 고유의 형상을 찾아간다면


다시금 나는 꿈을 따라

자연스레 펜을 들게 되지 않을까


-


계절이 돌고 돌아 다시 출근길에 노란 낙엽이 밟힐 때

장차 눈앞에 펼쳐질 푸른 잎 우거진 숲을 기대하는 사람이 되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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