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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월 Oct 02. 2023

기억의 의무를 되새기게 하는 연극, ‘밀정리스트’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극발전소301에서 선보이는 ‘밀정리스트’는 1929년 경성에서 일본 총독 암살 거사를 준비하는 의열단 단원들 이야기다. ‘밀정리스트’는 이름 없는 항일운동의 주역들을 찾아 기억하고, 독립운동가로 신분 세탁한 밀정들을 비롯해 일본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연극이다.




주어진 것이라고는 눈에 보이는 것뿐인 것만 같은 작품. 무대 전환이 화려하다거나 의상과 소품이 다채로운 편이 아닌 수수한 옷차림새를 한 연극이다. 화려한 극을 얼마나 관람했다고 그새 수수함에 낯을 가린다. 한 걸음이면 올라설 수 있을 듯한 무대, 낡은 주전자와 삐걱대는 나무 바닥은 1929년을 이야기한다. 수수함의 저력이 펼쳐진다.


인물의 이름과 얼굴을 익히기 바쁘다. 그들이 내뱉는 대사가 너무도 빠르게 다가온다. 계획을 세우고 이행하기까지 그저 밀정을 찾기 바쁘다. 철저히 관객으로서 생각한다.


극이 중반에 다다른다. 그들의 계획이 이행된다. 암전으로 인해 시각은 차단되고 거사는 소리로 전해진다. 총소리와 폭탄의 폭발음, 사람들의 비명이 이어진다. 새카만 눈앞에 1929년의 거사 현장이 그려진다. 그들이 희망차게 나누었던 이야기와는 사뭇 다르다. 경관들의 숫자가 사전에 이야기했던 것보다 많은 듯하다. 총소리가 지나치게 많이 들린다. 음향은 새카만 시야에 춤을 추겠다는 듯이 그 소리가 커진다. 귓가에 박히는 총소리에 손이 떨릴 것만 같을 때쯤 거사는 끝난다. 그리고 예상대로 거사는 실패한다.


연극의 장르 특성상 시공간의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밀정리스트’는 이러한 제약을 조명과 음향으로 극복한다. 거사가 이행된다는 사실을 음향으로 전달하는데 그 음량이 매우 커서 마치 그 한복판에 있는 느낌을 준다. 덕분에 오직 소리만으로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거사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이야기는 그 예상대로 진행된다.


음향뿐만 아니라 조명의 활용도 주목해야 한다. 음향으로는 거사 당시를 전한다면 조명을 통해 과거 회상을 알리며 거사의 상황을 복기한다. 홀로 남은 충옥의 과거 회상을 조명의 전환이 뒷받침한다. 설진과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설진이 죽었다고 생각한 그가 거사가 끝나면 형이라고 불러도 되냐는 과거 설진의 질문을 생각한다. 홀로 있을 때와는 조금 더 어둡게 설정된 조명이 해당 장면은 충옥의 생각이라는 사실을 전달한다.


수수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후회될 만큼 ‘밀정리스트’는 연극의 장르적 제약을 그 특성으로 승화해 전달하는 작품이었다. 음향과 조명은 이야기의 한 부분을 담당한다. 오로지 눈앞에 보이는 무대와 배우들의 대사가 전부일 것으로 예상했던 것을 뒤엎는다. 무대와 대사, 음향, 조명이 한데 어우러져 다채로운 극을 만든다. 자칫하면 단조롭다 느낄 수 있는 이야기에 숨을 불어넣는다.


이러한 연출적인 장치와 함께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서사가 이어진다. ‘밀정리스트’는 누가 밀정인지 찾는 것이 주된 이야기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관객을 환기할 요소가 적은 연극이라는 장르에서 서사 진행에 재미를 더한다.


‘밀정리스트’는 코미디 장르가 아니기에 재미를 가미할 부분이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뮤지컬처럼 넘버가 있지도 않다. 그런데도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 서사의 진행 속에 등장하는 밀정의 그림자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밀정이 있을 것이라고 암시하는 내용이 전개되며 모든 인물이 의심스러워진다. 변절자 박경식에 관해 대화를 나눈 뒤 그를 따로 만나는 충옥을 보고 그가 밀정은 아닐지 추측하게 된다. 하지만 스파이 노릇을 하는 사람은 충옥이 아닌 경식이었고 다시금 다른 인물에게 의심이 피어오른다. 죽었지만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설진일까, 불발탄을 터트린 태규일까, 계획대로 일을 시작하지 못한 화진일까? 모든 인물을 의심한다. 모두가 의심스럽지만 동시에 모두가 의심하고 싶지 않을 만큼 땀과 눈물을 흘린다. 죽은 줄 알았던 설진이 돌아와 태규를 지목할 때조차 한 명을 쉽게 의심할 수 없다. 밀정이 밝혀질 때까지 거듭 의심하며 이야기를 따라간다. 이것이 ‘밀정리스트’만의 재미이자 서사 전개의 전략이다.


흥미롭게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눈물은 불가피하다. 오빠를 지키겠다는 명목하에 밀정 노릇을 했다는 명순. 그로서는 그것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말이 그의 행동을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명순이 그럴듯하게 말하는 모든 것들에 충옥은 답했다.


끝까지 싸워야지. 주권을 찾을 때까지.
/
역사가 우릴 기억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연극이었다. 의심하고 분열하는 집단, 싸우지 않아야 하는 이들의 충돌. 현 상황과 무엇이 그리도 다를까. 충옥이 태규에게 한 말이 생각난다. 그럼 그냥 창씨개명하고 일본놈들한테 붙어살지 왜 동지를, 나라를 팔아먹냐는 그의 말. 많은 이들이 피해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들의 잇속만 챙기는 작태가 이기적이기 그지없다. 주권을 되찾았을 때 그들이 살아있지는 않았겠지만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고 있다. 물론 밀정 895명의 명단과 많은 이들이 현재 현충원에 안치되어있다는 사실까지도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잘못은 바로잡아야 하고 아픈 과거는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 ‘밀정리스트’의 말미에는 밀정 895명의 명단이 공개된다. 이로써 ‘밀정리스트’는 기억의 의무를 떠올리는 방아쇠이자 기억을 바로잡아주는 길라잡이라고 할 수 있다. 덕분에 나는 밀정 895명을 기억할 것이고 언젠가는 바로잡고자 노력할 것이다. 동시에 우리를 지킨 독립운동가를 기억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한다. 앞으로도 기억할 것이다.






아트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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