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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a May 06. 2024

술꾼의 임신일기 4

드디어 막달을 앞두고....

드디어 막달을 앞두고 있다.


끝나지 않을것 같았던 임신기간이 어느덧 한달 남짓 남았다는게 실감이 나면서도 잘 안난다.


임신 초기는 참 시간이 더디게 갔다. 갑자기 확 바뀌어 버린 삶의 패턴에 적응하는것이 쉽지 않았다. 내 몸은 배도 안나오고 전과 다르지 않은데, 술을 못마시게 됐고 그래서 자연스레 술과 연관되어 있었던 내 인생의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저녁 약속 대신 점심 약속으로, 술집에서 딥토크가 카페에서의 가벼운 수다로, 해장국 위주의 점심 메뉴가 파스타와 샌드위치로, 저녁마다 마시던 맥주 한 캔은 루이보스티 한 잔으로.... 주말마다 하던 밴드 활동도 작년 12월 31일을 마지막 공연으로 잠정적으로 중단했다. 이 모든것들이 임신하지 않았다면 시도도 하지 않았을 변화다.

임신기간은 어쩌면 나같은 술꾼이 앞으로 닥칠 육아 라이프에 미리 적응하라고 준비한 유예기간 같은게 아닐까.


지난 8개월동안 술 없이 많은 것을 해냈다. 술없는 전시 오프닝, 술없는 크리스마스 연말 모임, 술없는 오마카세, 술없는 밴드 공연 뒤풀이 까지. (작년 말 공연 뒷풀이에서 술 한모금 안마시고 새벽 1시까지 버티는 기염을 토했다)


술 없이도 내가 이런 모든 것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칭찬해주고 싶다. 물론 재미는 조금 없었다. 인생에서 MSG가 빠져서 건강식이 된 느낌....


그리고 모든 문제들이 술 때문인 줄 알았는데 술 때문이 아닌것들이 있다는것도 깨달았다. 아침에 눈이 침침한 것, 머리가 띵 한것은 숙취 때문만은 아니었다. 잠자다 자주 깨는 것도 술 때문은 아니었다. 그리고 밤에 센치해져서 괜한 감정 폭발의 순간이 가끔 오는 것도 술마셔서 그런줄 알았는데 그냥 나는 원래 그런 놈이었다.  


청춘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 일까. (있다면 나는 만년으로 하겠소....)

청춘의 끝이 부모가 되기 전 까지라면 나는 참으로 긴 청춘을 즐겼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근 이십년 간을 '나'의 행복만을 생각하며 앞으로 내달렸다면, 부모가 된 이후의 삶은 나보다 소중한 어떤 것을 위해 사는 삶일 것이다.


출산을 한달 앞둔 지금, 약간의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실체를 본적 없어 실감이 안났던 아이를 실제로 보게 된다면 어떨까 궁금하다. 그리고 이 아이를 키우면서 맞닥뜨릴 각종 고난의 순간들을 상상하면 아찔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임신기간을 끝내고 비로소 나만의(?) 몸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설렘이 있다. 특히, 근 10개월만에 마시는 최초의 생맥주 한모금, 그 순간이 아주 기대되서 남은 한달을 부푼 마음으로 버틸 수 있을것 같다. 술도 마시고 입고 싶었던 예전 옷들도 다시 입고 빡센 운동도 마음껏 하며 다시 나를 찾아가야지.


물론 삶이 절대로 예전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소소한 행복을 일상에서 찾아가고 싶다. 인생에 둥근 필터를 씌워주는 약간의 알콜타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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