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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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은 취소됐지만, 친구들과 사진이라도 찍기 위해 학교에 모이기로 했다.
나는 반차를 내고 오는 것이라, 오전에 해결을 보려고 아침 10시경 도착했는데, 정해진 일정이 없다 보니 다들 어물쩡거리느라 내가 제일 먼저 도착해 있었다. 혼자 돌아다니기가 왠지 무안해서, 어디에서 시간을 보낼지 생각하던 중 교수님께 인사나 드리자는 생각이 문득 떠올라 한 교수님께 연락을 드렸다. 마침 연구실에 계셔 커피 한잔 라테 한잔을 들고 곧바로 연구실을 방문했다. 학기 중엔 그렇게 나를 괴롭히고 욕도 많이 했던 교수님이었는데, 좋은 말 많이 해주시더라. 그중 생각나는 말들을 잊어버리기 전에 정리해 본다.
* Q. 설계를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다 -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 누가 나는 설계를 잘한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잘하는 건 없다. 설령 있더라도 누구도 그렇게 말할 수 없다. 그저 좋아하고 열정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잘한다의 기준을 매기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할뿐더러 소모적이기 때문에, 나는 그저 나의 생각을 품고 나의 길을 가면 되는 것이다. 오랫동안 그래야 한다.
단지 마음에 품고 있어야 할 생각들을 몇 가지 조언하자면,
-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 학습의 방향
- 스스로를 어리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야 한다 - 젊게 살아야 오래 배운다
- 실무에서 하는 일들은 대학 때 배운 것들과 완전히 다른 것이라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했던 프로젝트가 있었기에 지금 하는 것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그 시간들이 절대 무의미하다 생각해선 안된다.
* Q. 차세대 툴을 먼저 배워 경쟁우위를 점하고 싶다 -
만약 앞으로도 설계를 하고 싶은 거라면 그 전략은 틀렸다. 툴을 잘하는 사람은 결국 툴을 시킬 뿐이다. 꼭 필요한 툴이 있다면, 대가를 지불하고 외주를 맡기면 되는 일이다. 아무리 먼저 배워놓는다 해도 건축베이스인 나보다 툴을 잘 다루는 사람은 지천에 널렸다. 특히 Grasshopper와 같은 알고리즘 저작도구들이 그렇다.
설계실력을 늘리고 계속 설계를 하고 싶다면, 계속 공모전을 해보고, 스스로 프로젝트를 주도해 나가며 생각의 프로세스를 키워나가는 것 외에 방도는 없다.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설계를 하는 것. 그렇기에 졸업전시가 의미가 크다. 어쩌면 앞으로 10~20년 후 내가 설계판에서 선임이 되기 전 마지막으로 내 생각이 온전히 들어간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졸업전시 때 했던 생각은 이후 나의 설계관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미래의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던, 마음에 '일장일단'을 새기고 있어야 한다. 무엇이든 장점과 단점이 함께 존재하나, 둘 중 무엇을 크게 가져갈지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와 성실함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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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도 많이 찍고, 즐거웠던 시간이었지만 그중에 잠깐 나눴던 이 대화가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