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야 밀스타인 : 기억의 캐비닛]
뉴욕 타임스, 구글, 페이스북, 구찌, LG 등 글로벌 브랜드와 협업하고 뉴욕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인 일리야 밀스타인을 총망라하는 국내 첫 대규모 특별 기획전 [일리야 밀스타인 : 기억의 캐비닛] Ilya Milstein : Memory Cabinet이 2023년 9월 20일부터 2024년 3월 3일까지 개최된다.
총 네 개의 챕터로 나누어진 전시. 노루페인트와 함께하는 이번 전시는 벽면을 완전히 칠하여 그림의 또 다른 배경을 만든다. 노란 벽을 따라 전시장에 들어선다. 밀스타인이 보여주는 세상을 살피러 가본다.
캐비닛에 들어갈 만큼 작은 물건이지만 그 작은 것으로부터 관련된 수많은 기억을 소환할 수 있듯이, 일리야 밀스타인은 작은 것으로부터 세상을 읽어내며 그 경험을 감상자들에게도 선사한다고 한다. 네 개의 챕터가 각각의 ‘캐비닛’으로 표현되는 전시 공간 중 첫 번째 캐비닛은 단독 또는 둘의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Cabinet 1.
‘The Muse’s Revenge’
작가의 사회적인 목소리가 반영된 사례의 초기 작품들도 만나 볼 수 있다는 안내가 생각났다. 어쩌면 ‘뮤즈의 복수’가 그러한 작품이지 않을까 싶었다.
화가로 보이는 듯한 남성이 그림과 물감 사이에 쓰러지듯 누워있다. 혈흔은 없는 것을 보아 아마 술이나 잠 따위에 취해 널브러져 있는 것 같다. 사방에는 여성의 몸이 그려진 누드화가 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는 한 여성이 총을 든 채 서 있다. 마치 화가를 포함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깨부술 듯하다. ‘뮤즈의 복수’라는 제목에 따라 그는 뮤즈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나는 이 그림에서 어떠한 의지를 느꼈다.
화가나 작가는 남성, 뮤즈는 여성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의 관념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고정관념일 뿐이며 그것을 고쳐야 한다는 사실도 모두가 알고 있다. 어쩌면 ‘뮤즈의 복수’에서의 총구는 그 부분을 겨냥한 것이 아닐까. 그림으로 남겨지기까지 가만히 서 있던 이들과는 다르다. 수동적인 그들과 달리 총을 든 여인은 능동적이고 주체적이다. 남성 중심의 무언가를 깨트리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여성의 의지를 엿본 듯하다. 흩날리는 머리칼과 치맛자락이 일종의 생동감으로 다가온다. 빛을 등지고 선 그의 모습은 마치 빛을 등에 업은 듯하다. 화가에게 향하는 빛을 가린 채 매서운 바람에도 굳건히 서 있다. 너무도 닮고 싶은 강인함을 느낀 채 그를 응원하며 발길을 돌렸다.
‘Lovers’
어두운 밤, 여기저기 놓인 스탠드 조명만이 빛나는 방 안. 어느 남녀가 어두운 방에 함께 있다. 마치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듯 책, 신발, 그릇, 액자 그리고 두 남녀까지 부유하고 있다. 평범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그들은 평온하다. 손을 맞잡은 채 편히 눈을 감고 있다. 사랑과 소중함이 느껴졌다.
두 남녀를 포함해 모든 것이 방을 부유하는 모습은 마치 사랑하는 이를 눈앞에 둔 느낌일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붕 뜰 것만 같은 설렘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온함을 지킬 수 있는 것. 그것이 사랑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이가 없음에도 ‘연인’을 보면 구름을 걷는 기분이 든다. 낯설지만 설레고 행복하며 평온하다.
밀스타인의 깨알 같은 표현이 돋보이기도 한다. 왼쪽 스탠드가 밝히는 탁자 위에 화면이 깨진 핸드폰이 보인다. 사랑을 느끼는 순간이 특별하게 보이다가도 깨진 화면이 그들의 평범을 말해주는 듯하다. 화면이 조금 깨져도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면 보통 그냥 사용한다. 그 보통의 사람들이 특별한 사랑을 한다. 우리의 사랑은 특별하다. 평범함이 만나 특별함을 이루는 순간을 뒤로 한 채 다음 섹션으로 넘어갔다.
Cabinet 2.
