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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st call Dec 12. 2019

최종면접에서 탈락했다

취업준비생의 지난 이틀간의 기록



최종면접에서 탈락했다. 예상했으면서도 합격이란 글자가 메일에 보이지 않아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다.




메일을 기다리던 지난 일주일간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밤마다 `왜 그렇게 답했지`, `이렇게 답할걸.` 이라며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그러면서도 만약 합격하면 입사 전까지의 기간 동안 뭘 할지 생각했다. 지난 1년간 고생했으니 짧게라도 여행을 가보자. 해외는 어려울 테니 국내라도. 메일을 확인한 순간부터 내 모습을 되돌아보며 수치스러웠다. 무슨 설레발이었나.


눈물도 나지 않았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는 그렇게 잘 울면서, 나는 나 자신의 일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게 어려웠다. 항상 그랬다. 악을 쓰고 펑펑 울어야 가슴이 뚫릴 것 같아 억지로 울어보려고 해도 한 방울 찔끔 흐르고 끝이었다.


부모님이나 주변에서는 그동안 나의 취업에 대해 딱히 나쁜 말을 하지 않았다. 학교를 다니며 알바를 하고, 과 수석으로 전액장학금을 타보기도 하고, 인턴도 하고, 혼자 두 달 간 여행을 해보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게 별 대수냐, 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아왔다.

주변에서그런 나를 보며 `알아서 잘하는 애`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그 누구도 내가 이렇게 취준을 오래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조차도.


취준시장에 나와보니 내가 해왔던 일들은 자소서 한 줄도 되지 않는 소재였다. 누구나 알바를 했고, 공부했고, 인턴을 하고, 여행했다. 심지어 창업을 해본 사람도 있었고, 나보다 어린 나이임에도 경력이 1년 넘은 사람들도 있었다.


나의 인생에 회의감이 들었다. 취업 못하는 것에 대한 화살은 나 자신에게 꽂혔다. 건강하지 못한 생각이란 걸 알면서도 자책은 멈추지 않았다. 자책을 멈추지 못한다는 것에 또다시 자책했다. 온 세상의 무게가 나의 어깨를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나와 같이 취준을 시작한 형제는 상반기에도, 하반기에도 이름을 들으면 아는 기업들의 최종 면접을 갔고 얼마 전 최종 합격을 받은 상태였다. 그 사실이 나를 더 갉아먹었다. 나는 이름을 말해도 모르는 기업들도 서류에서 떨어지고 있는데. 그 누구도 나에게 뭐라 하지 않았지만, 혼자만의 열등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삶이 힘들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죽음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저 말로만 `아, 뒤질 것 같아`라고 웃으며 친구들에게 농담으로 내뱉을 뿐. 내가 미래에 어떻게 죽을지, 언제 죽을지 그런 것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최종 면접을 보고 난 뒤부터는 불쑥불쑥 죽음에 대한 생각이 나를 찾아 왔다. 혼자 어디 여행이라도 가서 물에 떨어지면 되려나. 그런 나를 발견한 순간 진심으로 무서웠다. 아, 위험한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집에 있다가는 우울함에 잠식돼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때마침 시간 있느냐는 친구의 메시지에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최탈했다ㅎㅎ 당장 만나`라고 아무렇지 않은 척 답하며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니 그나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친구 얼굴을 보자마자 울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에 잠시 화장실을 들러 거울을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울컥울컥 하며 울음이 목구멍까지 차오르기도 했지만, 막상 눈물을 흘려보려 하면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 친구와는 웃으며 수다를 떨 수 있었다. 함께 세상을 욕하고, 밥을 먹고, 노래방에서 깔깔 웃으며 아이돌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집에 도착한 뒤에는 좋아하는 소설을 읽으며 밤을 새웠다. 두 권의 책을 다 읽고 나니 새벽 6시였다. 생각보다 괜찮네. 라고 느껴졌다. 정말 생각보다 괜찮았다. 열심히 살아야지. 더 잘하자. 라고 다짐하며 잠에 들었다. 그리고 오늘, 카페에 앉아 최종면접 후 한동안 들여다보지 않았던 취업사이트에 들어가 공고를 찾고, 일정을 정리했다. 집중이 안됐지만 그래도 마우스를 붙들고 이리저리 클릭했다.


그러던 도중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필요한 소식을 말한 뒤 형제 또 다른 기업에 최종합격했고, 그곳에 가기로 했다는 말을 했다. 아 그렇구나. 순간 울컥 엄마에게 화를 내고 싶은 마음을 다잡았다. 악의 없는 말이었고, 그런 소식을 나한테 전하지 하지 말라고 한 적도 없었기에 엄마에게 화낼 이유는 없었다. 나의 열등감을 들키고 싶지 않아 항상 쿨한 척 해왔으니. 가족에게 나의 밑바닥을 절털어놓지 는 이 글러 먹은 성격을 고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이렇게 살 것이다.


그래? 잘됐네. 알았어. 전화를 끊고 한참을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그래, 잘됐다. 그래도 엄마가 한시름 덜겠네.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부디 내가 아는 사람들이 나의 열등감을 보지 않기를 바라며.





2019년 12월. 날씨 흐림



최탈 후 일주일이 흐른 뒤

이 글을 다시 보니 너무나 자기연민적이고 우울한 글이라 부끄럽게 느껴져 잠시 비공개로 설정했다. 사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머릿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을 활자로 정리해보면 조금은 덜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글을 쓰면서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생각을 정리하고, 당시의 감정을 가감없이 드러내며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조금씩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계속 비공개로 놔둘까 고민했지만 나처럼 일을 끝내고 무력감에 젖어있는 사람들, 생각이 너무 많아 힘든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가 되길 바라 다시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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