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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타스 Dec 16. 2019

[공황장애] 자기소개때 도망치고, 오백명 앞에 서기까지

발표불안 후 다시 되찾은 일상은 덤이었다.

“아..안녕하세요.. 하하하 제가 지금 너무 떨려가지고...”

벌벌벌. 사람들이 나 지금 완전 웃기게 보겠지.

“아..네.. 저는 2학기 생이고..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털썩. 하고 급하게 앉았다. 얼굴은 시뻘건 채로, 심장은 미친 듯이 발작적으로 뛰고 있었다.


짝짝짝. 사람들은 기계적으로 박수를 쳤고, 이제 자기소개는 다음 사람 차례로 넘어갔다.

“네, 안녕하십니까? 현재 일과 병행하면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김OO입니다. 열심히 해서 누를 끼치지 않게(웃음) 잘 따라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 사람은 대체 어떻게 저렇게 당당하게, 긴장한 내색 하나 없이 말을 할까? 아니, 비단 저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비록 약간 떨려 보이긴 했지만 나처럼 과하게 벌벌 떠는 사람은 없었다. 왜 하필 대학원은 매 수업시간마다 자기소개를 시키는 거야. 울분이 터졌다. 그다음 수업부터는 아예 첫 시간에 병원을 간다는 핑계로 빠지게 되었다. 모든 강의의 첫 수업을 그렇게 빠졌다. 생각만 해도 일주일 간 잠을 못 잘 정도였다. 목 뒤가 뻣뻣하게 굳고, 온몸이 긴장되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머리는 나더러 빨리 이 강의실에서 도망가란다. 고작 자기소개가 공황발작의 방아쇠라니. 이래서 사회생활하겠나.


자기소개가 저 정도였으니, 발표는 가관이었겠지. 특히 자신 없는 부분을 발표할 때는 사람이 더 긴장하게 되지 않는가. 하필 어려운 주제, 어려운 내용인데 나는 발표에 상당한 불안이 있고. 이번 발표 참 볼 만하겠구나.

“어.... 이번 챕...터..를 발표...하게.. 된.... 2학기.... OOO입니다... 발표..에 앞..서...”

“잠깐. 지금 너무 긴장한 것 같아서. 좀 웃으면서 할까요?”

친절한 교수님의 배려에 조금 긴장이 풀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남들 앞에 서는 일이란 내겐 지옥이었다. 생지옥. 불지옥. 정말 끝내준다. 앞으로 더 나아가서 면접은 어떻게 볼래? 아니, 그전에 논문 심사는 제대로 받을 수나 있겠어?




내 첫 공황발작은 대학교 강의에서 발표과제를 하러 일어나기 직전에 발생했다. 평소 발표를 그렇게 두려워하진 않았던 나는, 한 번 그렇게 큰 코를 다치고 나서 남들 앞에 서기가 점점 두려워졌다. 처음엔 발표, 그다음에는 토론 수업, 그다음에는 조별 모임, 그리고 그다음에는 자기소개. 심지어 출석체크를 할 때 “네”라고 대답하는 게 무서워서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강의실 밖으로 뛰쳐나갈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출석체크를 하는 게 힘들다니 이해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말 소극적인 사람이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도 그때의 내가 이해가 잘 안 되니까.


출석체크는 고사하고, 친구들끼리 모여서 돌아가면서 자기 얘기를 하는 자리에서 내 차례가 돌아오는 순간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뛸 정도였다. 그러니 대인기피증이 와서 떠나간 친구가 한 둘이 아니게 되었다(다시 곱씹자니 씁쓸하다).


자존심은 세고, 자존감은 낮은 내가 그런 상황들을 어떻게 견뎌야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안쓰럽다. 나를 시기하거나 괜히 시비를 거는 무리들이 그런 나를 두고 어떤 말들을 속삭였는지 아직도 기억한다. 쟤 발표 봤어? 사람의 약점을 발견하면 감싸주기는 커녕 더 깊이 상처 내는 게 인간이라더니. 부모님 말씀 틀린 거 하나 없다며 씩씩거리고 분해서 울기를 여러 번. 동기들의 뼈아픈 조롱에 ‘너희들이 뭘 알고 떠들어’하며 울며 지새운 밤이 수 차례 지났고, 분노 게이지가 남다른 나는 그 분노를 조금 ‘유용하게’ 써보자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디 한 번 누가 이기나 해 보자.




“제가 해보겠습니다.” “교수님, 학회 발표는 제가 맡을게요.” “이번 조 별 프레젠테이션은 내가 할게.”

보통의 남들도 하기 꺼려하는 발표를 자진해서 죄다 맡기 시작했다.

“이렇게 연습해서, 요렇게 성공했어요.” 하는, 밥 아저씨의 “참 쉽죠?” 같은 간단한 노하우나 경험이었다면 삶이 순탄하고 나도 좀 편했으리라. 하지만 결과는? 처참까진 아니더라도 꽤나 창피했다. 쟤 너무 떤다, 발표 잘 못한다 는 말을 숱하게 들어야 했고 약점을 걸고넘어지는 무리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고.