두 번째 캐비닛은 몇몇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으로, 일상적인 장면을 그려낸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A Fresh Start to a Fresh Day’
이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활기찬 아침’을 주제로 제작된 LG전자의 커미션 작품이라고 한다. 엄마, 아빠, 그리고 두 아이가 아침 식사를 하며 준비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 작품에서는 한국적인 요소를 숨은그림찾기 하듯 발견해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그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두 아이가 입은 교복과 냉장고를 제외하면 한국에 사는 나의 일상과 크게 닮은 부분이 없었다. 아침부터 오븐에 바비큐를 굽지는 않으며, 박카스는 그리 크지도 않다. 원앙 목조각과 호랑이가 그려진 청화백자를 집 안 소품으로 두는 가정집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것들의 조합이 즐거웠다. 어쩌면 외국인이 생각한 한국의 일상은 이러한 모습일까 싶기도 했다. 익숙함 속 이질감이 산뜻한 조화를 이루는 듯했다. 밀스타인의 손에서 탄생한 일상 중 우리와 가장 가까운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Cabinet 3.
세 번째 캐비닛은 앞서 다뤄진 작품에 비해 더 큰 외부 세계를 배경으로 그린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The Garden of Forking Paths'
‘갈림길의 정원’은 영화제작사 A24가 2022년에 출판한 책 『우연히 발생한 방사성 암석과 기체의 방대하고 무의미한 회전』에 실린 일러스트레이션이라고 한다. 작품은 두 인간의 삶을 여러 모습의 평행 세계로 보여준다는 설명을 보았다. 그것이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어떠한 인연도 없는 사람이 다른 세계에서는 부부로 살아갈 수도 있고 정적이 될 수도 있다. 또한, 평범하다고 칭할 개인의 삶이 다른 세계에서는 노숙자가 되거나 사고를 당해 죽는 삶이 될 수도 있다. 한 장소를 배경으로 구 안에 다른 세계의 삶을 그려 넣어 여러 세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어쩌면 다중 세계가 존재하고 또 다른 나는 완전히 다르게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회가 남은 과거의 선택이 다른 세계에서는 다르게 흘렀을 수 있다고 상상했다. 어느새 그림을 처음 마주했을 때 다가온 난해함은 사라지고 평행 세계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두려우면서도 재미있는 상상이다. 마치 SF 장르의 콘텐츠에 들어간 듯 다중 세계를 펼쳐본다. 이 세계의 나는 전시장을 누빈다.
Cabinet 4.
마지막 네 번째 캐비닛에서는 인물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작가의 신작을 발견해볼 수 있다.
‘Lost Summer’
<잃어버린 여름>은 더 뉴욕 타임스의 짧은 뉴스레터 「‘개학’은 이제 무엇을 의미할까?」에 실린 작품이라고 한다. 2020년 작품으로, 그 배경에는 COVID-19가 자리 잡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전염병의 확산으로 인해 많은 것들이 비대면으로 전환되던 시기, 교육도 피해갈 수 없었다. 우리는 비대면으로 수업을 들었기에 등교한다는 행위 자체가 사라졌다. 그것이 스쿨버스가 나뭇잎이 잔뜩 쌓인 채 방치된 이유일 것이다. 새 둥지는 아이들이 학교가 아닌 가정에서 일상을 보내게 될 모습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전염병으로 인해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씁쓸함은 지워지지 않았다. 새 둥지에 그림자가 드리운 것처럼 가정에서 보내는 일상이 그다지 빛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2023년도에 보는 2020년의 모습이 찬란할 수는 없었다. 나뭇잎이 쌓여 점차 스쿨버스를 묻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우리는 함께 보내던 시간의 즐거움을 되찾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찬란한 노란색이 쓸쓸해지고 어느새 두려워진다. 잃어버린 시간을 건너와 바라보고 있음에도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여전히 바라고 있다. 새 둥지에 드리운 그림자가 걷히기를, 저 새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미래의 희망을 품은 채 전시장을 나선다.
다채로운 벽면에 따라 공간이 구분된다. 공간에 들어설 때마다 다른 기억을 마주하는 듯하다. 공간에 배치된 여러 그림, 그리고 그 그림을 이루는 작은 요소들이 모두 기억의 조각이 된다. 추억하지 못할 요소가 없다. 여태 살아온 시간을 반추하고 다가올 시간을 기약해본다. 그렇게 나의 세상을 꾸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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