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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널목 Feb 22. 2023

연출하는 시-쓰기

시 창작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적은 없지만 묘사가 중요하다는 말은 수없이 들었다. 무게추가 발견보다 정서로 기울면 얄팍한 비유밖에 못 한다. 정서가 잠재되어 있는 채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할 때, 유심히 관찰할 때, 본 것을 정확히 묘사할 때 나도 몰랐던 논리가 생기고 정서가 발생한다. 그런데 발견도 관찰도 묘사도 쉽지 않다. 더듬이가 무뎌진 탓도 있겠지만 일상에서 이상함을 느끼는 일이 점점 드물다.


발상을 바꾸었다. 묘사가 아니라 연출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자 비슷한 일을 하면서도 힘이 덜 들었고 더 신이 났고 훨씬 더 자유로워졌다. 묘사하는 사람은 있었던 일만을 받아 적지만 연출하는 사람은 없었던 일을 있었던 일보다 실감 나게 표현할 방법을 궁리한다. 일상을 넘어서고 자기 자신을 넘어서고 때와 장소를 넘어선다. 이제 화자는 내가 아니다. 누구든 될 수 있고 나는 그의 삶의 어떤 순간을 떼어내 최대한 그럴듯하게 연출한다.


얼마 전 좋아하는 다큐멘터리 감독을 만났다. 그는 요즘 하고 있는 작업에 대해 말하면서, 자신이 촬영하고 있는 사람이 겪은 ‘영화적인’ 순간을 말하면서, 그 맛에 다큐를 만든다고 했다. 그는 기다리는 사람이다. 그는 찾아가는 사람이다. 그는 찾아가서 기다리는 사람이다. 그는 발견하는 사람이고 자신이 본 것을 찍는 사람이다. 찍은 것을 배열하는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가만있지 않고 찾아갔다는 점이다. 시인이 연출하지 않고 묘사만 할 때, 화자가 시인 자신과 동일인일 때, 시적인 무언가를 쓰기 위해서는 시인 스스로 비일상적 공간으로 끊임없이 들어가야 한다. 낯선 공간에 들어가고, 매력적인 사람들을 만나고, 의미심장한 말을 들어야 한다. 그는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찾아가서 두리번거리는 사람이다. 그래야 계속 쓸 수 있다.


선택해야 한다. 찾아갈 것인가. 연출할 것인가. 성실한 다큐멘터리 감독이 될 것인가, 정확한 상상력의 극영화 감독이 될 것인가. 이도저도 아니어서는 안 된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순간이, 막상 극영화에서는 진부한 연출이 될 것이다. 실제라는 아우라가 벗겨졌을 때, 창작자의 의도가 너무 간단히 간파당할 때, 초라한 클리셰로 전락할 것이다. 그러므로 연출하는 시인은 더 밀고 나가야 한다. 더 멀리 도약해야 한다. 더 크게 행동하고 더 과감하게 말해야 한다. 그래야 계속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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