발표 전엔 늘 약을 한 가득 먹었다. 그런데도 발작 직전의 공포가 밀려왔다. 수 없이 연습하고 떨었던 밤이 무색하게도 실전은 내게 녹록지 않았으며, 발표 전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입을 막고 헛구역질을 계속 해댔다. 출석 때 네, 하는 것도 힘들었으니 오죽했을까.


그런데 계속했다. 무식하게 계속했다. 내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여전히 맘 한편에 있었지만 그래도 어떡해. 사회에 나가서 발표는 기본이요, 자기 PR을 해야 할 텐데. 그리고 무엇보다 불안이 내 삶에 한계를 짓는 것이 끔찍하게 싫었다. 불안 이 자식아. 니가 뭔데 내 능력을 막아. 난 더 할 수 있는 사람인데. 훨훨 날 수 있다고 난. 그 자존심 하나로 기회가 될 때마다 자진해서 발표를 했다. 약과 헛구역질은 기본으로, 비현실감은 옵션으로 가지고. 덕분에 그 당시 학기 동기들 중 가장 많은 학회에서 발표를 했고,  논문 발표도 무사히 마쳐 졸업도 했고. 덤으로 회사에서도 “제가 발표하겠습니다” 병에 걸려서 특강까지 다 도맡아 했다.


어느 순간부터 헛구역질을 하지 않게 되었다. 좀 신기하네. 원래 발표 전엔 밥도 잘 안 들어갔는데. 약도 줄었다. 한 1/4 정도 줄어든 것 같았다. 거의 안 먹는 것과 비슷하다나. 그러던 중에 1000명을 대상으로 내가 맡은 업무의 오리엔테이션 발표를 해야 한단다. 약 500명씩 나눠서 2번. 최악의 시나리오는 내가 그 자리에서 공황이 와서 꿱하고 고꾸라지는 일이었다. 부서 동기에게 “나 쓰러지면 질질 끌어서 멀리 치우고, 스크립트는 여기 있으니 그대로 읽어주면 된다.” 하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당부해뒀다. 좋아, 내가 쓰러져 죽어도 내 대신 발표해줄 사람도 있고. 이제 무서울 게 없었다. 무대에 오르면서 씩 웃어 보이기도 하고, 괜히 농담을 하거나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분위기가 썰렁하든 말든. 유명 강사나 작가들도 리액션이 없어 곤욕이라던데 뭐. 그래서 결론은? 했다. 그리고 잘했다고 하더라(주변 상사분들이나 동기들 말로는). 어떻게 떨지도 않고 하냐고. 저 속으로는 죽는다 하고 했거든요. 제 후견인까지 뒀거든요. 아무튼 그런 경험들은 마치 통장에 입금된 것처럼 차곡차곡 잘 쌓였다. 고맙게도 그 노력들이 배신 안 때리고 내 옆에 남아줬다.




멀쩡해야 해라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어? 나 지금 멀쩡하네 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참 오래 걸렸다. 의사 선생님께서 그러셨다. 내가 괜찮아져야 해 하고 애를 쓰는 게 아닌, ‘어 나 지금 꽤 괜찮네?’ 하는 때가 올 거라고. 결국 두려움에 직면하는 것이 답이었구나. 당장의 창피함과 수모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날 믿게 되는 그 마법 같은 순간을 위해 나는 끊임없이 노력했다 라는 자신감이 붙었다. 못 한 날도 있고, 꽤 잘 한 날도 있다. 청중이 듣는 둥 마는 둥 한 적도 있고, 성공적으로 반응을 이끌어 낸 적도 있다. 하나하나 소중하다. 그것들이 모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까. 단순히 발표를 떨지 않고 잘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에 대한 나의 태도가 바뀌어야 했고 나에 대한 신뢰가 높아져야 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을 대할 때 사랑으로 대하고 당연히 그들도 나를 사랑해 줄 거라 생각하기까지,

혹은 그들이 나를 미워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기까지,

내가 내 자신을 100퍼센트 신뢰해줄 때까지,

만족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기준치를 낮출 때까지,

그리고 ‘내가 못하는 시나리오’가 아니라 ‘내가 청중에게 잘 전달하는 시나리오’가 머리에 그려질 때까지.

그렇게 끊임없이 상처 받고 도전하고 직면하는 공황장애인이 되자고 다짐했다. 당연한 걸 당연히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그 역경을 딛고 어떤 사람이 되는지 보여주자고. 내 분노 게이지는 그렇게 쓰였다.


지금은 어떻냐고? 발표는 요새 할 일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자기소개를 하는 모임엔 자주 나가서 싱글싱글 잘도 말하게 되었다. 발표를 하게 된다면 1-2주 전부터 피피티 탬플릿에 스크립트에 체크리스트를 줄창 만들어댈지도 모르겠다. 간만의 발표라 손에 땀이 나고 덜덜 떨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예전 같진 않을 것 같다. 아니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를 믿게 되었고, 숱한 경험들로 적금 들어놨으니까.



베리타스

instagram: @record_of_panic_disorder (공황장애 웹툰 계정)

http://instagram.com/record_of_panic_diso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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